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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앗! 김영삼 대통령이 국회에서 잠옷차림으로…

요즘 국회선진화법을 놓고 이런 저런 말이 많다. 이것은 지난해 국회의 품격을 높인다는 취지로 국회법을 개정한 것이다. ‘몸싸움 방지법’이라고 하지만 ‘날치기 방지법’이 더 어울린다. 이 국회법 개정은 새누리당, 지금의 황우여 대표가 앞장서 이뤄냈다. 


새로운 국회법에는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혹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그리고 여야가 합의한 사안 등 3개로 국한한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으로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의장 직권상정이 불가능하다. 


정부조직법에 발이 묶여 있는 정부여당은 이 법을 날치기 처리하려 했다. 그러려면 의장이 직권상정을 해야 하는데 앞서 3가지 요건에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여당은 북한의 최근 안보위기를 전시·사변으로 봐야 한다는 ‘비약적인’ 논리를 펴기도 했다. 하지만 군장성들이 골프치러 간 것이 드러나 머쓱해졌고, “1972년 유신시절 논리”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명분이 서지 않자 여당은 새 국회법의 신속처리 요건인 ‘재적의원 과반수 참석에 5분의 3이상 찬성’이 다수결 원칙을 훼손하는 ‘위헌’이라는 이유로 위헌법률 신청을 한다고 한다. 지난해 자신들이 법을 만들고, 자신들이 위헌신청을 하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안 날치기와 이를 저지하기 위한 몸싸움, 이것은 우리 국회에서 벌어진 고질적인 문제거리였다.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악질적’ 날치기를 꼽으라면 단연 3선 개헌 날치기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3선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바꾼 이 3선 개헌 날치기는 영구집권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중앙정보부가 주도해 반대하는 여당국회의원까지 감금하고 고문하는 공포분위기에서 추진됐다. 이 개헌에 야당은 물론 전국적으로 학생·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제1야당 신민당은 날치기를 막기 위해 국회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고 밤샘농성에 돌입했다


사진은 김영삼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단상에 이부자리를 깔고 철야농성을 하는 모습이다. 고급스런 비단 잠옷을 입은 YS모습이 한편으로 ‘귀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바지까지 벗어 의자에 걸어 놓은 모습을 보면 국회단상이 무슨 ‘여인숙 침상’ 같은 분위기이다. 


당시 YS는 제1야당 원내총무로 그 유명한 ‘초산테러’까지 당하면서 3선개헌 저지를 지휘했다. YS 바로 옆에는 이민우 의원(후에 민한당 대표를 지냈다)이 반팔 런링셔츠 차림으로 잠자리에 들고 있다. 이 의원의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아저씨이다.(실제 이 의원은 시골에서 양계장을 했다)


하지만 9월14일 새벽 2시50분, 윤치영 국회의장은 본회의장이 아닌 별관에서 122명의 의원을 소집, 날치기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얼마나 급했는지 의사봉이 없자 주전자 뚜껑으로 책상을 3번 두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세월은 흘러 사진속의 김영삼 의원도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YS도 적잖은 날치기 기록을 세웠다. 가장 대표적 날치기는 1996년 이른바 노동법 날치기이다. YS는 12월 25일 크리스머스날 새벽 6시 노동자의 해고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 파견근무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국회본회의장에서 날치기 처리했다. 당시 김문수 의원(현 경기지사)과 홍준표 의원(현 경남지사)은 이 날치기에 가담하기를 거부했으나, ‘탈당과 동참,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당 지도부의 압박에 결국 새벽 날치기에 동참했다.


YS는 이날 성공적인 날치기를 보고 받고 “내 사전에 레임덕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날치기 이후 아들 김현철씨 문제가 불거지면서 급격한 레임덕을 맞았고, 결국 나라 경제를 IMF로 몰고갔다. 3선개헌 날치기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도 유신헌법까지 만드는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불통의 정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일깨우는 소중한 교훈이다.


참 공교롭게 사진속의 원인을 제공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됐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성숙도는 YS가 날치기 하던 시절은 물론, 사진속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다르다. 국회법도 역시 많이 달라져 있다. 하지만 어렵게 성숙시킨 제도를 다시 과거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다시 나오는 것은 비극이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권력자들의 ‘오만’은 바뀌지 않은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