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72)

함세웅-두 추기경은 ‘수구’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4년 9월 23일 강원도 원주 원동성당에서 가톨릭 성직자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신부300여명은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에 대해 토론했다. 그리고 “사제는 예언자적 입장을 지켜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희생해야 하며, 예언자적 입장에서 현실 참여에 뜻을 같이하는 신부만이라도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태동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을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계속되던 시절,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는 가톨릭 신도이던 시인 김지하에게 도피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전신)는 간첩조직인 민청학련에 자금을 지원해 ‘내란음모’를 꾀했다는 혐의(긴급조치 위반)로 지 주교를 구속했다. 이에 지학순 주교는 7월 23일 유신헌법은 폭력과 공갈,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무효라는 양심선언을 발표하며 저항했다. 하지만 유신체제는 지 주교의 내란음모를 인정해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9월 26일 한국순교복자대축일에 명동성당에 모인 전국의 사제들이 제1차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라는 이름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성명은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을 적극 지지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인간 존엄성과 기본권이 보장될 때까지 우리 사제단은 기도회를 계속한다”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가두시위에 나섰다. 당시 정의구현사제단의 대변인으로 결의문과 성명을 발표한 사람이 바로 함세웅 신부(아우구스티노)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곧 민주화운동 세력의 핵으로 자리 잡았고, 함세웅 신부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핵중에서 핵이었다. 그는 고난의 현장, 특히 감옥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1974년의 민주회복국민선언과 1976년의 명동 3·1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해 유신체제에서 두 차례 투옥됐다. 1979년 현직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암살되는 10·26 사건 때도 수감 중이었다.  







사진은 1979년 12월 8일 새벽 영등포교도소에서 출감하는 함 신부의 모습이다. 한강천주교회 신도들과 강우일 신부(현 제주교구주교), 함 신부의 모친 등이 출감을 축하하고 있다. 이 모습은 미국 ABC, 일본 후지TV 등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함 신부는 그 후에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단식기도, 길거리 미사, 반전·평화 미사 현장에 함께했다.


함 신부는 “예수님은 루카복음 4장 18~19절의 말씀대로 가난하고, 감옥에 갇히고, 눈 멀고, 억압받는 모든 분들을 위한 구원자이자 치유자이며 ‘해방자’이다”라면서 “이런 예수님이 내 실존의 근거와 목적”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삶은 “성당에서 나와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장으로 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과 너무 닮았다. 그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 40주년을 맞아 아래와 같은 소회를 밝혔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정진석·염수정 두 추기경은 ‘시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지 않은 수구적인 분’이라고 평가한 대목이다. 


존재감 없는 두 추기경에 대한 평가는 한국 카톨릭의 불행한 현실이다. 하지만 더욱 불행한 것은 정의구현사제단의 민주화를 위한 싸움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뷰/“두 추기경은 시대에 고민이 없는 수구적인 분”

-1974년 정의구현사제단 창립을 주도한 입장에서 40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봅니다. 

“저는 사목현장에서는 은퇴한 사제입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일들은 늘 새 세대와 함께합니다. 한 시대의 주체가 되는 시간과 사람은 달라져도 ‘인간 존엄’의 가치는 여전히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제들에게 ‘감회’ 같은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지요. 충실한 삶, 늘 최선을 다하는 생활,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사제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준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사람은 보통 머리로 생각하고 종합하며 입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가슴과 심장, 마음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도 많은 분들의 감동과 예찬에 공감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교황께서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단어가 ‘가난’입니다. 성서의 핵심이지요.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고 함께 나누는 삶, 그 실천을 위해 스스로 가난해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우리 사회 공동체 특히 교회 공동체에 속한 분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저항적 가난’의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수도자와 스님의 자발적 가난은 아름답지만, 불의와 부정부패, 탐욕의 결과인 비참한 가난도 있습니다. 비참한 가난을 퇴치하는 아름다운 가난이 바로 ‘저항적 가난’입니다. 불의한 정권과 불의한 기업, 탐욕에 종속된 우리 시대의 많은 종교인들도 깊이 반성해야 할 내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달리 우리 정진석·염수정 두 추기경은 매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과거 한 명(김수환 추기경) 시절보다 추기경의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보수는 참된 가치와 진리를 보존하고(保) 지키는(守) 아름다운 일입니다. 따라서 참된 보수는 필연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분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보수란 말이 참뜻을 잃어버리고, 남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보수적인 분입니다.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에 동참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동시에 진보적 가치를 지닌 분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두 교구장은 보수적인 분들이 아니고 시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지 않은 수구적인 분들이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지금도 그 주장은 유효하고 또 앞으로도 계속 요구할 생각인가요.국정원등 국가공권력을 이용한 불법, 부정 선거에 대한 법률 규정을 사제단이 제시한 것입니다. 부정, 불법 선거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핵심입니다. 앞으로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국민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안게임이 인천에서 열리고 있는데, 지금 남북 화해는커녕 오히려 갈등만 높아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심지어 야당마저 민족화해에 방기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북에서는  민간단체들 회담이나 협력을 위한 제안도 없고 반응도 없습니다. 옛날 삼국시대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고구려, 신라, 백제를 우리가 구분해서 어느 한 나라를 좋다, 나쁘다 평가하지 않습니다. 다 우리 역사이고 선조들입니다. 오십년 또는 백년 후에 우리 후손들도 지금 남북을 다른 나라 역사로 배우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국제적으로 위상이 더 나은 우리 정부가 양보할 것이 더 많습니다. 좀 더 유연한 자세로 북을 상대하고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용공’이라는 이름이 요즘은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습니다. 내란음모를 꾀했다며 정당까지 해산하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평가가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이 죽산 조봉암 선생님을 사법살인하고 당시 진보당 등록을 취소했습니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조봉암 선생님의 사건에 대해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현 정부는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무서워하는 것 같습니다. 감추어야 할 것이 많은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권도 이념 갈등과 정보부를 이용한 간첩공작으로 정권을 유지하려다 결국 죽음을 자초하고 파멸했습니다. 평가는 역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만, 불법·부정행위에 대한 징벌적 배상과 손해배상에 대한 법률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도를 통한다면 불법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예방조치는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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