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안전하다

지난주 기자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대구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지하철공사, 앞뒤 못가리는 사고대책본부, 한 건 하려는 조급한 경찰, 슬픔을 속으로 감내하지 못하는 유족, 그리고 수백명의 기자가 뒤엉켜 있었다.이들은 마치 토머스 홉스가 말한 그 자연상태속에서 '만인(萬人)의 죄와 만인의 결백'을 서로 입증하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처절하게 투쟁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지하철은 천하에 몹쓸 ×'이라는 결론과 관련자 10여명을 사법처리하는 '전리품'에 만족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또 일상을 맞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지금까지 해 온 일은 한풀이식 마녀사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번 사고의 대가는 냉정하고도 정교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진정 우리 지하철은 천하에 몹쓸 ×이고 책임은 사법처리된 10여명에게만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지만 기자의 판단은 '절대 아니다'이다. 인간이 발명한 대중교통수단 중 철도나 지하철만큼 안전한 것은 아직 없다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사실 내장재 문제를 제외한 우리 지하철의 안전 시스템 수준은 외국과 비교해 높으면 높았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설치된 지 비교적 오래된 서울지하철 1, 2호선을 제외하고 우리 지하철은 컴퓨터에 의한 완전 자동방식(ATC 방식)으로 제어되는 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관사가 없어도 운행이 가능한 이 시스템은 유사시를 대비해 중앙사령실과 역, 전동차간 유.무선 비상연락장치가 거의 수준급으로 갖춰져 있다.

만약 문제의 1080호 기관사가 없었다면 오히려 피해는 더 줄었을지 모른다. 대구지하철은 기관사가 없어도 전동차가 자동으로 제어되고, 운전사령실에서 직접 승객에게 무선방송을 통해 대피를 지시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지하철 역사가 짧기 때문에 첨단시설이 설치된 덕분이다.

문제는 이런 첨단장치가 막상 위기에 닥쳤을 경우 얼마나 활용됐는가 하는 소프트웨어,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사전 경고나, 긴급 통신 등 보안시스템이 훌륭해도 최종 판단과 대응은 사람이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에서 1차적 책임은 화재가 난 것을 알면서도 중앙로역 진입을 허용하고 긴급지시를 태만히 한 중앙사령실, 현장에서 신속한 판단을 하지 못한 사고 기관사에게 있는 것은 물론이다. 또 첨단시설을 과신하고 경영 합리화 등을 이유로 인력을 줄인 지하철공사의 결정이 옳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여기까지만 아니다. 지하철은 특성상 한 전동차가 서면 줄줄이 다음 전동차 운행도 지장을 받는다. 당연히 전체 시스템 운영에 문제가 생긴다. 만약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불이 사소한 것이었고, 기관사와 사령실은 안전을 고려해 전동차 운행을 중단했으면 '사소한 불장난에 멈춰버린 시민의 발'이라는 질책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하철 노조가 준법투쟁에 돌입해 지하철이 늦어지면 승객은 물론 언론까지 나서 '시민의 발을 묶는다'고 비난하는 그런 문화다. 아니 비난을 넘어 관계당국은 사법처리까지 거론하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인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준법운행한다는 것을 처벌하는 정신나간 나라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이번 사고의 진정한 범인은 안전 조치로 인해 늦어지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하는 조급성과, 이런 조치를 규제나 불편으로만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사고방식과 생활문화에 있다. 우리 지하철 시스템은 안전하다. 이번 사고를 통해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은 하드웨어적 시스템 개선이 아니라 지하철 종사자는 물론 안전을 최우선으로 꼽는 국민 전체의 의식개혁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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