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7)

최형우 뇌출혈 미스터리

 

지난 5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창립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및 기념식이었다. 민추협은 1980년대 암울한 시기, 김영삼(YS)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의 동교동계가 단합, 제대로 된 야당과 민주화를 일궈낸 구심체였다.


이들은 이날 이 땅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쟁취될 수 있었는지 그 역정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요즘 권위주의적 정치상황을 겨냥해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품이 될 수 없기에 계속 감시하고 지켜서 발전시켜야 하는 것임을 거듭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도 참석했다. 지금 새누리당 중진 상당수는 바로 이 민추협 출신이다.


이날 행사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맨 앞줄에 흰 머리를 그대로 드러낸 최형우(온산) 전 의원이다. 온산은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신한국당 당내 1인자로 19973월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빠른 수술로 목숨을 건지고 오랜 재활치료로 불편하지만 그래도 거동할 수 있는 상태까지 회복됐다.


아마 온산이 재활치료에 기적같이 성공할 수 있던 것은 그 특유의 강인한 체질 덕분일 것이다. 그는 우리 정치사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가졌다.

 



사진은 1971년 초선의원 시절, 날치기를 막기 위해 상임위원장 책상에 떡 앉아있는 신민당 최형우 의원의 모습이다.(그 밑에 한병채 의원의 얼굴이 보인다) 울산 출신인 최형우 의원은 YS에게 우동영, 좌형우’(오른쪽에 김동영, 왼쪽에 최형우가 있다)라고 할 정도로 핵심 인물이었다.


온산은 부잣집 샛님이던 YS를 민주투사로, 대통령으로 만든 행동대장이었다. 암울한 시대, 야당 정치의 최고 조건은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뛰어난 지략을 자랑하는 DJ마저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했겠는가.


아무튼 온산은 YS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실세로 등장했다. 내무부장관, 집권당 사무총장 등을 거치며 자타가 공인하는 당내 실세로 떠올랐다. 그리고 1997년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 출신의 이회창 의원이 영입됐지만, 당내 기반이 튼튼한 그는 당내 여론조사에서 1위로 나왔다.


그런데 313일 그는 갑작스런 뇌출혈로 쓰러졌다. 청와대에서 YS를 독대하고 나온 직후였다. 과연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사람들은 온산이 쓰러진 것은 그의 저돌적인 혈기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토록 건강한 온산이 그리 허무하게 쓰러진 것에는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기자는 온산이 쓰러지기 바로 이틀 전 인터뷰했었다. 그때 그는 대권 레이스에서 빠지고, 목표를 당권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YS와 독대는 바로 이것을 확약받기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기자는 온산이 쓰러진 상황에 대해 다른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온산은 YS와 독대에서 대권후보는 포기할 테니 당 대표를 용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YS는 그것도 안된다고 일축했다. 이에 온산이 흥분했고, 체스처도 커졌다. 온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밖에 있던 청와대 경호관이 뛰어 들어와 온산을 제지했다. 이 과정에서 온산이 쓰러졌다는 것이다.


온산이 청와대를 나와 차안에서 쓰러진 것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경호관의 제지 과정에서 쓰러진 것과는 많이 다르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쓰러졌다면 과잉경호였고, YS도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YS도 요즘 힘겨운 투병생활을 한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제 진실을 말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만약 그 때 온산이 쓰러지지 않고 당권을 잡았더라면...YS의 탈당은 없었을 것이고...김대중 대통령도 없었을지도 모른다...노무현 대통령도 없었다면...그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가정에 가정을 더해보지만 세월은 이미 흘렀고, 역사는 만들어졌다. 백발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행사에 참석한 온산을 보면서 그의 쓰러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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