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띄엄띄엄) 야전침대 커다란 각목으로 온몸을 두들겨 맞았는데 난 도저히 살아날 것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뼈마디는 부어있고 온몸에 피가 맺히고… 걷지도 못했다. 나는 자살하고 싶었다.”
최근 박원순 변호사가 펴낸 ‘야만시대의 기록’ 2집 377쪽에 나오는 한 여성의 고문 증언입니다. 이 여성은 바로 한명숙 지금 국무총리입니다. 한 총리는 1979년 3월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이러한 고문을 통해 간첩이 됐습니다.
그 즈음 중앙정보부에서 학원을 담당을 했던 사람이 바로 이번에 국정원장에 내정된 김만복 국정원 1차장입니다. 김 내정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중정에 들어가 32년 만에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 됐습니다. 첫 내부 출신 수장이라고 합니다.
사실 김 내정자가 중정에 들어간 1974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해입니다. 1972년 헌법을 위반하면서 유신시대를 연 박정희 대통령은 줄기찬 민주화 요구를 받습니다. 결국 박 대통령은 1974년 1월 긴급조치를 발동합니다. 그해 1호부터 9호까지 마구잡이로 발표된 긴급조치는 한 마디로 ‘입다물고 죽어 지내라’ 입니다. 초헌법적 폭압이 자행된 이 긴급조치 시대를 지탱한 것이 바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중앙정보부였습니다.
이때 중정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고문받고 처벌된 사람 중 알려진 사람이 많습니다. 앞서 한명숙 국무총리도 그렇고 이해찬 전 총리, 유인태 의원,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문수 현 경기지사 등이 그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중앙정보부 직원 김만복은 분명 힘 있는 가해자였고 한명숙·이철·유인태 이런 사람은 힘 없는 학생이고 피해자였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시대, 한 임명권자에 의해 나란히 고위직에 올라 있습니다. 임명권자가 무슨 생각으로 인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참 얄궂은 운명입니다. 당시 김 내정자도 본인이 좋아 학생잡는 일에 나섰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씁쓸합니다. 국가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된 사람은 최소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실어린 고백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요즘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도 저도 싫고 짜증만 난다면 이번 주 ‘뉴스메이커’를 보십시오. 떠날 곳을 소개해 드립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11/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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