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국 대학의 인문학과 교수가 모여 ‘인문학의 위기’를 토로하는 시국선언 비슷한 것을 발표했습니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10년 전부터 나오던 말로 지금쯤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 ‘사망’ 수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인문학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논술이 아닐까 합니다. 인문학이란 사람과 사람의 문화·철학·논리 등을 탐구해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 아닙니까. 또 각자의 가치관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글로 써놓은 것이 논술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인문학은 논술이 바탕 혹은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논술은 광풍 수준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까지 여겨지고 있습니다. 입시를 앞둔 고교생은 물론, 초등학생부터 논술공부가 일반화된 지 오래입니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니 2004년 63개이던 논술전문학원이 올해 465개로 늘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신장세입니다. 더구나 최근 서울의 유명대학이 앞으로 논술비중을 더 높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논술시장은 절정에 오른 분위기입니다.
강남 대치동의 유명 논술강사 중에는 억대연봉자도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아예 유명 논술학원은 프랜차이즈를 넘어 그룹화하고 있습니다. 스타강사는 억대 연봉자로, 경영자로 변신합니다. 그 억대 연봉자, CEO 대열에 끼기 위해 젊은 인재가 몰려갑니다. 교수를 하다 그만두고 대치동으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고 기자를 하다가 논술교사로 변신한 사람도 여럿입니다. 지금 논술시장은 마치 인재의 블랙홀마냥 인재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요. 논술의 메카 대치동에서 내로라하는 스타 논술교사를 만났습니다. 취재를 해보니 논술교사의 세계도 그렇게 녹록지 않습니다. 논술시장에 뛰어든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약육강식이나 치열한 경쟁,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겠지만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 사망선고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질기게 왜곡된 대학입시 탓이긴 합니다. 하지만 논술이 사망 일보 직전의 인문학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미 2003년부터 고등고시에 공직적격성평가라는 통합논술형의 시험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7·9급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대학에서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서라도 논술적 인문학 공부가 이뤄지면 인문학을 조금이나마 회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가 현실화됐으면 좋겠습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10/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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