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49)
실망스런 이경재 방통위원장
직장을 빼앗는 ‘해직’라는 단어는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정권 등 권위주의적 정권이거나,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는 정권에서 양산됐다. 특히 해직교수, 해직기자가 대표적이고, 심지어 변호사의 자격을 정지시키는 해직변호사까지 만들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해직 변호사 출신이다. 게다가 문인이나 정치인을 구속해 글을 못쓰게 하고,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해직정치인까지 만들어 내기도 했다.
얼마 전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는 해직교수가 양산됐다. 사립대학이지만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기자나 문인, 반정부적 글을 쓰고 강의하는 교수, 정권을 비판하다 구속된 이른바 양심수를 무료 변론하는 변호사 등 비판적 지식인은 어느 정권이나 눈엣가시일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쫒아 버리고, 자격을 정지시키는 ‘짤린 지식인’을 양산한 정권치고 오래 지탱하거나 역사적으로 좋게 평가받는 경우는 없다.
사진은 1987년 한겨레사회연구소 창립식 모습이다. 맨 오른쪽 이경재 당시 동아일보 기자가 조금 피곤한 표정으로 앉아있고, 맨 왼쪽에는 임헌영 경향신문 해직기자(민족문제연구소장)가 아예 눈을 감고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단상 앞쪽 장면에는 장을병 해직교수가 창립선언문을 읽고, 한완상 해직교수, 박형규 목사 등이 앉아있다.
1987년 학생 시민들이 일궈낸 6월 항쟁으로 전국은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지식인은 지식인대로 시대에 부응하려고 머리를 맞댔다. 그때 해직 교수, 해직 기자, 눈 밖에 난 종교인과 문인 등 이른바 ‘짤린 지식인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바로 한겨레사회연구소이다.
여기에는 해직 교수인 장을병(성균관대) 한완상(서울대), 김승균(서울대), 짤린 경제학자 박현채, 박용길 여사(문익환 목사 부인), 박형규 재야 목사, 재야 시인 고은, 그리고 해직 기자출신 김중배, 이경재, 임헌영, 김삼웅 등이 참여했다. 이 연구소는 ‘자주, 민주, 통일’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나름 민주화, 통일운동에 이론적, 정신적 바탕을 제공했다.
1980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됐다가 1984년 겨우 복직된 이경재 기자(당시 논설위원)도 이 모임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유신쿠데타>(1986년) <코리아게이트>(1988년) 등을 저술하며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까발리는 날카로운 필봉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양 김씨의 분열로 1987년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이어진 1988년 총선은 양 김씨의 평민당, 민주당 영구 고착화를 확인하는 자리만 됐다. 민주화의 길은 멀어 보였고, 연구소 내 친 DJ와 친 YS 인맥도 각자의 길을 떠났다. 이때 이경재 기자는 YS를 따라 갔고, YS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공보수석, 대변인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 4선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알고 있던 정치인 이경재는 지난해 박근혜 정권에서 방송통신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장관급인 방통위원장은 공영방송사를 손에 쥐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부총리급이다. ‘짤린 지식인’ 한겨레사회연구소 출신으로 박근혜 정권에서 이렇게 중용된 것은 이 위원장이 처음일 것이다.아니 당시 자주, 민주, 통일을 주창하던 '짤린 지식인'이 박근혜 정부에 동조한 사람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사실 그는 부총리급이 되기에 손색이 없는 날카로운 판단력과 용기를 가졌다. 그는 저서 <유신 쿠데타>에서 “그는(박정희) 유신체제를 선택해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 불행의 씨를 남겼고, 국가 민족에게는 민주주의의 퇴보와 헌정중단의 악순환을 유산으로 남겼다”라고 평가했다.(p.69)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 가담한 이 위원장은 ‘종교방송으로 허가받은 CBS가 보도방송을 하는 것은 유사보도’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 해직기자들이 만들고 있는 ‘뉴스타파’도 유사방송이라는 이유로 제재하려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언론관련 시민단체와 야당이 반대하는 KBS시청료 인상은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이런 방송정책이 CBS와 뉴스타파가 박근혜 정부에게 비판적이고, KBS는 우호적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간첩’이라는 망말을 거침없이 하는 종편에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것에 비추어 참으로 실망스런 행보이다.
그는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해직기자 출신으로 방송언론의 자유와 비정파적 방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지금 방송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며 비정파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본인이 말했듯이 해직기자의 처지는 자신이 고통스럽게 겪어봤던 경험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는 방송 민주화를 주창하다 해직된 후배 ‘해직기자’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법원에서도 그들의 해직은 부당하다고 판결까지 했다.
28년 전 피곤한 표정으로 ‘짤린 지식인’ 모임에 앉아있는 이경재 기자. 지금은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자리에서 그 초심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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