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26)

한때 대형 마트에서 ‘통큰’ 시리즈가 유행했다. 거의 세숫대야 만한 그릇에 치킨을 가득 담아 7000원에 파는 ‘통큰 치킨’이나, 거의 자전거 타이어 크기만한 피자를 ‘통큰 피자’로 1만2000원에 판 것이다.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이유로 요즘은 뜸하지만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통큰의 반대말은 ‘좀스럽다’ 정도 될 것이다. 도량이 좁고 옹졸하다는 의미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바로 그 좀스러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 직원이 오피스텔에 숨어 인터넷에 ‘댓글질’ 하다 발각됐다. 선관위와 경찰이 들이 닥치자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는 ‘감금됐다’고 억지를 부렸다. 경찰내부에서도 불법 수사축소 폭로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여당은 ‘국정원 직원 인권유린’이라고 떼를 썼다. 결국 국정원은 개원후 처음으로 국정조사라는 수모를 당하고 있지만,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여야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NLL(북방한계선) 문제도 마찬가지다. 논리와 법리, 그리고 최소한의 진실이나 국격도 없다. 군사정권에서도 최소한의 사실과 염치는 있었다. 이때 강조하던 것이 ‘법대로’였고, ‘떼법(억지) 척결’을 외쳤다. 체제 안정을 위해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요즘은 정치권은 물론, 정부마저 ‘좀스러운 떼법(억지)’ 대열에 앞장서는 느낌이다.



게다가 정부는 폐쇄된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사소한’ 힘겨루기만 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 죽어나가든 말든, 남북화해 협력의 상징이 폐쇄되든 말든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온통 ‘정쟁’이나 ‘떼법’ ‘좀스러움’ 이 판을 치는 지금 통큰 정치력이 그리워진다.






사진은 1947년 8월 3일 지금 서울 동대문 옆(그때는 성동구에 있는 언덕이라고 ‘성동원두’라 불렀다)에서 치러진 몽양 여운형 선생 장례식(국민장)모습이다. 바로 오늘(7월 19일)은 몽양이 흉탄에 맞아 암살된지 66주년되는 날이다. 당시 영구행렬이 지나는 종로통에는 많은 시민 나와 눈물을 흘렸고, 몽양 추모객은 6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를 추모한 것은 몽양의 통큰 정치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몽양은 남한과 북한의 합작과 남한내 좌우를 아우르는 정말 통큰 정치했다.


몽양은 죽어서도 통이 남달랐다. 사진 속 몽양 장례식 영구차를 자세히 보면 화물트럭이다. 여기에는 남다른 몽양의 유언이 있었다. 몽양의 관은 나무가 아닌 무쇠로 만들어 매우 무거웠다. 몽양은 “이 땅이 통일되는 날, 다시 뭍히겠다”며 “관을 무쇠로 만들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수유리에 뭍힌 몽양은 통일이 되는 날, 38선에 다시 뭍히기 위해 그때까지 썩지 않는 관을 사용해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장인 성동원두에서 장지인 수유리까지 몽양의 무쇠관을 옮기기 위해 화물차가 동원된 것이다. 종로통에서 성동원두까지 이어진 영구행렬에서 그의 무쇠관을 멘 상여꾼은 무려 120명 가까이 됐을 정도였다. 


당시 장례식 중계 동영상을 보면 “최후의 말씀으로 …조선…다음 말씀을 하지 못하고 운명하셨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아나운서는 “나의 최후를 비탄말고, 우리 민족의 명예를 노래하라, 그리고 어서 행진을 계속하라…용감하게 나가라, 나는 결코 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몽양의 마지막 말, 특히 ‘민족의 명예를 노래하라’는 유언은 요즘같은 ‘좀스러운’ 정치인에게 주는 경고이다. 그리고 ‘통일되는 날, 다시 장례식을 치르라’며 썩지 않는 관을 사용한 몽양의 대범함은 소소한 문제로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치 못하는 남북 정부당국이 배워야 할 자세이다.


19일 이날 추도식에는 새누리당(정병국 의원)과 민주당(이종걸 의원)이 함께 추도사를 해 몽양은 여야를 포용하는 통큰 정치인임을 입증했다. 이날 함세웅 신부, 백낙청 교수 등이 참석해 같이 추도하고, 학술 세미나도 열린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