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회에서 신화적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고건 전 총리입니다. 고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전남지사와 청와대 정무2비서관, 최규하 대통령 옆에서 정무수석비서관, 전두환 대통령 밑에서 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으로 국정운영에 참가했습니다.
또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서울시장 임명장을 받아 관선시장을 지냈고 김영삼 대통령 때는 2인자인 총리에 올랐습니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어도 고 전 총리의 출세가도는 여전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다시 민선시장 공천장을 받아 당선됐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다시 총리로 지명됐습니다.
학생혁명과 군사쿠데타, 대통령이 피습되고, 전직 대통령이 줄줄이 감옥으로 끌려간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에서 무려 7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온전히 국정을 운영한 사람은 아마 고 전 총리가 유일할 겁니다. 앞으로 고 전 총리와 같은 인물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공무원 사회에서 그는 ‘행정의 달인’ 경지를 넘어 ‘입신’의 경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의 업무스타일 혹은 처세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 아예 ‘고건학’이라고 부르는 단편이 공무원 사회에서 구전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고 전 총리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고 합니다. 만년 참모, 혹은 2인자에서 1인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정치적 기반이 거의 없는 그가 대권레이스에 참가하려고 결심한 것을 보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입니다. 무려 7명의 대통령이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고 지금껏 살아왔던 그 명석한 두뇌에 비추어 본다면 누구처럼 무모한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자분도 잘 아시다시피 정치판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곳입니다. 일시적인 여론조사를 믿고 나섰다가 신세 망친 정치인도 있고 학벌과 경력으로 나섰다가 큰코 다친 분도 있는 것이 정치판이고 대통령 선거입니다.
더구나 고 전 총리는 정치의 기반이자 ‘전위대’라고 할 수 있는 정당기반이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그를 후보로 만들어줄 리 만무고 열린우리당이 그를 후보로 추대해줄지도 의문입니다. 조그만 정당을 엮고 적당히 정개개편에 편승해 후보가 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요즘 고 전 총리의 걸음걸이가 달라졌습니다. 숟가락만 폼나게 들고 있으면 진수성찬이 올 것이라 믿던 과거와 달라진 느낌입니다. 적수공권으로 대권을 잡겠다고 나선 고 전 총리가 믿는 구석은 무엇일까요. 이번호 ‘뉴스메이커’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7/05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