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불은 아무데로나 번지지만 물은 가난한 쪽으로 흐른다"고 했다. 수해는 주로 땅값이 싼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당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게다. 사실 이번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 대부분은 저지대에 사는 '없는' 사람들이다.이들은 비바람을 막아주던 오두막과 그나마 입에 풀칠해주던 손바닥만한 밭, 추석명절때 쓰려고 키웠던 돼지를 물에 떠내려 보냈다. 그래도 남은 것을 추슬러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들리는 소식은 울화통만 치미는 것뿐이다. 특별재해지역에서 제외된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네 이웃들은 유독 상대적 불평등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다같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만 남보다 차별 당한다고 생각하면 '욱' 하는 기질이 나온다. 더구나 공평해야 할 행정 혜택에서 불평등을 감내하라고 한다면 정말 참지 못한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은 주로 하천을 두고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하천이 범람해 양쪽 지역 모두 피해를 입었는데 한쪽은 특별히, 다른 한쪽은 보통으로 지원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인가. 태풍으로 날라간 비닐하우스는 충북 옥천이나 강원 삼척이 똑같은데 어디는 특별히 보상해주고 어디는 보통으로 보상할 수 있나.

사실 자연재해에서 특별재해지역을 도입하면 여기서 제외되는 지역의 반발은 처음부터 예상된 것이다. 그런데도 '특별히 높은 사람들'은 땜질식 보상을 강행했다. 이유는 물론 있다. 피해 규모가 극심하고, 또 집단 반발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행정적 편의나, 특히 정치적 의도에 의해 좌우됐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당초 영남지역 폭우로 시작된 특별재해지역 논란은 법에도 없는 '재해극심지역'이 만들어지더니, 경과규정을 둬 사실상 소급입법까지 이뤄졌다. 원칙이 제방터지듯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피해지역 전부를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해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그것을 요구하고 행정적으로 그러는 것이 속이 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특별재해지역은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되는 셈이다. 땜질 보상책이 낳은 예견된 결과다.

또 재해지역 주민은 지금 '특별재해지역'이 무엇일지 기대하고 있지만 보상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다시 서울 여의도로 몰려와 완전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벌써 보상에서 제외됐던 상인 등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재정에 여유가 있어 다 보상해주면 좋겠지만 개인적 피해는 보험으로 처리하는 것이 사실 옳다. 모두 다 정부가 보상해 주면 정부 시책에 따라 보험을 들었던 과수농가는 또 가만히 있겠는가.

게다가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않았다. 당초 수해주민들이 재난관리법상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요구한 것은 나중에 재해원인 제공자를 규명해 피해 전액의 배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해때마다 반복되는 인재(人災), 관재(官災) 논란도 핵심은 이것이다. 사실 수해를 자연재해냐 인재냐 따지는 것은 모호하고 상당히 전문적 검토를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갑작스런 낙뢰로 펌프장이 기능을 하지 못해 시가지가 침수됐다면 재해일까 재난일까. 지진으로 화학공장에서 불이 났다면 또 어떨까. 그것은 전문가에 의해 법정에서나 가려질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인재냐 자연재해냐 구분은 무의미하다. 자연재해이든 인위적 재난이든 예방하고, 대응하고 복구하는 단계는 똑같다. 현실적으로 홍수가 나건, 불이 나건 119 구급대가 가장 먼저 출동한다. 인재냐 천재냐를 따지는 것은 행정 편의에 의한 구분일 뿐이다.

관계자들도 이 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앞으로 벌어질 일에 한숨만 내쉴 뿐 누구도 핵심에 대해 언급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이번 수해 보상대책은 대통령에서부터 국회, 정부가 원칙을 무너뜨리고 땜질 처방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방 하나가 붕괴된 것보다 훨씬 큰 후유증을 낳는다. 국민의 마음을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원희복 /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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