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8)
맹한 최규하-독일통일의 진짜 교훈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국민 앞에 선서한다.(헌법 제69조) 평화통일이 대통령의 주요 직무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 발언이후 엄청난 통일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준 전시상태’라는 말이 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공연하게 나왔다. 국방부장관이라는 사람이 ‘올 1~3월 북한 침략’이라고 무책임하게 떠들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다.
그런데 갑자기 ‘통일대박’이라는 말이 나왔다. 남북관계가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대북정책은 180도 바뀌었다. 엄청난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은 먼 얘기라던 보수언론과 통일부도 안면을 싹 바꿨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이용은 ‘영해포기’라며 길길이 날뛰던 사람들이 바다보다 더 중요한 ‘영토포기’인 육지의 DMZ평화공원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게다가 서해 NLL 평화이용은 남북만 합의하면 이뤄지는 간단한 문제인 반면, 영토문제인 DMZ평화공원은 휴전협정, 유엔군사령부 문제, 유엔결의 등 국제법상 숱한 난제가 놓여 있는 복잡한 사안인데도 말이다. 이는 마치 아기에게 걸음마를 건너뛰고 마라톤에 출전시키자고 주장하는 격이다.
게다가 헌법에는 분명히 '평화통일'이라고 돼 있는데, 국정원장이라는 사람이 '죽자'라고 말하는 것을 봐서 정부의 태도는 '흡수통일' 혹은 '무력통일'에 가깝다. 통일의 대상인 북한은 요즘 미사일을 쏘고 난리다. 당연히 국민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박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해 분단국에서 통일을 이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좋다. 통일대박, 좋은 일이다. 통일로 유럽의 경제, 정치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독일에서 교훈을 얻어서 나쁠 것이 뭐가 있겠나. 통일독일 교훈 이야기가 나왔는데, 외부 교훈보다 과거 동서독의 시대흐름을 간과한 한국 정치 위정자들의 무능을 먼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사진은 1970년 최규하 외무부장관이 국회 외무통일위에 출석한 모습이다. 야당 중진(대표)인 류진산 의원이 무엇인가 진지하게 질의하는데, 최 외무장관은 약간 삐딱한 자세로 듣고 있다. 그 옆에 앉은 박준규 의원(후에 국회의장 역임)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
서독의 빌리브란트 수상은 1960년대 중반부터 동서독 동시 유엔가입을 추진했다. 분단국가가 재통일을 위해 평화를 제도화하는 방안으로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엔동시 가입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우리 야당 신민당의 한 의원이 동서독의 사례를 들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 때 최 외무부장관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사실 유신 직전인 당시 박정희 정권은 통일문제를 정권이 독점하고, 남북관계를 정권 안보와 결부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인정할 순 없었을 것이다.
결국 동서독은 1973년 9월 유엔 동시가입을 성사시켜 재통일을 위한 국제적,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남북 베트남은 1975년 동시 유엔가입을 추진하다 실패, 결국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는 비극적 과정을 거쳤다.
결론적으로 당시 ‘맹한’(흐리멍텅한) 최 외무부장관은 국제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특히 동서독과 베트남 등 분단국가의 국제적 움직임에 전혀 감을 잡지 못한 것이다. '맹한' 최 외무부장관의 이러한 단견은 나중에 국가적 비극을 초래했다. 최 외무장관은 ‘얼떨결에’ 대통령이 되어 '맹한' 태도로 일관, 신군부의 등장과 5·18 광주비극을 막지 못했다.
통일 논의를 독점하고, 정권안보와 결부시킨 박정희 정권의 행보는 1972년 이른바 7·4 공동성명 이후에도 계속됐다. 7·4 공동성명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원칙을 남북 당국자가 최초로 합의한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밀사를 통해 정권안보적 차원에서 추진된 부정적 측면도 컸다. 정권이 통일논의를 독점하고, 민간 심지어 학계의 통일논의까지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으로 몰았다.
실제 동서독에서 유엔동시가입을 이뤄낸 1973년, 우리나라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주장한 교수를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의 효용성을 인정, 이를 추진해 1991년 9월에야 겨우 이뤄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무슨 교훈을 얻을지 알 수는 없다. 독일 브란텐부르크 문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와선 안된다. 동서독이 1973년 유엔동시가입을 이루고, 17년 만에 재통일을 이룬 것에서 진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 교훈의 기저에는 국제 기류를 모르던 ‘맹한’ 외무부장관과 같은 주변 참모를 정리하고, 통일문제를 정권이 독점, 야당과 민간의 통일논의를 '종북'으로 모는 우를 다시 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문제를 국내 정권안보로 이용했던 부친의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34년 전 이 한 장의 사진은 그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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