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2)
재난 관리는 착각이다
‘안전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대형사고가 터져야 안전에 대한 장비와 제도가 갖춰지기 때문이다. 건축물에 지금과 같은 도시방재 개념이 도입된 것은 1871년 10월 8일 시카코 대화재로 300여명이 넘는 시민이 희생된 대가이다.
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갖춰진 각종 안전장비도 숱하게 많은 해상사고의 결과이다. 인류는 참담한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킨다. 바로 전화위복의 교훈이다.
사진은 1995년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유족들이 항의하는 모습이다. 유족들은 부실한 설계변경을 허가하고, 부실 건물의 영업을 눈감아주고, 일관성 없는 구조작업을 한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과 지금은 근 20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유족들의 분노와 요구는 똑같다. 삼풍참사 유족이 든 '위정자여 들리느냐 우리의 통곡'이라는 손팻말은 지금 세월호 침몰 유족의 심경 그대로일 것이다. 국무총리가 물벼락 세례를 받고, 해양수산부 장관이 멱살잡이 당하는 것을 보면 유족의 분노는 그 때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그럴 만도 하다. 그만큼 사고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국민의 피’를 봤으면 이제 최소한의 안전사회는 이뤄져야 하지 않았을까. 왜 대한민국은 전화위복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인가. 도대체 컨트롤타워라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왜 기능을 못하고, 법에도 없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가동되고 있는가.
중대본을 오래 지켜보고 대구지하철 참사를 비롯해 태풍 루사 등의 대형재난을 취재한 경험으로 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재난을 콘트롤, 즉 관리한다는 공무원의 발상이다. 기자는 <공무원들이 재난을 관리한다는 발상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 대한민국’은 백년하청>이라고 생각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정부에 재난관리과가 만들어졌다. 공무원들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관리’이다. 언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르는 재난을 책상에서, 서류로 관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명무실한 이 조직은 점차 성장을 거듭, 국장을 넘어 1급 본부장급으로 커졌다. 본부급에서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와, 폭발과 같은 사회적 재난을 별도로 관리했는데 재난관리 일원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2월 대구지하철 사고가 나자 재난 컨트롤타워로 소방방재청이 설치됐다. 차관급 청장으로 규모가 또 커진 것이다. 이때도 현장 대응 위주의 소방청 설립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역시 공무원들은 ‘관리’를 좋아했다.
소방방재청이 컨트롤타워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통해 행안부와 연결된 재난관리 구조는 여전히 문제가 많았다. 청와대에 NSC가 설치됐지만 대통령 자문기구인가, 행정기구인가를 놓고 서로 갈등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NSC를 폐지하고, 안전의 컨트롤타워를 강화한다고 소방방재청 업무를 떼어 행안부로 옮겼다. 그러자 소방방재청과 행안부가 업무영역을 놓고 다투다가 소방방재청장이 경질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재난관리 컨트롤타워는 장관급으로 더 커졌다. 소방방재청에서 하던 실무관리 기능을 아예 통째로 안행부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하는 업무란 대통령의 관심사항인 여성안전, 학교안전, 음식물안전 등 안전(Safety)가 아닌 치안(Public order)에 가까웠다. 경찰인력만 대폭 늘려놨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세월호 침몰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안전 대한민국’을 외치던 안행부와 중대본은 난맥과 무력함을 드러냈다. 결국 기존 중대본 기능을 정지시키고, ‘불법으로’ 국무총리가 지휘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만들었다. 재난 수습 중 컨트롤타워가 바뀐 것은 전투중 지휘관이 바뀐 것으로 이 역시 졸속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더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총리가 지휘하는 지금 대책본부보다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라면 대통령이 컨트롤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강력한 컨트롤타워, 즉 재난을 관리, 지휘한다는 것은 탁상행정이며 중앙집권적 발상이다. 바로 이런 발상이 우리가 재난후진국에서 맴돌고 있는 이유이다. 재난은 위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생활화, 체질화, 문화화 돼야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생사를 가른 것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점검과 훈련, 그리고 위기의 순간인 골든타임에 어떻게 대처했느냐이다. 그것은 기본적 안전점검, 구명정을 내리는 훈련, 최소한의 대피교육 등의 문제이다. 구조작업 등 수습도 마찬가지다. 높은 컨트롤타워가 아닌 철저히 현장 실무자에게 맡겨야 한다.
재난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컨트롤타워 문제가 아니라, 바닥(bottom)의 문화(culture)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바닥문화를 바꾸는 것이 위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의 컨트롤타워를 키워왔다. 과에서, 본부로, 청으로, 그리고 부로, 현재는(불법이지만) 총리까지 왔다. 대통령은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한다. 과거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단견이다. 컨트롤타워가 높아지면 안되고, 서포트(지원)타워가 높아야 한다. 재난을 관리하겠다는 발상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재난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년전 삼풍붕괴 사고의 유족이 든 '위정자여 들리느냐 우리의 통곡'이라는 손팻말, 진정 지금 위정자들은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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