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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여성 대통령 시대, 강(强)·유(柔)의 리더십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25일 열린다.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다. 남존여비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우리나라에 여성대통령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많은 여성운동가, 여성정치인이 쌓은 노력의 결실이리라.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여성의 위상은 낮다. 여전히 여성은 정치적으로 미약하고, 사회적으로 열악하고, 경제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못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고 박순천 여사이다. 그는 이땅의 많은 여성운동가 중에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다. 1919년 마산에서 교편을 잡다가 3·1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여 옥고를 치렀다. 이후 박 여사는 일부 친일논란 속에서 농촌계몽운동과 여성인권운동을 펼치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후 대한민국 감찰위원, 대한여자청년단장 등 그는 ‘강성’ 직책을 맡았다. 그리고 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당당히 당선됐다. 이후 4~7대 국회의원을 부산, 서울 마포에서 당선되는 등 그는 전국적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마침내 그는 1965년 통합야당 민중당(民衆黨) 대표최고위원이 됐다. 여성이 제1야당 당수가 된 것은 박순천 여사가 처음이다. YS 와 DJ 모두 그 밑에서 정치 수업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에게 ‘여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사진은 바로 그 여걸 박순천 여사가 1967년 국회본회의장 의석을 돌며 의원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모습이다. 아마 당시 유행했던 ‘오리온 드롭푸스’였을 것이다. 한복에 사탕통을 들고, 의석마다 돌면서 한움쿰 사탕을 쥐어주는 모습은 영락없는 손자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할머니 모습이다. 의석에서 재털이까지 놓고 담배를 피우는 의원들에게 “담배는 해로우니 사탕을 먹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박 여사가 이런 자상한 모습을 보인 1967년은 여야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을 위한 개헌선 확보를 위해 6·8 총선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에 야당의 반발은 물론, 학생 시위가 일어나 전국 31개 대학, 163개 고등학교가 휴교됐다. 고등학생까지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나선 것이다. 야당도 무려 6개월간 국회투쟁을 벌였다. 


사진은 바로 그 시기 농성하는 의원들을 격려하는 모습이다. 그 힘든 투쟁에서 ‘할머니’가 주는 달콤한 ‘오리온 드롭푸스’ 한 알은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또 이 사탕 한알은 첨예한 여야 갈등을 녹이는 촉매제가 됐을 것이다. 이후 ‘여걸’ 박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과 담판을 벌여 정국을 풀었다.


36년이 지난 지금 사진속 정국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 요즘 정부조직법 개정과 조각에서 불거진 인사청문회를 놓고 여야가 갈등을 빚고 있다. 여당은 야당이 정부출범의 발목을 잡는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박근혜 당선인이 단 한발짝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사실 박근혜 당선인은 지금까지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다. 정수장학회를 환원하라는 주변의 간곡한 조언도 거부했고,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인사스타일을 바꾸지 않는다. 지금 새누리당은 ‘박 당선인의 결정은 곧 법’이라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를 인정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오히려 강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그 ‘강력한’ 박정희 대통령도 사진속의 박순천 여사에 대해 사석에서는 ‘누님’으로 불렀다고 한다. 무서운 장수일 수록 오히려 상대를 예우하는 법이다. 


36년전 박순천 여사가 사진에서 보여준 강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강(强)·유(柔)의 리더십, 박근혜 여성 대통령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