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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더위보다 더위먹은 정치인이 더 짜증난다

초여름 더위가 보통이 아니다. 설상가상 원자력발전소 불법 자재 사용으로 원전 10곳의 발전이 정지되면서 전력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한여름도 아닌데 연일 전력 비상경보가 내리고 있다. 문을 열고 영업하는 업소를 단속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전국적으로 다양한 절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공장은 정부가 돈을 주며 가동을 중지시키고, 더위에 지친 공무원은 외출을 핑계로 자리를 비운다. 수능준비를 하는 학생들은 더위에 지치고, 경로당 에어컨도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일부 병원은 3층 이하는 승강기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다리아픈 환자에게는 고통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전관리를 잘못한 한수원과 전력거래소 탓이라 하지만 결국 산업통상자원부 더 나아가 정부, 결국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1958년~9년경 민주당 행사에 참석한 박순천, 곽상훈, 장면 세 최고위원의 모습이다. 당시 에어컨이 거의 없던 시절이니 한여름 정치 행사는 그야말로 땀범벅, 고역이었을 것이다. 부채 하나씩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장터 모습이고 모시 한복을 입은 박 최고위원이 오히려 시원해 보인다.


민주당은 1956년 5월 신익희 대통령 후보가 유세도중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다. 사진 속의 시점은 대선 패배 이후 당을 수습하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아마 대선패배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지금의 민주당 상황과 일면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4·19 학생혁명으로 집권 자유당이 몰락하자 민주당은 집권당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왼쪽 박순천 최고위원은 이후 민정당(民政黨) 대표최고 위원을 지내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다. 가운데 곽상훈 최고위원은 대선이후 당 임시 대표최고위원을 지냈다. 지난해 대선 패배후 당 수습을 맡았던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비슷한 역할이다. 덕분에 4·19 혁명후 집권하자 민의원 의장(국회의장)이 됐다.


맨 오른쪽 장면 의원은 56년 대선에서 신익희 대통령 후보의 부통령 런닝메이트일 정도로 당내 기반이 막강했다. 그는 민주당 신파의 리더로 민주당이 집권하자 최고 실세인 내각제 총리가 됐다. 세 사람 모두 무더위를 참고 야당을 지켜낸 보람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사진속 세 야당 거물의 정치적 말로는 ‘별로’였다. 군인에게 정권을 찬탈당한 장면 총리는 ‘정치적 무능의 상징’이 됐다. 게다가 쿠데타 군인을 피해 숨어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원히 정치적으로 재기하지 못했다. 민의원(국회)의장까지 지낸 곽상훈 의장은 박정희 정권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유신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여걸 소리를 듣던 박순천 최고위원은 전두환 정권에서 국정자문위원을 지내는 ‘우’를 범했다.


한참 후배인 지금 민주당이 처한 모습도 당시와 유사하다. 대선 패배후 구심점이 없고, 무기력한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이럴때 새로운 활력소가 돼야 할 젊은 정치인은 오히려 선배의 구악을 배우고 있다. 한 젊은 정치인이 “386은 과거 운동정신을 망각한 채 뿔뿔이 흩어져서…줄서기, 줄잡기에 급급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정부·여당의 연이은 실정에도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싸늘하다. 오히려 존재하지도 않은 당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사진속 정치선배의 말로를 닮아가는 사람도 눈에 띈다. 말로는 정계개편이라지만 속내는 자신의 연임을 위한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에서는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여의도에서 부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국민들을 더 덥게 만든다. 더위가 짜증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먹은 정치·정치인 때문에 더 짜증난다. 이 더위를 잊게할 청량제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