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를 빌려 이번 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생존하신 분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조속히 쾌유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그는 이 대목에서 잠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냉정함을 찾았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의 좌우에 앉은 두 사람은 피곤한 표정을 짓거나 아예 눈을 감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굳게 다문 입과 간간이 필기하는 진지함, 그리고 자신이 답변하지 않을 때는 두 손을 꽉 움켜쥐고 정면을 응시했다.

덥수룩한 수염 그대로 국정조사 출석

지난 7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 기관보고 자리에 참석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모습이다. 그는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수염을 단정하게 정리한 점으로 보아 관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초췌한 표정이었다. 해양수산부 공보담당관에 따르면 이 장관은 전날 밤 12시 진도를 떠나 새벽 5시 서울에 도착했다고 한다. 새벽에 혹시 집에 들러 옷을 갈아 입었는지는 모르지만 초췌한 모습은 그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수염과 양복은 영 어울리지 않았지만 많은 언론은 이 장관의 이런 모습을 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정회가 되자 특위장을 나오는 그에게 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집중됐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카메라맨들에게 셔터 누를 시간을 충분히 주는 ‘여유’까지 부리는 듯했다.

이주영 장관의 이날 모습은 대부분 신문, 방송, 인터넷 포털에 중요 뉴스, 중요 화보로 올랐다. 다음날 주요 포털에 ‘이주영 장관’으로 검색하니 이날 뉴스가 무려 44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한 페이지에 10개의 뉴스꼭지가 있으니 무려 440개나 되는 뉴스가 쏟아진 것이다. 뉴스의 내용도 이 장관 입장에서 그다지 나쁜 기사가 아니었고, 대부분 뉴스에 그의 수염을 기른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그는 놀라운 ‘뉴스메이커’였다.

기자는 이 장관에게 “잠깐 10분만 시간을 내 달라, 간단히 인터뷰 좀 하자”고 말했다. 이 장관은 “지금 안 해, 안 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기자가 다시 “몇 가지만 물어보겠다”고 말하자 이 장관은 ‘야릇한 미소’만 짓고 차에 올랐다.

이 장관은 지금 ‘말이 필요 없고, 이미지로서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위에서도 그는 꼭 필요한 말만 했다. 지금 구구절절 말로 해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 장관은 ‘팽목항 지킴이’로 자신의 이미지를 멋지게 변신시켰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서울대 조국 교수는 지난 6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방송에서 그의 초췌하고 초라한 행색이 비쳐질 때 ‘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서울에 가지 않고 줄곧 진도군청 간이침대에서 생활한다는 소식에 진심을 느꼈다”고 극찬했다.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강금실 변호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주영 장관의 진정성에 가슴이 뭉클해지는군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경찰대 교수 출신의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도 “사고 방지 못한 책임과 초기 대응 잘못은 씻을 수 없지만, 끝까지 팽목항에 남아 실종자 가족과 함께한 노력엔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외부 비판에 흔들린 초기 ‘현장 지휘’

심지어 이 장관의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특위 여야 의원마저 이 장관을 격려했다.(상자기사 참조) 이런 분위기 혹은 ‘성원’ 덕분인지 이 장관은 해양수산부 장관에 유임됐다.(물론 그는 사고 수습 후 사퇴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다) 심지어 문창극 총리 지명자 낙마 이후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말은 요즘 이 장관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낸 주무부처의 최고 책임자이며, 사고 후 인명구조와 사고 수습을 망친 ‘무능공직자 1호’였다. 스스로 자인했지만 그는 직무를 태만히 해 많은 어린 학생들을 죽인 ‘죄인’이다. 해운사와 조합,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의 ‘관피아’ 부패고리는 이 장관이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개혁하지 못했다고 치자. 이 장관이 구조에 바쁜 해경헬기를 타고 진도로 간 것도 ‘현장 지휘’를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4월 24일 팽목항에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특정 언론사 보도에 대해 “개××, 이게 기사야”라고 호통치며 정부의 구조작업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 장관과 김석균 해경청장의 자세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구조작업에 대한 한 민간인의 비판과 주장에 주무장관, 청장이 아무 소리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은 철저히 직분을 망각한 행위였다.

“장관은 부처와 관련된 중요한 정책들을 결정하고 집행하며, 관련 분야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해 대응방안을 제시하고 해결해야 하는 등 소관업무에 대해서 최종적인 책임을 진다.”(대한민국 정부 발행, <장관 직무가이드> 12쪽) “(차관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태 초기에는 온갖 예단과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그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외부 호들갑에 연연하거나 외부 평가에 흔들린다면 국민은 당연히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불안감이 쌓이기 때문이다.”(원희복, <국가가 알려주지 않는 공무원 승진의 비밀> 200쪽)

장관은 이 위기상황에서 대응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기는커녕 민간인 앞에서 ‘찍소리 못하고’ 훈계를 듣고 있었다. 구조작업은 온갖 예단과 외부 평가에 흔들렸다. 처량한 모습으로 민간인의 ‘훈계’를 듣고 있는 장관과 청장을 보면서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가졌을까. 당연히 ‘국가는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장관이었다면 당당하게 비전문가의 주장을 반박하고 정부의 구조작업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했다.

4월 24일 진도 팽목항에서 이주영 장관과 김석균 해경청장이 유족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강윤중 기자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인사권자가 이 장면을 봤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사표를 받는 것이 정석”이라며 “인사권자는 저렇게 장관의 기본도, 대응능력도 없는 장관과 청장을 믿고 일을 했다는 것에 부끄러워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월급을 받고, 해야 할 고유 임무이며, 장비도 갖춘 해경이 ‘단지 배 주위를 돌며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런 해경청장과 구조단장의 뺨을 갈기고 즉각 해임해야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역임했던 한 전직 장관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컨테이너가 쌓여 항만 기능이 마비위기에 처했을 때 중대본 대책회의에서 건교부 모 국장이 ‘전례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 개××야, 이런 위기 때 무슨 전례를 따지냐’고 면전에서 욕을 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공식 회의에서 타부처 국장 면전에 욕을 한 것은 점잖치 못했지만 위기 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의 예를 든 것이다.

“수염이 연출이라면 역효과 날 수도”

이런 위기상황에서 덥수룩한 수염에 초라한 행색이 공감 받는 것은 그래서 이례적이다. 이는 얼마나 국민이 이 정부의 ‘공감’ ‘소통’에 굶주렸는지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수염을 기르는 것은 ‘수염 깎을 시간이 없이 일한다’는 바쁨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 장관은 팽목항에서 수염을 깎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지 않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회의 주재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실종자 가족을 만나 애로사항을 듣는 것이 일과이다.(해양수산부 업무도 처리한다고 한다) 특히 국회 특위에 참석하기 위해 이발소에 들렀다면 충분히 수염을 깎을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수염을 깎지 않고 있다. 이 장관이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는 이유다.

정치홍보 전문가인 정호성 R&B리서치 대표는 “세월호 사건을 참회하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 때문에 이 장관의 입장이 반전됐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하지만 수염은 초기에 수염을 깎을 시간이 없이 최선을 다한다, 밤잠 안 자고 최선을 다한다는 이미지를 줬지만 지금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 대표는 “수염이 연출된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순간,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어찌 됐든 이 장관은 판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매우 뛰어난 위기극복 능력을 가졌다. 그것은 지역구 국회의원 4선을 거치면서 쌓은 정치적 감각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정치는 1996년 ‘꼬마 민주당’에서 작게 출발했으나 4선의 집권당 정책위 의장을 지냈다. 사실 4선의 정책위 의장 출신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은 늦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수염이나 위기극복 능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의 이미지 정치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느냐이다. 이주영 장관의 수염 이미지에 공감을 넘어 환호하고 있는 이면에 우리가 놓치는 것은 없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이미지가 아닌, 철저히 따지고 캐묻고, 검증해야 할 과학적 사건이다. 우리는 그의 수염 이미지에 박수를 보내면서 주무장관으로서의 그의 과오와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경계해야 한다.

재난사고에서 망각은 공적 1호다. 유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역시 바로 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라 0416’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장관 격려의 장(?)이 돼버린 국회특위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보면, 이주영 장관의 심경과 그를 바라보는 국회의원의 시선을 알 수 있다. 몇몇 야당 의원이 이 장관을 공박했지만 그 수위는 낮았고, 여당 의원은 오히려 이 장관을 격려하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7월 1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이주영 장관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해양수산부 장관이 진도 현장에서 수고하신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이번 사고 책임자는 해양수산부와 그 유관기관이다. 동의하는가.(권성동 새누리당 의원)
“동의합니다.”

이 사고는 국가가 국민을 살리지 못한 사상 초유,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이 사건의 장관 책임은 어느 정도라 보는가.(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매우 큽니다.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0여일 넘는 기간 희생자들에게 헌신한 점은 높이 산다.(김현 의원)
“….”(눈에 빛이 반짝 빛나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몇 개월밖에 안 된 장관이… 관운이 없다.(김명연 새누리당 의원)

70여일 동안 현장에서 유가족, 실종자 가족과 사고 수습에 노력하는 것, 이 정부 관료 중에 진실과 사고 수습 모습 보여줘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민홍철 새정치연합 의원)

세월호 사건 이후 현장을 지휘하며 애쓰시는 모습 보고 있다. 그러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신의진 새누리당 의원)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