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7)
불통 리더십의 원인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어투’가 화젯거리다. 지난 2월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는 이른바 ‘진돗개 발언’에서 3월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로 생각하고 규제를 확확 들어내야”라는 ‘원쑤 발언’이 그것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 역시 민족적 염원인 통일을 무슨 로또에 비유한 것으로 사려 깊은 어휘선택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이런 화법은 규제개혁 등 나름의 조치에 공무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 군기잡기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일방적 지시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상명하복이 분명한 군대에서 명령에 대해 무조건 복종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군기를 정의하면 ‘명령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다. 여기서 ‘자발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공무원의 자발적 규제개혁의 움직임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리더십은 민주적 리더십이 아니다.
효율을 따지자면 총 한 자루면 된다. 총 한 자루면 시간도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군사독재라고 부른다. 또 ‘법대로’와 ‘다수결 원칙’을 앞세우는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공무원에게 ‘징계 규정집’을 들이대며 강요하는 리더 역시 구시대적이다.
그래서 자발적 동기를 이끌어내는 설득과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를 설득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사진은 바로 설득의 명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7대 국회인 1969년 국회본회의장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설득하는 모습이다. 왼쪽의 공화당 오치성 의원과, 오른쪽 신민당 정해영 의원 사이에서 큰 체스처까지 해가며 말하는 DJ의 모습이 매우 열정적이다. 진지한 표정과 나비넥타이가 영 어울리지는 않지만....
사실 이 때는 박정희 정권이 부정선거로 3선 개헌을 강행한 직후로 여야는 거의 ‘적대적’ 관계였다. 아마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으로 야당의 장외투쟁과 시민단체의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요즘 상황보다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DJ는 여야 원내총무를 불러놓고 서로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각종 여론조사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적을 보면 공통적으로 ‘불통의 이지미’가 지적된다. 달변이나, 논리적이지 않은 박 대통령에게 DJ 만큼 소통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꼭 달변이 설득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말이 어눌하더라도 공감을 얻는 경우도 많다.
박 대통령이 불통의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남에게 엄격, 자신에게 애매’한 화법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박 대통령은 남에게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화법을 구사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매우 애매한 화법을 구사하는 특징이 있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 혹은 ‘3인칭 관찰자 시점 화법’으로 자신의 책임을 남 얘기하듯 하는 스타일이다. 대표적 예가 기초연금 공약이 무산됐을 때 ‘국민적 합의가 있으면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통령의 일인데, 그것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한 화법이다.
박 대통령이 소통에 취약한 또 다른 이유는 대선전 TV 토론에서 드러났지만 ‘피의자’를 ‘피해자’로 판단하고 강변하는 ‘사태파악 부족’ 때문이다. 그러니 논리가 서지 않고, 상대가 이해하기 어렵다. 프롬프트나 사전 질문지가 없으면 답변이 어려운 것, 그래서 자연스런 기자회견이 어렵다. 기자와 자연스런 회견이 어려우니 국민과 소통이 될리 없다.
소통의 기본은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사실관계를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하는 것이 옳다는 만기친람적 아집, 자신은 무결점의 최고 애국자라는 자기 폐쇄적 착각,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력 부족 등이 문제이다. 바로 이것이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 원인 아닌가 생각된다.
진돗개, 원수, 암덩어리 등 단편적이고 직설적인 어법보다 부드러우면서 분명하며, 믿음을 주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통의 시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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