沒역사적 시대구분



역사학에서 "모든 역사연구의 노력은 시대구분에 귀착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대구분은 각 시대의 성격과 특징,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역사학에선 매우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 위정자들은 시대구분에 매우 민감했다. 현대사만 해도 얼마전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5공화국, 6공화국 등으로 시대구분을 했다. 모두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공화제 시행이 200년이 넘는 프랑스도 아직 5공화국인데 50년도 안된 우리가 6공화국인 것은 사실 문제였다. 이는 역사학자는 물론 최소한 헌법학자의 자문도 없이 마구잡이로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려 했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은 '문민정부' 혹은 '국민의 정부'라는 다소 애매한 방법으로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대구분을 하려 했다. 19일 탄생하는 새 대통령은 과연 무슨 의미를 부여해 과거 정권과 다르다는 시대구분을 할지 궁금하다. 문제는 자신의 시대구분에 그렇게 민감한 위정자들이 정작 중요한 역사의 시대구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모두 왜곡된 역사를 규명해 원상태로 돌리고 시대적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 기관이다.

특히 명예회복위원회는 내부적으로 치열한 시대구분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당초 법을 만들 때 1969년 8월7일 이후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결국 69년 8월7일 이후를 권위주의 통치기간으로 시대구분한 것이다.

69년 8월7일은 역사적으로 무슨 기점인가. 군인이 5.16쿠데타를 감행, 3공화국의 기틀을 다진 61년도, 10월유신이라는 헌법 유린으로 4공화국을 시작한 72년도 아니다. 이 날은 현대사 연표에도 나와있지 않아 현대사 전공자도 69년 8월7일이 역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꼭 집어 말하면 박정희 정권이 권력연장을 위해 3선개헌을 발의한 날이다. 엉뚱하게 이 시점을 권위주의 통치기간의 시작으로 구분한 것은 특정인의 정치적 의도는 충족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몰상식 그 자체였다.

69년 8월7일 이전은 권위주의 통치기간이 아닌가. 얼핏 꼽을 수 있는 것만 해도 학생들이 남북교류와 평화통일 주장을 하다 단죄된 61년 민족통일연맹사건, 64년 인민혁명당 사건도 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과 최근 의문사한 것으로 규정된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관련된 67년 동베를린간첩단 사건, 68년 통일혁명당 사건, 68년 6.8부정선거투쟁 등도 조작 혹은 민주화 과정의 중요한 치적임에도 명예회복 대상에 끼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선구적으로 3선개헌에 반대한 사람은 명예회복 기회가 원천봉쇄되고 개헌안 발의 후 뒤늦게 반대한 사람은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얼마전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조치가 50년 만에 이뤄졌다. 51년 거창양민학살사건도 명예회복 조치중이다. 하지만 유독 61년 5.16쿠데타 이후 69년 8월6일까지는 역사의 명예회복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다. 새 대통령은 반드시 이 역사의 블랙홀을 밝히고 잘못된 시대구분을 바로잡아야 한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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