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희복의 인물탐구

‘왕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환란·공기업 부실 오욕, 경제살리기로 만회할까

어느 정권이나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실세’가 있게 마련이다. 호사가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보통 임금 ‘왕’자를 붙인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박지원 수석이 왕수석으로 통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문재인 수석,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상왕’으로 표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기춘 실장이 ‘왕실장’으로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다.

그런데 최근 신예가 등장했다. 바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요즘 왕실장인 김기춘 실장보다 ‘왕장관’ 최경환 부총리가 더 힘이 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과거 김기춘 비서실장이 부산·경남(PK) 인사의 통로였다면 최 부총리는 대구·경북(TK) 인사의 통로”라며 “요즘 승진이나 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최경환 부총리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한 언론은 “당·정·청에 포진한 인맥을 보면 일각에서 그를 ‘부통령’이라 부르는 게 헛소문만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근혜노믹스’ 대신 ‘초이노믹스’
그의 위세는 최 부총리의 성을 딴 ‘초이(Choi)노믹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DJ노믹스나 레이거노믹스, 아베노믹스 등 대통령이나 총리의 이름을 딴 경제정책은 많지만, 정책 실무자의 성을 딴 경제정책은 별로 없다. 그런데 초이노믹스라는 명칭은 기재부 보도자료에 버젓이 등장할 정도로 통용되고 있다. 반면 ‘근혜노믹스’라는 말은 조용히 사라졌다.


최 부총리는 비단 인사뿐 아니라 정책에서도 실세임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금 비난의 초점이 되고 있는 단말기유통법도 소관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를 제치고 기재부가 주도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최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을 공공연하게 말하면서 통화정책을 주관하는 한국은행을 압박했다. 심지어 법무부 장관 소관이자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재벌의 사면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위세가 오죽 하늘을 찔렀으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7일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은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며 그를 검찰에 고발했을까.

그에게 과도한 힘이 쏠리는 것은 ‘내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언’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돈을 쌓아만 놓고 투자는 안 해 돈이 돌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은 3년째 3%대를 맴돌고 있다. 세수는 걷히지 않아 7월 말까지 세수진도율(목표 대비 징수실적)은 58.2%대에 머물고 있다. 이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래 16년 만에 최저로, 엄청난 재정적자가 일어날 게 뻔하다.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는 더욱 가파르게 늘고 있다. 설상가상 외부적으로 엔저·달러 강세는 수출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직시절 별명은 ‘무대뽀’
이런 상황에서 최 부총리는 초이노믹스라는 칼을 들고 한국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섰다. 초이노믹스의 근간은 주택담보대출(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늘려 부동산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저금리를 유지하며, 기업 활동을 촉진하도록 세제를 바꾸고, 41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경기부양·금리·세제·예산 등 4종 세트를 총동원한 경기부양책이다. 여기에 부족한 재원은 담뱃값과 지방세 대폭 인상으로 만회하는 ‘꼼수’도 포함됐다.

초이노믹스의 효과는 단박에 나타났다. 강남 부동산 가격은 오름세로 바뀌고 ‘최경환 주가’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주가는 2100선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그 효과는 채 두 달이 가지 못했다. 치솟던 주가는 추락했고, 오히려 최 부총리 취임 때보다 더 떨어졌다.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국내에 유입됐던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41조원의 재정을 투입해도 경제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 8일 5조원 플러스 알파를 추가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과연 그는 위기의 한국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을까. 그는 관훈클럽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최 부총리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든다. 경제부총리가 되기 위한 ‘뻥’(허언)은 아니었을까, 그의 공직 시절 별명이던 ‘무대뽀’(일본말 무철포<無鐵砲>에서 유래한 말로 앞뒤 가리지 못하고 마구 달려드는 것을 의미) 스타일은 아닐까 등등.

9월 29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창조경제확산 위원회 출범 1주년 기념행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과거 능력을 먼저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인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행시 22회는 과거 100여명을 뽑다가 200여명 선으로 선발인원을 대폭 늘린 기수로, 최 부총리의 행시 합격은 어느 정도 운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최 부총리는 사무관 시절 별명이 ‘무대뽀’였다고 한다. 자신의 실수로 자료가 유출됐는데도 이를 보도한 기자와 욕하며 대판 싸웠기 때문이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따느라 6년간 외유했던 그는 1997년 6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보좌관으로 ‘뜻을 펼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닥친 경제위기인 IMF 사태를 예견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사실 그는 경제주권을 빼앗긴 ‘죄인’이었다. 본부로 돌아와 법무담당관이라는 한직에서 공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이런 원죄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무원을 그만둔 그는 공기업으로 가지 않고 특이하게 언론사로 갔다. 물론 일선에서 취재를 하고,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기자가 아닌, 사설이나 칼럼을 쓰는 논설위원이었다.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자율은 극대화해야 한다’는 기업 친화적인 글을 썼다. 하지만 소득·법인세 인하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보였다. 언론사 시절 같이 근무했던 한 기자는 “한국경제TV에서 뉴스브리핑을 잠시 진행했는데 매우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임했고, 후배에게도 깍듯이 대했다”고 말했다.

과거 성적표는 ‘건전화’보다 ‘부실화’
그는 언론사 생활을 하는 동안 TV 경제토론이나 대담에 많이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결국 그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대통령후보 상근 경제특보로 정치권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고향인 경북 경산·청도에서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원래 그는 이회창 사람이었지만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 종합상황실장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회창이 탈당해 만든 자유선진당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에 임명됐다.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 정책이 성공적이었느냐 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완주 의원은 “(최근 석유공사는) 1조원 주고 산 캐나다 정유시설(노스 애틀랜틱 리파이닝)을 900억원에 팔기로 했다”면서 “이 정유회사를 살 당시 책임자가 최경환 장관”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 에너지공기업의 부실은 매우 심각하다. 당시 공기업 부실 책임이 있는 최 장관이 현재 경제부총리로 공기업 개혁을 주도하는 것도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선후보 비서실장에 임명되며 확실한 ‘친박’ 인사로 자리잡았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때부터 부총리는 물론 총리감으로까지 거론됐다. 최 부총리는 정치적 능력만 놓고 봤을 때 성공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그의 경제적 문제해결 능력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경제의 운명,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 부총리의 능력에 대해선 안심보다 우려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는 공무원 시절 주요 정책을 실무적으로 담당해본 경험이 적었다. IMF라는 미증유의 환란이 닥쳤을 때도 청와대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MB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맡았을 때는 공기업 부실의 책임까지 있다. 그의 경제 해결능력 성적표는 ‘건전화’보다 ‘부실화’가 많다. 누가 봐도 ‘꼼수적 증세’인데, 증세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을 보면 유연한 경제정책가가 아닌 고집스런 정치가의 면모까지 보인다.

국민들도 초이노믹스에 대해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내일신문>이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9월 30일·전국 성인남녀 800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의 55.7%가 초이노믹스에 대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한 반면, 성공할 것이라는 의견은 31.6%에 그쳤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의 약속이 ‘보증수표’가 될지 ‘부도수표’가 될지 아직은 점치기 힘들다. 이 경제위기를 훌륭히 극복하면 그는 대권까지 넘볼 수 있는 큰 정치인으로 우뚝 설 것이다. 반면 부도수표를 날린다면 그는 역사와 국민에게 큰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물론 그의 정치적 미래도 없을 것이다.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국민공감 얻어 증세하겠다”


최경환 부총리는 10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관훈클럽이 주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최 장관은 경제 전반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이 중 주요한 대목만 요약해본다.

적십자회비를 5년간 한푼도 내지 않은 사람을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임명했고, 회계장부조차 잘 보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자니윤씨를 관광공사 감사에 임명했다. 이 모두 기획재정부 산하 인사위원회에서 한 것이다.
“허허허.(웃음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낙하산 문제는 이 정부만 아니라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다. 외부인사라고 무조건 낙하산이 아니다. 직책에 맞는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급적이면 전문성을 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성 없는 사람이 많다. 정통성도 명분도 없는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 개혁을 이룰 수 있는가.

“공공부문 개혁은 차질없이 되고 있다. 낙하산과 상관없이 강도 높게, 지속적으로 공공개혁을 추진하겠다.”(질문은 현실을 얘기하는데 최 부총리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 질문과 답변이 겉돌고 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 혹은 가석방 문제가 논란이 됐다. 법무장관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나.

“(웃으며) 없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구속된 재벌 총수를 가석방, 사면해야 한다는 것은 자칫 국민의 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가석방의 요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 충족되면 하라는 것이다. 기업인이라고 역차별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기업쪽 하소연을 듣는데, 기업 총수가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 특히 외자유치 때 주요 그룹의 총수가 구속된 상태에선 아무래도 어렵다. 일부 언론이 사면·복권까지 얘기하는데 그건 아니다.”

서민증세이 논란 뜨겁다. 특히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는 담뱃세 500원 인상에 반대했다. 그때는 왜 그랬나?

“담뱃값은 2004년 500원 올린 이후 10년째 안 올렸다. 그 사이 다른 나라는 많이 올렸다. 그러다 보니 담뱃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싼 편에 속한다. 성인 흡연율이 최고이고, 청소년 흡연율이 성인 흡연율과 같다.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 담뱃값 인상안을 국회에 낸 것이다. 담뱃값 인상 필요성이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야당 시절 담배는 서민이 많이 피워 서민 역진세 성격이 있고, 흡연율을 낮춘다는 결정적 근거도 없다고 주장했었다. 여야 입장이 바뀌어 달라진 것 아닌가.

“허허허.(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으며) 세계적으로 흡연율 감소에 값 인상이 효율적이라는 보고가 많다. 경제정책, 가격정책은 만고불변이 아니다. 상황에 맞게 바꾸는 것이 정책하는 사람의 자세다. 과거 무슨 생각을 고집하는 것은 정책을 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니다.”

담뱃세에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신설했다. 그러고도 증세가 아닌가.

“증세는 아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조치다.”(최 부총리는 매우 고집스럽게 ‘증세는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주민세, 자동차세를 올렸다. 세금은 올리지만 증세는 아니라는 주장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논리의 연장 아닌가.

“주민세는 26년 전 그대로다. 그 사이 물가가 5배 이상 올랐다. 자동차세도 10년 정도 안 올렸다. 이건 증세라기보다 현실화라고 해석해야 한다. 세금도 그때그때 현실화하는 것이 맞다.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은 지방정부의 강력한 요청을 중앙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65%가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증세 없는 복지의 진실을 밝힐 때가 되지 않았나.

“현 단계에서 증세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어떡하든 경기를 살려 세입을 늘려야 한다. 버틸 때까지 버티는 것이 정부의 자세다. 하다 안 되면 국민의 공감을 얻어 증세를 할 것이다. 현 단계는 버틸 만하다. 실질성장률 4%만 되면 가능하다. 분기별 1% 성장인데, 세월호 때문에 0.5%로 반토막 났다.”

증세를 한다면 직접세를 우선 올릴 것인가. 간접세를 올릴 것인가.

“증세 안 한다. 현 단계에서 증세는 절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