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얘기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얘기 하나 할까 합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 ‘양김씨’의 후보단일화 실패로 노태우씨에게 대통령을 넘겨준 야권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총선을 앞둔 YS의 민주당과 DJ의 평민당은 야권통합이라는 국민적 ‘강요’에 통합논의를 시작했습니다. 1988년 2월 12일 서울 남산 외교구락부에서입니다.

김재광 의원:): 통합원칙과 소선거구제에 합의하고 재야와 통합문제를 다룰 소위를 구성합시다.

이중재 의원(평민): 좋습니다. 정치는 기술이니 기술적으로 해결을 모색합시다.

신기하 의원(평민): 김 선배님, 재야를 빼고 통합하자는 말씀입니까.

김재광 의원: 빼자는 것이 아니라 이중재 의원 말대로 기술적으로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임채정 위원(평민): 기술적이라도 원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황명수 의원(민주): 별 뗑깡 다 부리는 군.

이상은 초년 기자시절 문틈으로 엿들은 통합협상 내용입니다. 임채정 통합위원은 민주당 김수한 의원과 또 싸우는 등 통합협상 내내 ‘싸움닭’으로 활약합니다. 보충 설명을 하면 당시 DJ의 평민당은 재야와 3자 통합 등 갖가지 조건을 내세우며 통합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신문사 편집국장 출신으로 평민당 대변인이던 조세형 의원은 말문이 막히자 “XX(기자들에게 한 욕이 아니라 국민에게 합당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니네들(기자) 맘대로 써라”며 자리를 뜰 정도였습니다. 결국 통합은 안됐습니다.

저는 당시 야권 분열은 우리나라 민주세력을 토막내고 민주정신을 왜곡시킨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봅니다. 그후 YS나 DJ는 차례로 ‘정치적 야합’을 통해 대통령이 됐습니다. 두 사람은 소원을 성취했는지 모르지만 야권분열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 후보가 ‘보수’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지사에 당선되고 삼성전자 CEO 출신으로 수백 억 원대 자산가가 ‘진보’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는 ‘정신적 혼돈’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됐든 그때 ‘뗑깡’ 소리를 들으며 ‘통합불가’ 총대를 멘 임채정 위원은 그후 국회의원이 됐고 4선을 거쳐 이번에 국회의장이 됐습니다. 대화와 협상의 장인 국회에 그가 의장을 잘할지 기대해 봅니다.

12일 임채정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회의 진행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다. (경향DB)



이번 호 ‘뉴스메이커’에선 뗑깡 국회의장의 진면목을 소개합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6/20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