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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유태하-부친 처벌, 딸이 복권?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73)

유태하-부친 처벌, 딸이 복권?

 

요즘 역사왜곡 문제가 180도를 넘어 360도까지 돈 느낌이다. 180도는 정반대에 있지만 360도를 돌았다는 것은 거꾸로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을 도외시한채 스스로 발목을 죄고, 모순에 빠지는 형국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사편찬위원회(유영익 위원장)가 한국 현대사 관련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태하 보고서>이다. 국편은 앞으로 10년간 30권의 <사료 한국현대사> 사업을 추진하는데, 올해 연구과제의 절반(5000만원)을 투입해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맹종했던 유태하 주일공사(후에 대사)를 조명한다고 한다.


유 위원장이 직접 낙점한 이 과제는 연세대 이승만 연구원이 수행한다. 이는 이승만 바로 세우기를 추진하는 국편 유 위원장의 첫 번째 시도로 보인다. 유 위원장은 뉴라이트 보수 역사관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유 위원장이 유태하를 재평가하려 하는 것은 일종의 자살골아닌가 생각된다.



 

사진은 1961년 유태하 대사가 본국의 소환지시를 거부하고 일본에서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유태하의 모습이 매우 거만하고, 또 잘 먹어 기름기가 줄줄 흘러 보인다. 공사를 지내고, 대사까지 지낸 유태하가 본국 지시를 거부하며 망명 아닌 망명을 하고 있는 전후 사정은 이렇다.


1955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앞선 북한은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추진했다. 일본정부도 도박, 범죄조직에 많이 연루해 있어 골치 덩어리인 한국교포를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사업에 적극 동조했다. 당시 북한과 조총련은 취업과 주택을 보장한다며, 재일교포를 북으로 실어 날랐다


이에 민단은 인권유린을 내세우며 북송반대 운동을 벌였지만 한국 주일대표부는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당시 한국 주일공사가 바로 유태하였다. 당시 많은 재일교포들이 고향에 돌아오려 했지만 주일대표부는 비자조차 발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일대표부는 거액의 비자발급료를 받았다


그래서 많은 재일교포들이 밀항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우리 주일대표부는 밀항선을 타면 처벌한다고 으름짱을 놨다. 북한은 집과 직장을 준다며 좋은배(만경봉호)에 태워 북으로 가는데, 한국은 고향 길에 비자장사를 한 것이다.


그래서 재일교포 사회에서 유태하 공사 추방운동이 벌어졌다. 훗날 <민족일보> 사장을 역임한 조용수가 바로 이 유태하 추방운동을 주도했다. 원래 유태하는 일제 강점기 우편국 서기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나 이승만의 총애를 받아 승진을 거듭, 일등 외교관까지 됐다. (최규하 대통령이 그 밑에서 참사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유태하 공사 추방운동에도 이승만은 오히려 그를 신임, 공사에서 대사로 승진시켰다. 유태하가 비자 장사를 해서 번 돈은 이승만 비자금으로 사용된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래서 유태하는 이승만의 양아들 소리까지 들었다.


19604.19 학생혁명으로 이승만이 몰락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유태하 파면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유태하는 정부의 귀국 지시를 거부하고 일본에 머물렀다. 사진은 당시 모습이다. 외교관이 본국 지시를 거부하고 망명 아닌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때 모습인 것이다.


5.16이 나고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소장이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구악을 일소한다며 혁명재판소를 만들었다. 당연히 유태하도 처벌 대상이 됐고, 결국 유태하는 끌려와 법정에 섰다. 박정희 소장의 쿠테타 업적을 기록한 <5.16군사혁명사>에는 유태하의 죄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가난한 교포의 주머니를 털어서 무려 2백억환을 축재했다는 항설이 있는 유태하 등을 외교관으로 앉혀놓아 자기 조국에 다니러 오는 교포들로부터 여권 1매에 일화로 무려 5만환까지 호가한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불법 치부혐의로 처벌한 유태하를 딸이 대통령 되자 역사적 재평가 하는 것은 아이러니 아니인가. 아무리 유태하가 이승만 정권을 뒷받침한 인물이라고 해도 국편이 이런 사실을 알고도 유태하를 재평가하려 했을까.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국편 위원장의 우회전이 돌아도 너무 돈 것 아닌가. (유태하는 1965년 한일수교 협상때 '일본 외교통'이 없다는 이유로 김종필에 의해 재기용, 막후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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