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1)
데자뷰 1987년...
법무부장관=“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은 법무부장관이 헌법위원회에 해산을 제소할 수 있다, 해산사유가 발생한 정당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제소를 검토하겠다.”
최근 헌재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을 요청한 황교안 법무부장관 발언이 아니다. 1987년 5월 11일 당시 김성기 법무부장관이 국회법사위에서 한 발언이다. 정적을 말살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치졸한 수법인 정당해산 기도가 27년 전에 벌어졌다.
1987년 1월 14일 전두환 정권은 서울대 박종철 군을 고문하다 죽였다. 처음에는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고문치사 사건이 드러나고 민심은 분노했다. 국민은 지리한 야당에게 분명한 행동을 요구했다. 5월 1일 YS(김영삼) DJ(김대중)가 합세해 선명야당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당시 DJ는 정치활동 규제자로 묶여 YS가 총재를 맡았다.
전두환 정권과 민정당 노태우는 위기에 몰렸다. 이때 선명 야당 통일민주당에 대한 정당해산 기도가 시작됐다. 전두환 정권은 ‘통일민주당의 정강정책이 국기와 민족생존권을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내용’이라며 대대적인 공안몰이를 벌였다. 통일민주당 정강정책 “민족의 통일이 정치적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는 민족사적 제1과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국정지표로 삼는다”(제2절 제8항)는 대목을 문제 삼은 것이다.
대검공안부장이 ‘통일민주당 창당에서 좌경용공세력 개입여부를 수사하고 있다’고 위협했고, 법무부는 ‘통일민주당의 정강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정당해산을 헌법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 겁박했다. ’땡전뉴스‘와 어용 언론은 이들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첨예한 긴장관계는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광주민주화운동 추모미사에서 절정에 올랐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청와대, 안전기획부, 법무부, 검찰, 경찰 등이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불법 고문 치사도 문제였지만, 권력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은 더욱 큰 문제였다.
국민은 분노했고, 정국은 거의 막장까지 이르렀다. 독재정권의 칼은 YS의 총재 취임연설, 정강정책 등 야당에 대한 종북몰이로 나타났다.
사진은 당시 문제의 정강정책 기초에 참여했던 두 당직자의 모습이다. 왼쪽은 이협 신민주전선(당시 야당 당보) 주간, 오른쪽은 안경률 선전부 부국장이다. 이협은 6.3세대로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인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으로 제적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졸업 후 신문사 기자를 하다 정치권에 몸담은 상태였다. 안경률 역시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지하서클에서 활동하다 구속된 전력이 있다. 전북 출신인 이협은 DJ의 동교동을 대리하고, 부산 출신인 안경률은 YS의 상도동을 대리했다.
사진은 6월 1일 경찰에 강제 연행됐던 두 사람이 당사로 돌아와 각자의 소감을 말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은 경찰수사에서 묵비권을 행사, 일체 답변을 하지 않았다. 통일민주당은 이런 공안몰이에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민족적 대단결을 통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전두환의 1982년 연설을 들이대며 전 의원 단식농성으로 맞섰다.
결국 독재정권의 이런 공안몰이는 이른바 노태우의 ‘6.29 항복’으로 유야무야 됐다. 스스로 국면전환용 공안몰이였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당시 눈을 부라리던 공안몰이의 선봉대 김성기 법무부장관이나 공안부장은 법률가로서 최소한의 자격이 없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곧 이어진 12월 대선을 앞두고 DJ는 평화민주당을 창당, 독자출마의 길을 걸었고 분열된 민주세력은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1988년 총선에서 3당으로 밀려난 YS는 노태우의 민정당, 김종필과 합치는 이른바 ‘3당 합당’을 단행한다. 그러니까 문제의 '종북' 정강을 가진 통일민주당은 지금 공안정국을 주도하는 새누리당의 할아버지뻘 정당이다.
사진 속 두 사람은 그 후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고 이협은 4선, 안경률은 3선의 집권당 사무총장까지 지냈다. 이협은 DJ를 따라, 안경률은 YS를 따라 여야로 갈리기는 했지만 서로의 동지애는 남다르다.
햇병아리 기자 시절, 놀란 가슴으로 보았던 취재현장이 27년이 지나 정년퇴직을 코앞에 둔 지금 다시 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으로, 사진 속 통일민주당 이협, 안경률 연행은 이석기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당직자 구속으로, 그 때 박형규 목사 구속은 지금 박창신 신부 수사로, 통일민주당 정당해산은 지금 통합진보당 정당해산과 정확히 겹쳐진다. 소환자의 묵비권 행사나, 의원들의 단식투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1987년 봄, 부도덕한 공권력이 공안몰이를 통해 마지막 반전을 시도하지만 결국 막장정치로 이어지면서 어떻게 몰락하느냐를 지켜봤다. 정당해산을 시도하려다 무위에 그친 그 때에 비추어 지금 정권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을 실제 신청했다. 검찰도 징역 20년을 구형하면서 ‘북한과의 연계는 없다’고 밝혔는데,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거리다.
그런데 그해 12월 YS와 DJ의 분열로 엉뚱한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등장했다. 지금 통합진보당의 독자노선, 안철수 신당 출현으로 인한 야권 분열까지 그 때를 닮아 가는가?
데자뷰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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