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핵심은 이 문제가 역사학계의 학문적 논쟁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문제라는 것이다. 권력이 개입된 역사왜곡 문제는 국론 분열 사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사안이다.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사관은 시대와 역사가에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기본적 사실을 왜곡해선 안된다. 


중요한 문제는 그 기본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은 물론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역사 의식, 역사 기록의식이 매우 중요하다. 얼마전 퇴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시 중요한 사안에 대한 기록 대부분을 폐기하고, 가치없는 공문서만 국가기록원에 넘겼다고 한다. 역사 기록을 멸실한 이 전 대통령도 분명 역사적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사진은 1980년 2월 28일 새벽, 최규하 대통령이 서울 외곽에서 실시된 ‘방패 80기동훈련’에서 야간 작전을 시찰하는 모습이다. 최 대통령 바로 뒤 철모에 육군 별 둘 계급장을 단 노태우 소장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최 대통령이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임무의 9사단을 방문했던 상황으로 짐작된다. 


사진속 노 사단장은 전방 수도 방어의 임무를 저버리고 1979년 12월 12일 군대를 이끌고, 쿠데타를 감행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노 소장의 얼굴에 자신감이 옅보인다. 아마 사진속 최 대통령을 넘보던 것처럼, 진짜 대통령을 넘볼 생각을 이때부터 했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 노 소장은 두달 후 동기생 전두환 장군에 이어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해 5·18광주 비극의 씨를 뿌렸다.


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무기력했던 대통령이었다. 그 무기력이 5·18 광주비극, 많은 학생·시민들의 해직·투옥·고문 심지어 분신까지 야기시켰다. 그리고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정권의 연장을 야기했다. 바로 그 전두환·노태우 정권의 부정축재 환수운동이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자신에게 부과된 추징금을 끝까지 납부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최 대통령의 무기력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역사의식이 없는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아마 최 대통령은 최악의 역사의식을 가진 대통령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 대통령은 12·12사태와 5·18광주 비극, 그리고 자신의 퇴임 등 역사의 중요 고비에 대해 단 한마디의 진술, 아니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많은 청문회와 재판에서 그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대한 증언을 요구했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군인에게 굴복한 대통령 자신의 모습이 창피해 그랬을까? 


하지만 이는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역사에 책임을 져야하는 대통령으로서 지독한 책임회피이고 일종의 업무상 배임이다. 대통령은 비록 굴욕의 순간이라도 중요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적 평가를 받고, 후세에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할 의무가 있다. 


특히 최 대통령은 부인의 간병일기를 꼼꼼히 기록해 이를 국가기록원에 넘겼다. 부인의 간병일기를 기록한 그가 그보다 훨씬 중요한 국가의 중대순간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면에서 2권의 회고록을 남긴 노태우 대통령이 훨씬 역사적 의식이 높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 회고록이 자화자찬으로 점철됐다 하더라도 책임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기록을 남긴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면에서 최 대통령은 대통령을 빼앗긴 책임보다,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역사논란을 보면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의 역사인식, 역사기록 인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책임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역사·시대를 기록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