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법안을 제출한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의 부친 이중재 전 의원은 해방 직후 대학생일 때 남로당 조선정판사 위폐 사건은 조작이라며 재판정에서 몸을 날린 ‘기개의 청년’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역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6·25 직전까지 군인 신분으로 남로당 활동을 했다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닙니다.
사실 부모의 이념이 자식에게 연결되지도, 또 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하물며 같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낙선했어도 여전히 실세로 통하며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집념을 보이는 이재오 전 의원. 이 전 의원은 재야에서 맴돌다 1992년 사면·복권돼 민중당 사무총장으로 제도권 정치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때 기자는 은평구 대조동 집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적됐던 대학에 복학해 딸과 똑같이 대학생이 됐다며 웃었지만 딸과 같이 사진을 찍자니 조금은 멋쩍어 했습니다.
요즘 핏발을 세우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그렇습니다. 그가 “선거 후 당에서 지원한 후보등록비를 선관위에서 돌려받으니 돈이 남았다”며 “국회의원에 출마해 오히려 돈을 번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라면서 촌스럽게 웃던 얼굴이 새롭습니다.
지금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맹활약’하는 차명진 대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차 대변인도 과거 여의도 의원회관 언저리에서 ‘진국’ 하면 ‘차명진’을 떠올릴 정도로 인간성이 좋았던 ‘젊은 피’였습니다.
1997년 대통령선거 때 신한국당 한쪽 귀퉁이에서 자신의 변신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하던 정태윤 위원장의 우수에 어린 눈도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한때 재야에서, 또 민중당을 통해 진보 세상을 꿈꿨던 이들은 노태우 총재의 민주자유당(신한국당)에 입당했습니다. 이들이 민자당에 입당할 때 “전향서도 없이 입당시키느냐”라는 반발도 있었습니다. 어찌됐든 이 젊고 신선한 피는 당시 집권 여당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권의 실세로, 실세 당직자로 있습니다.
이번 호 뉴스메이커에서는 모처럼 집권 여당 한나라당의 젊은 세력 얘기를 해봤습니다. 요즘처럼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복고적 분위기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 피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입니다. 그나마 개혁세력임을 자처하던 그들은 이 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변하는 얘기를 했는데 본지 뉴스메이커도 변합니다. 뉴스메이커는 다음 호부터 제호를 ‘weekly경향’으로 바꿉니다. 비록 제호는 바뀌지만 뉴스메이커가 가진 인물 정보에 강한 시사주간지,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는 녹색잡지라는 기본 명제는 변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앞서 정치인 이재오·김문수·차명진같이 변하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09/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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