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48)
그동안 열심히 녹색 건강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허인회 전 고려대총학생회장이 얼마전 연단에 올랐다. 지난 1월 11일 독립문이 있는 서대문 공원에서 열린 ‘민주화세대 시국선언 모임’에서 였다. 허 씨는 80년대 중반, 이른바 전국 대학학생회 연합체인 전학련(전국학생총연합)의 산하기구인 삼민투 위원장을 지내며 학생운동의 ‘전위적’ 인물로 통했다.
이날 행사는 80~90년대 전국대학 민주동문회원이 박근혜 정권의 반민주성을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1만3451명이 서명한 이날 시국선언은,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에 대해 독립적인 특검 도입, 정부정보기관 해체 수준의 개혁, 철도 민영화와 의료 시장 개방 등의 강압적 정책 중지, 경제 민주화와 노인 의료, 영유아 민생복지 즉각 시행 등을 요구했다.
허 씨 개인은 물론, 그의 집안은 모두 ‘운동권’이다. 그의 장인어른은 60년대 박정희 ‘사법살인’의 대표적 사건인 인혁당 사건으로 고통을 받았다. 이 인혁당 사건은 재심을 통해 부당한 국가권력의 만행으로 드러났고, 그의 장인어른은 겨우 쥐꼬리 만한 배상금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 문제없이 지급하던 과거사에 대한 배상금을 이명박 정부들어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 배상금 액수를 대폭 깎아 버렸다. 사실 대법원이 전원합의부가 아닌 재판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은 위법한 것이다. 이후 정부는 이들 피해자에게 보상금 일부를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려 20%에 이르는 연체 이자까지 물린다고 한다. 과거 피해를 줬던 정부가 배상과정에서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대를 이은 민주화운동으로 감방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허 씨는 운이 나쁜 것 같다. 허 씨는 학생운동으로 투옥된 후 감옥에서 나와 이런 저런 운동과 사업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정치판에 들어가 지구당 위원장까지 됐으나 2000년 청와대에서 DJ(김대중 대통령)에게 큰절을 한 것이 문제가 돼 선거에서 낙선했다. 큰 절 한 것이 ‘봉건적 마인드’라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홍준표 현 경남지사는 의원시절 YS(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심지어 허 씨와 비슷한 연배인 새누리당 원희룡 전 의원은 전두환에게 큰절 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것에 비하면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과한 것이었다.
사진은 1985년 4월 전학련의 3대 이념인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는 삼민투 허인회 위원장의 모습이다. 도서관을 점거해 격렬히 구호를 외치는 이 모습은 물론, 그는 태극기를 몸에 감고 삼민투 깃발을 흔들던 행동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삼민투는 전학련의 3대 이념을 실천하는 상설 전위조직이었다. 그는 이 활동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은 ‘이들이 요구하는 민중민주주의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를 교묘히 위장한 것으로 이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통합진보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 사건에서 나오는 바로 그 민중민주주의 논란 그것이다. 이에 허씨는 1986년 3월 5일 서울형사지법에서 열린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민중사관이 정립된 것은 1920년대 초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분은 공산주의에 적극 반대한 사람인데, 조선혁명선언이라는 것을 통해 민중사관을 정립했고, 그것이 바로 민족정통세력의 논리였습니다. ~ 이 땅에는 민족적 진실이 왜곡된 것이 많습니다. ~ 진정한 안보는 이 땅에 민주주의가 보장되고 군인들이 자기 직무에 충실하고 전선으로 돌아갈 때만이 보장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는 계급적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존주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실존적 자각과 결론을 통해 우리는 환희를 느끼기 때문에 학생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최근 통합진보당 강령을 놓고 벌어진 ‘민중민주주의’ 논란은 28년 전 공안검사가 주장했던 그 논리와 한 치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허씨는 당시 법정에서 “이 사건은 경찰권력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 공안검찰은 허인회 학생에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형을 구형했다. 28년 전은 바로 전두환 독재시절로, 요즘 1000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는 있는 영화 ‘변호인’의 시대적 배경이다. 그 당시 학생과 민주인사를 단죄했던 논리가 28년이 지난 지금 한 치도 틀림없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녹색건강 사업을 하던 50대 가장에게 다시 마이크를 들고 연단에 서게 만든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이 시대가 생업에 매진하던 그를 전위의 행동가로 다시 불러낸 것은 분명 비극이다. 20대 학생 허인회는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외쳤다.
“민족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지식인들의 의무입니다. ~ 소크라테스는 최후 진술에서 ‘그대들은 살터, 나는 죽을 터, 어느 길이 좋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신만이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옳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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