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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군사기밀을 누설합니다

저는 1980년대 초반 강원도에서 작전병으로 군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군사2급 비밀인 우리나라 작전계획을 처음 봤는데 의문이 ‘5027’이라는 숫자였습니다. 00사단 작전계획은 ‘00사단 작전계획 5027’‘00연대 작전계획 5027’식입니다. 바로 ‘5027’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알아보니 우리의 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고 미국은 세계지도를 놓고 작전계획을 짜기 때문에 50이라는 숫자는 극동 고유번호, 27은 남한 번호로 결국 5027은 ‘미국작전계획의 극동계획 중 남한의 작전계획’을 의미한다고 하는 겁니다. 참 착잡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작전계획 5027에는 유사시 방어-지연전-후퇴 계획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대한 방어하고 남쪽으로 후퇴하다 끝나도록 돼 있는겁니다. 그때 저는 왜 이런 반쪽 계획밖에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좀 지나알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유럽이나 중동에서 전쟁을 치를 경우 아시아에서 남한은 포기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의해 우리 작전계획이 수립됐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대를 얼마 앞두고 ‘은밀히’ 유사시 반격계획을 세우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북한지도를 펴놓고 밤새워 반격계획과 평정, 결국 통일계획을 수립했고 그 작전계획을 ‘5027 X’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대통령인 전두환씨가 유사시 우리의 운명을 미국에 맡길 수 없다며 미국 몰래 독자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5027 X’를 모두 폐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폐기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미국이 이것을 알고 노발대발해 결국 전 대통령이 굴복했다는 겁니다. 그때 저와 젊은 장교는 ‘5027 X’를 소각하면서 “민족의 운명이 달린 전시작전계획도 스스로 짜지 못하는 나라가 주권국가냐”며 참담함을 토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전통제권 환수는 민족의 오랜 바람이었습니다. 미국이 가진 작전통제권이 유사시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이미 6·25와 휴전, 5·16쿠테타, 12·12사태, 광주민주화운동 과정 등을 통해 절감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하도 작전통제권 환수를 놓고 말이 많아 제가 경험한 군사기밀을 누설하고 말았습니다. 20년이 훨씬 지난 일입니다만 처벌한다면 받겠습니다. 하지만 20여 년 전에도 미국 없이 세운 전시작전계획을 왜 안된다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8/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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