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 때 유능한 신하의 언행을 기록한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이라는 책이 있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朱熹)가 엮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 책이다. 요즘 우리가 많이 쓰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도 여기서 나온다.중국은 송대에 이르러 과거제가 완전히 정착돼 고급관료 대부분이 과거 합격자로 채워졌다. 이들은 황제가 직접 최종시험을 주관하는 과거를 통과하면 지방관료를 거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중앙관료로 진출했다. 이 책은 바로 책임감과 사명감에 불타는 뛰어난 관료 97명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그중 범중엄(范仲淹)이라는 사람의 얘기가 있다. 그는 평생 선우후락(先憂後樂)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 의미는 '신하는 천하에 근심거리가 있을 때 먼저 근심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뒤에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고라쿠엥(後樂園) 야구장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인사와 관련된 내용도 많은데 그중 장영(張詠)이라는 사람은 "사람을 천거할 때는 반드시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을 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관료도 치열한 경쟁사회였다는 점에서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전 중앙인사위원회가 한 대학에 의뢰해 전직 장관의 경험담을 모아 '장관의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위한 지침서'라는 정책연구보고서를 냈다. 군주시대도 아니고 유능한 장관(신하)이었는지 평가도 불투명하지만 어쨌든 현정부 장관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DJ 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이라고 할 만하다. 이 지침서 내용 중에는 실제 장관직 수행에 필요한 내용도 있지만 기술적 처세술에 대한 언급도 많아 뒷말이 무성하다. 내용 중에는 "장관의 거짓말은 퇴임사유가 될 수 있다"며 "정치사정에 의해 거짓말이 필요할 경우에는 '장관이 말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식의 노코멘트 전략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또 "저녁식사 시간에 기자와 1 대 1로 만나 깊이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관도 있고, 이러한 자리에서 간간이 기자에게 특종을 주면서 협조를 구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는 대목도 들어있다. 여성장관 편에는 "여성의 장점인 부드러운 호소력을 최대한 이용하라"고 돼있어 역(逆)여성차별 냄새까지 풍기고 있다. 심지어 "장관의 정책이나 이념이 야당의원들과 다르더라도 개인적 친분이나, 서로 만남을 통해 친숙한 관계를 형성했을 경우 국회에서 협상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친절하게도 공(公)보다 사(私)를 강조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장관직을 수행하는데 어느정도 전시효과나 청와대.국회와의 원만한 관계, 그리고 대(對)언론 테크닉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공무원의 인사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장관직 수행에 필요한 철학이나 교훈보다 장관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처세술에 관한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200쪽에 이르는 본래 보고서에는 더욱 노골적인 경험담과 세세한 처세술이 기록돼 있어 일부 장관과 장관 지망생들이 이를 구해 보려고 안달이라는 씁쓸한 소문도 들린다. 앞서 '송명신언행록'에는 비록 재상자리에 오르지 못했지만 명장관으로 칭송받은 구양수(歐陽脩)의 얘기가 나온다. 구양수는 관료를 병을 고치는 의원에 비유해 "돈 많은 의원보다 병 잘 고치는 의원이 명의(名醫)"라며 "관리능력이나 정치 방법이 어떻든 백성이 불만을 품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 정치"라고 일갈했다. 진정한 국민의 공복이 되려는 사람들이 꼭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더구나 DJ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들이 요즘 '정치 철새' 대열에 많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원희복 /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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