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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정보기관

최근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종부세 부과 대상을 공시가격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세대별 합산을 개인별 합산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상 종부세의 알맹이를 빼버리는 행위입니다. 이 의원은 “장기적으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역구가 강남이니 이해는 갑니다만 종부세가 ‘불필요한 (투기 목적의)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다’는 취지인 점에서 이 의원의 모습은 좀 그렇습디다.

이 의원을 보니 그의 부친이 생각납니다. 아시다시피 그의 부친은 과거 야당 수석부총재를 지낸 7선의 이중재 전 의원입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군정 시절 공산당 기관지를 찍던 인쇄소에서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공산당을 불법화시킨,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당시 미군정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증거와 연구가 요즘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 사건은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재판이 열리는 서소문 주변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몰려와 “모략공판 중지하라. 일제강점기에도 이런 일이 없었다”라고 항의할 정도였으니까요. 오죽했으면 법정에 군중이 몰려들어 경찰이 총을 발사해 중학생이 사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겠습니까.

바로 그때 이 의원의 부친 이중재 학생(당시 고려대)이 법정에서 “이런 재판은 일제강점기에도 없었다”라며 재판장 앞으로 몸을 날린 ‘기개’를 보인 적이 있습니다. 이중재 학생은 이 법정 시위 때문에 포고령 위반죄로 무려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년 전쯤 기자가 “그때 무슨 용기로 법정 앞으로 돌진했습니까”라고 묻자 이 의원은 깜짝 놀라며 “혈기 왕성한 젊을 때였으니까… 옛날 얘기는 하지 맙시다”라고 하더군요. 그때 이 의원은 젊은 기자가 그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했던지, 아니면 소싯적 자신의 기개가 자랑스러웠던지 아무튼 묘한 표정을 지은 기억이 납니다.

어찌됐든 당시 혈기 왕성했던 이중재 학생은 그후 정치에 뛰어들어 7선의 중진을 거치면서 특히 우리나라 야당사에, 그것도 정치적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이종구 의원의 집안 얘기가 생각난 것은 바로 소유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 문제와 관련해 아버지와 아들, 촛불집회, 잃어버린 10년 등 최근 벌어지는 첨예한 쟁점과 사태에 대해 시간과 상황이 주는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복잡하지만 단순한 사실이 있더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민주화, 인권의 제도화, 인간 기본권의 보장 등이고 이를 위해선 정보기관이 제자리에 있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 요원이 판사에게 재판 내용에 대해 따져물었다고 하더군요. 혹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10년 전 정보기관의 행태를 찾아 다시 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이번 호 뉴스메이커에서는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 국가정보원을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뭐가 달라졌는지 따져 봅시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08/12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