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도 먹고 살 수 있는 ‘완벽한’ 직업을 꼽으라면 변호사와 의사라고 한다. 변호사는 낙원에서도 ‘소송’을 만들고 의사는 천국에서도 ‘병’을 만들어 계속 일거리를 확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중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갑’(甲) 중에서도 갑이다. 그 ‘갑’들은 복잡한 카르텔을 만들어 자신의 특권을 전문가의 권위로 포장한다. 이들은 또 ‘공동의 적’에 대해 극렬한 반응을 보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는다.
‘메타분석’ 통해 임상실험 다시 검증
그런데 요즘 의학계에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국립암센터 명승권 박사(46)이다. 키도 자그맣고, 고집으로 똘똘 뭉친 만화의 ‘짱구’ 같은 외모이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것을 보면 무슨 연예인같지만 의사 가운을 입은 것으로 보아 분명 의사이다. 그는 기존 의학상식을 마구 까부순다. 한의사는 물론, 양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잘 아는 학교 선배, 동료 의사들의 무지와 몰염치를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심지어 그는 ‘겁도 없이’ 식품의약품안전처까지 비판한다.
그의 혹독한 비판에 의학계는 물론 비타민 제약업계, 건강보조식품업계, 한의학계까지 치명타를 맞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비타민 업계는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타민 제약업계와 건강보조식품 업계에서 보면 그는 ‘테러’라도 하고 싶을 만큼 얄미운 존재이다.
변변한 외국 물(유학)도 먹지 못한 그가 제약업계·건강보조업계에 충격을 줄 수 있던 신무기는 바로 ‘메타분석’이다. 메타분석이란 개별연구를 종합분석하는 연구방법론이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의학연구는 가장 먼저 비커나 시험관을 이용한 실험실 연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면 동물실험에 적용한다. 실험용 쥐를 통해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면 사람에게 적용하는 임상실험 단계에 들어간다. 그런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단계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먼저 환자군과 대조군을 무작위로 추출해 연구물질과 가짜약을 투여하는 실험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무 약효가 없는 밀가루 덩어리를 약이라고 주어도 심리적으로 약효를 느끼는 경우가 20%나 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코호트 조사, 이른바 추적조사를 해야 한다. 특정 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의 질병발생률을 추적하는 것이다.
“비타민·건강보조식품 무용론” 주장
문제는 이렇게 복잡한 연구를 통해 나온 임상실험 결과가 모두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최종 단계는 이런 개별 임상실험 결과를 모아 통계·계량적으로 분석하는 메타분석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의학계는 임상실험 결과만 놓고 약이나 식품의 효용성을 따져왔다. 그런데 최근 선진 의학계는 바로 이 메타분석을 통해 임상실험 결과를 다시 검증하고 있는 것이다.
메타분석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미국에서 16년간 이뤄진 47개의 수준 높은 임상실험 논문을 메타분석한 결과가 2007년 미의사협회지(JAMA)에 발표됐다. ‘비타민/항산화보충제 복용과 사망률 관련성’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암 예방에 좋다는 비타민 A, C, E, 베타카로틴, 셀레늄과 같은 비타민/항산화보충제를 섭취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망률이 오히려 5% 높다는 것이었다. 천연 식품이 아닌 제약 형태의 비타민 보충제가 몸에 해롭다는 충격적인 결과는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미국은 성인의 50%가 비타민 보충제를 먹고 있다.(우리나라는 성인의 20% 정도가 복용한다)
명 박사는 2005년부터 메타분석을 거의 독학으로 공부해 2007년 메타분석과 관련한 석사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했다. 그리고 2013년 30여편의 논문을 메타분석한 ‘비타민 및 항산화보충제의 심혈관 질환 예방에 대한 효능’이라는 연구를 통해 비타민과 항산화보충제가 심혈관 질환에 효과가 없고, 오히려 방광암의 경우 암 발생률을 1.52% 높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 의학저널에 발표됐다.
이후 세계적으로 메타분석이 많이 사용되면서 이런 사실이 속속 검증되고 확인됐다. 결국 미국질병예방서비스위원회는 ‘암이나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종합비타민이나 항산화보충제의 효능은 근거가 불충분하고 오히려 흡연자가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먹는 것은 폐암 발생률을 높이므로 사용을 금지한다’고 고시했다. 아울러 고용량 비타민의 감기에 대한 효능도 ‘근거 없음’으로 결론내렸다.
국제적으로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나라는 의사가 비타민 광고에 출연하는 등 비타민 광풍이 불고 있었다. 명 박사는 일부 의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런 상황에 의사들이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스스로 비타민 쇼핑몰을 운영한다”며 “학교 선배나 서로 잘 아는 사이지만 이건 너무하다”고 말했다.(그는 이들 의사들이 운영하는 쇼핑몰에 직접 접속해 보였다) 이런 잘못된 정보로 우리나라 성인의 20%, 암환자의 경우 무려 70%가 비타민 보충제를 복용하고 있다. 명 박사는 이후 국제학술지에 논문 47편을 쓰면서 비타민뿐만 아니라 오메가3 같은 건강보조식품도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유해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대학시절 개그맨 시험 본 ‘운동권 의대생’
중학교 시절, 그의 꿈은 개그맨이나 만화가였다. 로보트 태권V를 많이 그렸다. 1994년 대학 본과 3학년 겨울방학 때 대학개그제에 참가, 3차 본선까지 진출했다가 떨어졌다. 나중에 SBS 개그맨 모집에 지원했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작가로 변신, 5개월 동안 개그작가를 한 적이 있다.
그가 인생을 참 재미있게 살아 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인생을 매우 치열하게 살고 있다. 사실 모르는 척 눈감아주면 그만일 동업자에게 혹독한 비판을 가하기란 쉽지 않다.
명승권 박사는 TV에 많이 출연해서인지 카메라에 대해 매우 친숙한 자세를 취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그는 “정의감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무슨 콤플렉스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의대생으로 드물게 사회과학서적을 파고들고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민하던 세칭 운동권 학생이었다. 그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대학에 들어가 서클 활동을 하면서 마르크시즘, 유물론자로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가난한 생활(그는 반지하 셋방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을 통해 “이 사회는 가진 자, 권력자들의 비리와 억압에 성실한 사람들이 압박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토로했다.
사실 그는 의대 졸업 후 형편이 안 돼 남들 다 가는 외국유학은커녕 대학원도 못 갔다. 군의관을 마친 후 1억5000만원 대출을 받아 봉천동에 병원을 개업했지만 10개월 만에 망했다. 하루 환자를 50~60명은 봐야 유지되는데, 20명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30대가 그에겐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지금 우리 사회는 거짓이 진실로 행세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병원을 말아먹고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메타분석이라는 유력한 ‘도구’를 얻었다. 메타분석을 바탕으로 한 근거중심 의학은 그동안 매우 과학적이라고 여겨졌던 의학계의 허상을 깨부수고 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는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거짓이 진실로 행세하고 있다. 철저히 과학적이어야 할 의학이 그럴 정도라면 다른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많은 토목공학자, 심지어 환경공학자들마저 “4대강 사업은 친환경적이며 생태환경에 유리하다”고 우겼다. 과학자들은 ‘자리’나 ‘연구비’에 과학의 양심을 팔았다.
결국 남은 것은 음모론만 횡행하는 사회가 됐다. 4대강 사업이 그러했고, 국정원 댓글조작 사태도, 최근 세월호 참사도 그러했다. 과학적 설명보다, 정치적 논리와 이에 대응하는 음모론만 위세를 떨친다. 이런 황량한 시대, 그래서 명승권이란 존재가 특이해 보인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즐겨 그렸던 로보트 태권V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당장 비타민 판매 중지시켜야 한다”
명승권 박사는 의대생으로 드물게 운동권에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모순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했다고 고백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메타분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단점 있다. 한계 인정한다. 100명 임상실험, 200명 임상실험 통계적으로 합친다고 단일연구로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연구를 정리하면 방향성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은 진료권고안으로도 유용하다.”
한의학에서 주장하는 수천년간 임상실험, 이것도 일종의 메타분석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전혀 아니다. (한의학은) 수백수천년간 그런 정보를 선택적으로, 과장해서 정리한 것이다. 근거중심 의학에서 임상실험 전 단계로 관찰단계를 거쳐 환자군 연구 단계가 있는데, 한의학은 이 약을 먹고 좋아졌다는 사람만 연구한 환자군 연구 수준이다.”
그렇다고 서양의학만 만고의 진리는 아니지 않는가.
“현존하는 최상의 근거를 바탕으로 치료하라는 것이다. 의학교과서에 나온 지식도 최신 지식 아니다. 3~4년 전 지식이다. 근거중심 의학의 중요한 잣대가 메타분석이다.”
현존하는 최상의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분야가 있지 않나.
“침술, 뜸, 구황, 허브(한약), 기, 기도, 명상 등을 모두 보완대체요법으로 분류한다. 미국 국립보완대체요법센터에서 2000년부터 2011년 동안 1년에 1000억씩 10년간 1조원의 예산을 쓰고 이들을 하나하나 검증했다. 수백건을 임상실험한 결과 대부분 근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 결과를 권고안 형식으로 공개했다. 지금 인터넷에 들어가면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이런 비타민이나 보완대체요법의 문제를 책임 있는 기관이 국민에게 알려야 하지 않는가.
“그게 중요하다. 우리나라 식약처는 건강기능식품 산업 발전을 염두에 둔다. 전체 의약품 시장 15조6000억원 중 건강기능식품 시장규모가 3조6000억원이다. 이 건강기능식품 매출의 50%가 홍삼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식약처는 진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다. 비타민이 오히려 방광암 사망률을 높인다면 식약처장은 당장 판매를 중지시켜야 한다.”
제약회사에서 ‘봐달라’고 오는 곳은 없나.
“공식적으로 단 한 곳도 없다. 아마 스트레스는 받을 것이다.”
의학계에서 너무 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나.
“나는 이 일을 정의로운 일이라고 믿는다.”
이 시대 의사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양심이다. 여기에 올바른 최신 의학지식을 습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근거중심 의학에 기반한 의학지식을 쉬지 않고 쌓아야 한다.”
결국 국민이 암 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표준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적게 먹고,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먹어야 한다. 김치를 줄이고 다른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담배를 끊고 적절한 음주를 해야 한다. 싱겁게 먹는 것도 중요하다.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건 돈과 시간낭비이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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