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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김문수가 온몸으로 쓴 역사, 어떻게 지우나?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이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이렇게 ‘사실을 장기간, 방대한 분량으로 기록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사실의 기록과 역사적 평가를 중요시했다는 얘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역사적 심판이다. 아니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은 애당초 정치인이 될 자격이 없다. 역사의식이 없는 권력자는 브레이크 없는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와 같다. 그래서 일부 정치인은 역사 기술에 개입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실제 개입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최근 <경기도 현대사>라는 역사서를 만들어 3월부터 경기도 공무원들의 교재로 쓴다고 한다. 도청에서 역사서를 만드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문제는 이 역사서 기술에 참여한 사람들이 뉴라이트 계열 교수와 보수신문 주필, 특정정당 자문단을 지낸 인물 등 대단히 편향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역사서의 내용은 뻔했다. 이 책은 5·16 군사쿠데타를 “국가경제의 곳간을 채우고, 5·16이 나자 대다수 국민은 올 것이 왔다면서 암묵적으로 지지하였다”고 서술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고, 많은 국민이 호응했다는 것이다.




사진은 김문수 경기지사가 1988년,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가족들의 모임인 민가협(민주화가족실천협의회) 행사에 참석해 ‘양심수 전원 석방’을 외치는 모습이다. 가냘프고 굵은 뿔테 안경을 썼지만 머리띠를 두른 모습에서 강인함이 번뜩인다.





사실 김문수 지사는 5·16 쿠데타가 만든 개발독재에 정면으로 항거한 인물이다. 학생운동에서 50년대 학번인 4·19세대(1960년 학생혁명)와 60년대 학번인 6·3세대(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가 ‘낭만적이고 자유주의적’ 학생운동 시절이라면 김 지사의 70년대 학번은 사회과학 이념으로 무장하고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정면으로 대항했던 세대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김문수 지사이다. 그는 이론과 실제에서 단연 앞선 인물이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때려 치우고(타의로 제적됐지만) 현장 노동자로 개발독재에 맞선 그의 행적 하나하나가 70년대 역사였다. 그가 온몸으로 쓴 역사책을 보고 많은 후배들은 웃으며 감옥에 갔고, 고문을 당하다 죽었으며, 심지어 할복, 분신까지 했다. 그가 구호를 외치는 사진속 주변에 서 있는 후배들이 그들이다.


그는 1996년 집권 여당에 들어올 때 ‘정치로 모순사회를 변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경기지사까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그의 ‘초심’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온 몸으로 쓴 역사를 지금 ‘지우겠다’고 나선 것은 의외이다. 그가 온몸으로 쓴 박정희 유신시대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치기 어렸던 장난’으로 기록할 것인가, ‘모순사회를 변혁하려는 몸부림’으로 기록할 것인가. 또 많은 후배들의 제적, 투옥, 고문, 할복, 분신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그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권력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권력이 역사적 평결을 바꿀 수도 있다는 오만함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권력도 역사를 바꿀 수 없고, 그 어떤 권력도 역사적 평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권력은 역사앞에 너무나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