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74)
김동길 ‘막장의 길’
2014년 11월 28일 멱살잡이 난장판 끝에 한 조직이 ‘재건’됐다. 바로 서북청년단이다. 서북청년단은 해방직후 친일 극우 정치세력이 남한에 삶의 터전이 없는 실향민들을 모아 만든 무소불위의 테러조직이다. 제주 4.3사건이 이들이 저지른 만행이다.
그런데 그런 극우테러 세력을 사라진지 60년이 지난 지금 재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종북좌익의 반역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서북청년단이 분연히 일어섰다”며 “오늘의 상황에 맞는 행동양식과 전략으로 국민과 함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적화통일을 분쇄하는 구국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북청년단의 고문으로 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김동길 연대 명예교수 등의 임원을 선출했다. 서북청년단 고문 김동길…. 참 시간의 아이러니이다.
사진은 1975년 2월 15일 형집행정지로 서대문교도소에서 풀려나는 김동길 연대 교수 모습이다.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모습이 영락없이 독립투사의 모습이다. 옆에는 누나인 김옥길 교수(후에 문교부장관 역임)와 수염을 기른 함석헌 선생의 모습이 보인다. 뒤에는 재야 계훈제 선생, 맨 오른쪽에는 한승헌 변호사(후에 감사원장 역임)이다.
그는 연대교수로 재직 하면서 당시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에 유신과 긴급조치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장준하·안병무·문동환·백기완 등과 함께 유신헌법 철폐 시국선언과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결국 그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다.
민청학련 사건이란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학생, 교수, 종교인, 재야인사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을 획책했다’며 깡그리 잡아들인 사건이다. 그의 기소장에는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전국적 민중봉기를 획책했다”면서 “인민혁명당계의 지하공산세력, 불순학생운동으로 처벌받은 용공세력, 국내의 반정부인사 및 그리스도교인 중 일부 반정부 세력과 결탁했다”고 돼 있다.
요즘 논란이 된 내란음모 사건과 아주 유사하다. 물론 이 사건은 40년 후 정보기관의 조작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학생, 교수, 재야인사 등 180명이 구속됐다. 김동길 교수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자마자 그날로 항소를 포기했다. 그 때 그는 “법이 법 같아야지…” 라고 말하는 기개를 보였다.
하지만 세계적 인권유린으로 비난을 받은 박정희 정권은 이들을 대부분 형집행정지로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김동길 교수는 감방에서 풀려났지만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해직교수로 왕성한 필력으로 무려 14권의 책을 냈다.
진보적 올곧은 소리를 하던 김동길 교수가 1991년 정치 물(새한당 창당, 이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 합류)을 먹더니 변했다. 정치를 은퇴한 이후에는 보수를 넘어 극우적으로 또 변했다. 그리고 결국 서북청년단이라는 극우의 막장에 몸을 담았다.
사진 속 함석헌 선생은 죽을 때까지 올곧은 재야지도자로 생을 마쳤다. 계훈제 선생 역시 일제 강점기 경성제대(서울대) 재학중 ‘민족해방협동당’에 가입하는 독립운동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 재야운동 등 한평생 자유와 평등의 실천가로 살았다
누나 김옥길 교수도 1980년 ‘서울의 봄’ 때 문교부장관으로 학도호국단을 폐지하는 등 개혁적 행보를 걸었다. 변호인 한승헌 변호사는 나중에 좋은 시절을 만나 감사원장 등의 감투를 쓰긴 했지만 평생 인권변호사로 한 길을 걸었다.
사진 속 인물 중 오직 그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그는 해직 교수시절 <끝이 없는 이 길을>이란 수필집을 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끝이 없는 길’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닐까. 그는 나중에 사진속의 가족 동지들을 만나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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