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0)
정치인 정년을 정하자
직장인에게는 사규에 규정된 정년이 있지만, 법적으로 가동연한이라는 것이 있다. 손해배상을 위해 직업별로 정해 놓은 일종의 법적 정년이다. 이는 업무의 특성과 육체적 노동강도 등을 감안해 정한다.
여기에 따르면 술집이나 다방 여종업원은 35세로 가장 짧다. 프로 야구선수는 40세, 보통 직장인은 60세이다. 의사, 종교인, 화가, 예술가 등은 65세이다. 가동연한이 가장 높은 직업은 변호사로 70세이다. 법적으로 70세 이상이면 더 이상 ‘생산적 활동’을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가동연한은 얼마나 될까. 지금 이에 대한 판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10여년전 판례가 없던 당시 기자가 재미삼아 취재해 본 적이 있다. 손해사정인이나 재판연구관의 의견을 들어보면 정치도 일종의 예술이며, 또 직업적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65세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 때 득표활동을 해야 하고, 또 가끔 의사당에서 몸싸움이라는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략 62~63세가 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70세 이상 가동연한의 직업은 아직 없다. 그런데 요즘 가동연한이 지난 노정객들이 속속 정치 일선에 복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왕비서’ 혹은 ‘2인자’로 꼽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75세이고, 정홍원 국무총리는 71세이다. 차기 새누리당 대표가 유력시 되는 서청원 전 의원이 72세이다. 그렇게 되면 70대 이상 ‘노인’이 당·정·청(당, 정부, 청와대)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경륜이 풍부한 사람이 일선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이런 70대 노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전성기였던 30~40대 정치, 공직생활에 최고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30~40년전 정치와 공직에서 최고 가치는 바로 효율과 독재이다. 이들은 일사분란한 효율과 규율에 익숙하고, 이것에 강한 정당성까지 부여한다.
사진은 이승만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민주당 이철승 의원의 모습이다. 중절모자를 쓴 젊잖은 신사가 길거리에서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니 이 의원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사실 정치인은 정치적 발언이 그치는 순간이 바로 가동연한 즉 정년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활동하는 최고령 정치인은 7선을 역임한 93세의 이철승 전 의원이 아닐까 한다. 그는 요즘에서 “소원은 평양에서 막걸리 한잔 하는 것”이라며 남북문제에 나름 정치적 관심을 나타낸다.
사진 속 이철승 의원이 화가난 이유는 이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1958년 장기집권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만들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이 앞장섰지만 언론과 야당은 극력 반대했다. 반공을 트레이드마크로 여기는 이 의원까지 이렇게 반대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많긴 많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인권의 중대한 침해’ ‘일당 독재를 가져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국가보안법 개정을 반대했다. 동아일보는 ‘헌법의 원칙을 일탈한 위헌, 부당한 입법’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된다면 그 결과는 가공할 것’ ‘자유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위험’ 등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자유당은 경향신문을 폐간하고,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 법은 우려한 대로 진보당 조봉암 당수를 제거하는 등 정적 제거에 사용됐다. 결국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강화한지 2년만에 종말을 고하고, 이 법안을 주도적으로 개정한 이기붕 국회의장은 일가족이 자살하는 비참한 말로를 걸었다.
이후에도 이 국가보안법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며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 도구로 활용되면서 많은 희생자를 양산했다. 그런데도 현 정부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시각은 사진 속 50여년전 야당이나, 언론의 주장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갈등 지향적이다. 철저한 반공투사 이철승 의원도 그리 반대한 국가보안법인데 말이다. 심지어 같은 나라의 한쪽에서는 이 국가보안법을 악용해 간첩을 조작한 사람에 대해 수억원씩 배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이 법으로 간첩을 조작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모순의 정치, 사회가 된 이유는 70대 노인이 당과 정부, 청와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정치인의 가동연한(정년)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63세 되면 공무담임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하면 어떨까. 물론 헌재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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