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라 0416’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3)

잊지 말라 0416’


429일 '만기친람' 하시며 전지전능' 하신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국가안전처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이 평소 깊숙이 천착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신속하게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의 모범답안을 교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국무위원과 공식 회의도 없이 홀로 이렇게 모범답안을 내렸다.


정부는 서둘러 정부조직법을 바꾸고 관청 간판을 크게 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원인과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치밀하게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세월호에 대한 정확한 사고 원인과, 대응과 수습과정에서 문제점을 검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해당 부처, 전문가와 상의도 없이 대통령 한 사람의 머리에서 불쑥 모범답안이 나왔다.


재난 컨트롤타워를 총리실에 두자는 연구용역 결과는 캐비넷으로 서너개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건설부에 있던 재난관리 업무를 내무부로 옮긴 이유는 재난현장과의 근접성이다머리만 있지 현장도손발도 없는 총리실에 재난 컨트롤타워를 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장담하건데 총리실의 국가안전처도 실패작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비과학적 조급증, 냄비근성, 그리고 망각이 재난후진국의 가장 큰 원인이다, 정치는 감으로 할 수 있지만, 재난관리는 과학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문제가 된 해운사와 해양수산부의 준비도 졸속, 구조에 나선 해경의 대응도 졸속,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습도 졸속, 그리고 박 대통령의 대책지시도 역시 졸속이다. 이런 졸속이 계속되는 한 안전 대한민국은 요원하다.




사진은 1871년 미국 시카코 대화재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마 이 사진은 <타임캡슐>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일 것이다. 도시 전체가 불에 싸인 말그대로 유황의 불이 타오르는 지옥의 모습 그것이다. 시카코 대화재는 근대 도시방재 개념을 바꾼 사고이다. 


1871108일 저녁, 캐서린 올리어리라는 여성이 황소우리를 돌보다 황소가 뒷발질로 석유등을 차면서 발화, 불이 도시 전체로 번졌다. 이 화재로 300(실제는 훨씬 더 많다는 주장도 있다)이 숨졌고, 1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화재는 목조 보도블럭 등 건축자재부터 소방감시체계까지 모든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보완해 도시방재 체계를 새로 세우는 계기가 됐다. 이 교훈으로 시카코는 세계적으로 도시방재의 모범 도시가 됐다.


더 중요한 것은 120년이 훨씬 넘은 2012년 시카코 시의회가 이 화재사고를 재조사했다는 점이다. 시카코 시의회는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올리어리의 실수(정확히는 황소의 뒷발질)가 사고 원인이 아니라는 증거와 증언이 나오자, 화재 원인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시의회 재조사 결과 화재주범으로 몰린 올리어리는 당시 반()아일랜드 정서에 의한 희생양으로 드러났. 시카코 시의회는 126년만에 이 화재의 원인을 정정했다.


바로 이것이 재난선진국의 저력이다. 재난의 원인을 집요하다 못해 처절하게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안전을 만드는 근본이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십여년간 건축공학자들이 철골구조 건물의 붕괴 문제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 연구결과는 건축법규에 반영된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번 세월호 참사는 1993년 1010292명이 사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복했다. 구조의 난맥은 불과 3년전 천안함 침몰사건보다 더 심각했다. 2003218142명이 사망한 대구지하철 참사 때 우리 모두는 마스콘키를 빼고 간 기관사에게 책임을 돌렸다. 마스콘키 문제는 나중에 재판에서 논란이 됐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논란이 된 언론의 보도문제도 이미 2003년 기자협회에서 재난보도 준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있지만 지키지 않거나 망각한 것이다.


결국 문제는 졸속이고 망각이다. 재난선진국은 120년된 화재 사건도 과학적으로 재규명하는데, 우리는 10년전 화재 사건, 불과 3년 전 구조상황의 난맥도 망각하고 있던 것이다. 당연히 재난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경험상 이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분노는 곧 희석될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 모범답안까지 제시한 마당에 뭘 더 따지고, 고민하나.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이란 그럴듯한 속죄양까지 있다. 그럴 것이다. 한 달 후 투표를 왜,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잊지 말라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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