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남쪽에서 봄소식은 커녕 잔인한 소식이 먼저 들려왔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적자투성이, 강성 노조가 지배한 경남도립 진주의료원을 폐업하겠다는 것이다. 경남의 ‘대처’가 되고 싶어하는 홍 지사의 야심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대상을 병원으로 선택한 것이 영 아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바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다. 그는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진주의료원 휴·폐업 철회” “공공의료 사수” “홍준표를 규탄한다”고 외쳤다. 책상다리를 하고 주저앉아 오른손 주먹을 치켜들고 흔드는 그의 농성 ‘솜씨’는 여전했다. 70이 넘은 나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허리도 곧았다.


 



사진은 1997년 1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막 농성중인 권영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의 모습이다. 이 농성장에 당시 국민회의 이해찬 의원(오른쪽)과 임채정 의원(맨 왼쪽)이 찾아 위로하고 있다. 팔짱을 낀 권 위원장의 모습이 마치 한 조직의 ‘보스’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25일 새벽, 크리스머스를 기해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했다. 이 날치기 처리를 거부하다가 막판에 합류한 사람이 바로 홍준표 당시 초선의원이다. 이에 반발하며 시작한 민노총 지도부의 명동성당 천막시위는 무려 한달을 넘겼다. 요즘 고공농성에 비하면 약과이지만.


그러나 당시 제1야당 국민회의는 김종필(JP)과 DJP연대를 추진하면서 보수화를 드러냈다. 이에 국민회의 소장파 의원 모임인 열린정치포럼(간사 임채정)이 당 지도부의 미온적 태도에 불만을 갖고 직접 농성장을 찾은 것이다. 임채정·이해찬 의원은 87년 대선에서 이른바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명분으로 재야에서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이다. 결과론적이지만 한 사람은 국회의장, 또 한 사람은 총리가 되는 등 정치적으로 성공했다.


사진속 권 위원장은 임채정·이해찬 의원의 역할이 마땅치 않았는지 ‘국민승리21’을 조직, 아예 정치운동에 나섰다. 본인의 표현대로 ‘일제하 신간회 이후’ 모든 진보 정치세력을 한데 모았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냉혹했다. 그는 1997년 대선에서 불과 30만표밖에 얻지 못했다. 모두 진보정치의 종언을 얘기했다.


하지만 권 위원장은 18명을 이끌고 마포의 한 구석건물에서 ‘마오의 대장정’을 선언, 진보정당 건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후 2000년 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2004년 국회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야심차게 10년후 진보정당의 집권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우리 정치 토양이 그렇듯, 진보정당 하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죽했으면 재야 전력으로 치면 권 위원장보다 앞선 사진속 이해찬·임채정 의원이 보수정당에 들어갔을까? 공교롭게 이때 권 위원장을 위로하던 이해찬 의원은 나중에 총리가 돼 진보정당의 주력 세력인 공무원노조를 와해시키는데 앞장 섰다.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진보정당은 불과 3.01%의 저조한 득표율로 5위에 그쳤다. 본인의 말대로 진보정당이 대통령후보를 낸 것은 당선 가능성보다 당의 존재가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운동권 출신으로 보수정당에 들어가 총리까지 된 이해찬 의원과 보수 신문에서 뒤늦게 노동운동가로 진보정치를 한 두 사람은 정치에서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을 극명히 대비시킨다.



지금 진보세력은 철저히 몰락했다. 2012년 총선에서 13석의 제3당으로 부상한 진보정당은 도덕성도, 진실도 잃은 채 분열됐다. 어떤 진보정당은 아예 당명에서 ‘진보’자를 빼버리고 보수인물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권 위원장이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며 부산히 움직인다고 한다. 하지만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에서 통일이 빠지고 노동만 있는 정당이 진정한 진보정당일까? 


신간회 이후 모든 진보세력을 하나로 묶는 능력을 보였던 권 위원장의 역량을 다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