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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권력자의 역사왜곡…JP와 MB

요즘 나라 안팎으로 역사왜곡 문제가 시끄럽다. 일본의 침략전쟁 만행과 종군 위안부에 대한 망언은 우리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의 분노를 사고 있다. 우리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치열한 정치이슈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 일부 종편TV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왜곡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역사 왜곡은 인간의 추악한 배설구인 ‘일베’의 장난이나 낮은 시청률에서 탈피하려는 종편TV의 이해관계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역사왜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 즉 권력자들이다. 권력자들은 역사를 두려워 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1969년경 김종필(JP)씨가 강연하는 모습이다. JP는 낭인으로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에 반대, JP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괘심죄에 걸린 JP는 의원직은 물론, 모든 공직을 사퇴하고 사진처럼 강의하며 소일했다.


이 강연에서 JP는 1945년 해방이후 1960년까지를 ‘권위주의’로 구분하고 ‘해봤자’라고 써 놓았다. 1961년부터 1971년까지 10년간을 둘로 나뉘어 5·16 전반기를 1.개방, 2.협조, 3.진출이라고 강조했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후반기는 빈란으로 뒀다. 큼지막한 한자어로 ‘혁신’이라고 써 변화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칠판에 쓴 내용으로 강의를 유추하면 해방이후 60년대까지를 독재, 즉 권위주의 시대로 구분하고 5·16이후 전반기 5년은 개방, 협조, 진출을 바탕으로 혁신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정치 위정자들 대부분 그렇지만 JP도 역사에 매우 민감했다. JP는 1997년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DJ(김대중 대통령)와 연대, 정권을 잡고 국무총리가 됐다. 대통령이 된 DJ는 과거역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상을 추진했다. 특별법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논란은 진상규명과 보상대상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인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시대구분 문제였다. 많은 사람은 상식적으로 1961년 5·16쿠데타 이후부터 1992년 12월 문민정부 탄생전까지로 생각했다. 그러나 JP의 완고한 반대로 이 법은 ‘민주화운동이란 1969년 8월7일 이후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활동’으로 규정됐다. 도대체 1969년 8월7일이 무슨 날일까. 현대사 연표 어디를 봐도 나오지 않는다. 


바로 이 날은 박 대통령이 3선 개헌안을 발의한 날이다. 만약 민주화운동 시점을 5·16쿠데타 이후로 했다면 JP는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으면서 벌어진 많은 의문사, 사법살인의 조사 대상이 돼야 했다. 그래서 JP는 자신이 모든 공직에서 사퇴, 정치적 책임이 없는 사진속 시점인 1969년부터를 권위주의 시대로 잡은 것이다. 



결국 61년 민족일보 사건이나, 64년 인혁당 사건, 서울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의 단초가 된 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도 진상규명 대상에서 빠졌다. 64년 6·3사태나 68년 6·8 부정선거 투쟁 등은 민주화운동 보상에서 제외됐다. 지극히 개인적 의도로 국무총리라는 권력을 이용해 법을, 아니 현대사를 왜곡한 것이다.


권력자의 역사왜곡은 계속됐다. 이 법은 나중에 민주화운동 시점을 다시 ‘1964년 3월24일 이후’로 앞당겼다. 1964년 3월24일은 또 무슨 날일까.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역사학자, 정치학자 중 이 날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64년은 한일협정 반대운동, 즉 6·3사태가 났던 해이다. 앞서 JP가 일본 오히라와 밀약을 통해 추진한 일이다. 한일협정반대운동은 63년 11월부터 시작, 64년 3월6일 ‘대일굴욕외교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3월24일은 바로 서울에 있는 대학이 이 범국민투쟁에 가담, 시위에 참여한 날이다. 



그런데 당시 대학시위에 가담한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MB)이다. 특정 권력자를 위해 시대구분이 바뀌는 또한번의 역사왜곡이 벌어진 것이다. 이왕 6·3사태를 민주화운동에 포함시키려 했으면 3월6일 범국민투쟁위 설치날로 하지 꼭 대학생 시위참여날로 해야 했을까. 참 치졸한 시대구분이고, 사연많은 민주화보상법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권력자만 탓할 수 없다. 우리 권력자도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지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