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2)
2세 정치인의 명암
요즘 정치권에는 2세 정치인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심지어 3세 정치인까지 등장했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제1야당 민주당 김한길 대표최고위원은 1976년 박정희 대통령과 맞선 김철 전 사회당 당수의 아들이다.
현재 여야 사무총장도 모두 2세 정치인 출신이다. 요즘 아프리카박물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착취사건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홍문종 사무총장은 부친(홍우준*12대 민정당)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경우이다. 민주당 노웅래 사무총장의 부친은 노승환 전 국회부의장으로 역시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서울 중구 정호준 의원의 부친은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이고, 조부는 정일형 전 외교부장관으로 3대 정치인이다. 자식들도 대부분 부친의 정치적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적 신념도 부전자전인 모양이다.
사진은 1960년 제5대 국회에 나란히 등원한 김영삼 의원(사진 오른쪽)과 이철승 의원(왼쪽)의 모습이다. 국회 본회의장 명패 앞에서 마주보며 얘기하는 모습은 50여년이 지난 지금 얼굴 그대로이다. 이철승 전 의원은 올해 93세이지만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고,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현실정치에 왕성하게 멘트를 했다.
두 사람은 3대 국회(1953년)에 나란히 금배지를 다는 등 정치적 시작은 비슷했지만 정치적 노선은 많이 달랐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같은 당이었지만 ‘적대적’ 관계였다. 이철승 의원도 5.16 쿠테타로 고통을 받았고, 박정희 독재에 항거한 투사형이다. 그러나 1976년 제1야당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자 ‘중도통합론’이란 애매한 이름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이 때 이철승 의원을 ‘밀약’ ‘사꾸라’라고 몰아 부치며 선명 야당을 주창한 사람이 바로 YS였다. 이철승 의원은 결국 이 사쿠라 논쟁에 헤어나지 못하고 7선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해야 했다. YS는 이 사꾸라 논쟁으로 당권을 쥐고, 40대 기수론으로 정치적 거목으로 성장했다. 이때 40대 기수론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맞선 사람이 바로 두 사람과 김대중 의원 세 사람이다. 그중 YS와 DJ는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두 사람의 2세가 지난 대선에서 다시 관심을 끌었다. 이철승 전 의원의 딸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생의 공신으로 활동한 것이다. 부친이 말년에 보인 정치적 행보와 일면 비슷한 길을 걸은 것이다.
YS는 끝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화해’하지 않았다.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선 직전 박근혜 후보를 ‘칠푼이’라고 혹평해 관심을 모았다. YS의 차남 김현철씨 역시 부친과 같은 정치적 노선을 걷고 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다 좌절된 그는 지난 대선에서 ‘반 박근혜’ 노선을 걷더니 최근에는 아예 ‘박근혜 저격수’를 자임하고 나선 분위기이다.
그는 최근 트위터 등을 통해 “부산 경남은 역사적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교두보 역할을 해왔음을 기억하자”라며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심판을 주장했다. 그는 또 “현 정권은 과거 유신정권을 방불케 하는 독재를 답습하고 있다”면서 아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지금 당장은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착각은 자유지요. ~ 당신이 권력자가 된 순간부턴 당신은 심판대에 올라선 거요”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보통 아버지들은 ‘자식들 생각까지 강요할 수 없다’고 하지만 정치적 신념은 유전되는 것 같다. 자식이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가졌다는 것은 아버지 입장에서 기분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권자들이 이들 2세 정치인들에 호감을 갖고 표를 줬지만, 당선 후 행보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시대로 ‘과거회귀' 이미지와 오히려 부친보다 ‘불통’으로 고착되는 분위기이고, 김한길 대표 역시 부친만큼 용기도 없고, 제1야당을 야당답지 못하게 운영한다는 평가가 많다.
임금착취로 국제적 망신을 산 홍문종 의원도 그렇고, 국회본회의장에서 이상한 문자를 보다 들킨 정호준 의원도 그렇다. 요즘 2세 정치인들을 보면 정치적 신념은 부전자전(父傳子傳) 되지만 정치적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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