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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

역사학자 이덕일… 비주류학자의 한풀이인가 식민사관 청산의 첨병인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첫 해인 지난해 친일 역사교과서로 전국이 홍역을 앓았다. 친일식민사관에 가까운 역사관을 가진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자 국민들은 경악하고 분노했다. 다행히 이를 교과서로 채택한 학교가 그리 많지 않아 일단락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근 문창극 총리 내정자 사태에서 친일식민사관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게으른 민족의 DNA 때문에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문창극의 동영상 발언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분노로 문창극은 낙마했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식민사관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 본부’ 창립
사실 박근혜 정부 들어 친일식민사관,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인사들이 속속 요직에 포진했다. 이들은 역사·문화·방송계까지 진출했다. 지난해 9월 임명된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은 뉴라이트의 본산격인 한국현대사학회 상임고문으로 교학사 교과서를 “대한민국의 국격에 걸맞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준하는 역사서”라고 평가했던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 임명된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도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인물이다. 2012년 9월 취임한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역시 한국현대사학회 고문을 지냈다. 결국 역사 관련 3대 국책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중앙연구원·동북아역사재단 기관장을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인사들이 모두 장악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올 2월 임명된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뉴라이트 성향 인사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권위주의 시대 이후, 그러니까 가장 최근 현대사를 정리하고 기념하는 곳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직원들은 박 이사장의 임명에 반대해 지금까지 농성 중이다. 지난 6월 임명된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교과서포럼 회장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뉴라이트 성향 인물이다. 지난 6월 임명된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한국현대사학회 창립 기념 학술대회에서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축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총리나 장관처럼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자리가 아닌, 주목도가 떨어지는 자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1차자료에 충실한 역사서 100여권 펴내
이에 대항하는 힘은 미약하다.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역사학자들이나 노조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한 민간역사연구소가 비판과 대항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서울 서강대학교 정문쪽 외진 건물 2층에 자리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소장 이덕일)가 바로 그곳이다. 서너 평 될까 말까한 낡은 사무실에 모인 젊은 사학자들이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영향력을 소리없이 넓혀가고 있는 뉴라이트 역사관(또는 그 인물들)과 ‘학문적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3월 19일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 본부’를 창립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 인명진 갈릴리 교회 목사, 허성관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공동의장으로 있다. 뉴라이트를 상대로 한 학문적 진검승부의 ‘핵심인물’이 바로 학술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이덕일 박사다. 이 박사는 만주지역 항일독립운동 단체인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학위를 받은 젊은 역사학자로 친일식민지사관의 허상을 깨는 연구와 강연,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1998년 <사도세자의 고백>에서 똑똑한 사도세자가 노론의 모함에 죽임을 당했고, 영조는 성군이 아니라 형과 아들을 죽인 폭군으로 규정해 기존 역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박사는 이어 2000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통해 송시열을 비롯한 노론세력을 주자학을 앞세워 자주적인 임금을 독살하고 조선을 사대주의 나라로 전락시킨 주범으로 지목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76명 중 80%인 57명이 노론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친일사관의 뿌리는 바로 이 노론사관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기존 역사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통설을 뒤엎는 그의 도발적인 주장과 사관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에게는 비주류·비정통이라는 비아냥이 있는 반면, 1차 자료에 충실한 연구자 혹은 약자의 사관을 가진 역사가라는 평가도 있다. 먼저 기존 학계의 그에 대한 평가를 보자. 그와 논쟁을 벌인 바 있는 서울대 정병설 교수는 “(이덕일 박사는) 두 가지 이유에서 학문적 논쟁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가) 논쟁의 상대를 인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 교수는 “(이 박사는) 다른 사람의 비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제대로 된 근거나 논거가 없다” “사료 해독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그에 대한 비판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 박사는 그 이유가 기존 학계를 노론·친일 사학이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학계와 다른 주장을 펴면 무조건 사이비로 몰아붙인다는 얘기다. 또 중요한 건 사료 자체가 아니라 사료를 인용할 때 충분한 사료 비판 과정을 거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역사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쪽은 사료 오독, 한쪽은 사료 비판으로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비전문가로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박사의 도발적인 역사 읽기가 닫힌 해석에 안주해 있던 역사학계에 상당한 파장과 충격을 안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북아역사재단에 학술 토론 제안
최근 이 위원장은 국책연구소인 동북아역사재단에 ‘학술 대결’을 제안한 상태다. 제헌절인 7월 17일 공개 학술토론을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아 다시 8월 15일 광복절 공개 학술토론을 제안했다. 토론내용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올해 미국 하바드대 한국학연구소에 무려 10억원을 지원해 발행한 6권의 영문책자에 기술된 대목이다.

3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식민사학해체 국민운동본부 발대식’에서 이덕일 박사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있다.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이 박사는 “이 책은 한반도 북쪽은 고조선이 없이 한사군으로, 남쪽은 사실상 임나일본부설의 바탕인 삼한(마한·변한·진한)으로 시작해 한반도 남북 모두 식민지에서 시작됐다는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이런 문제는 2013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됐고, 김학준 이사장도 바로 고치겠다고 말했지만 수정되지 않다가 급기야 책으로 나온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중국이 동북지역의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에 대항하는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국책연구기관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설립목적과 정반대되는 책의 발간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박사는 “국민들이 속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운동본부는 지난 4월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국민운동본부는 감사요청서에서 “재단은 설립 이후 동북공정의 핵심논리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내용의 논문이나 연구보고서를 단 한 건도 낸 적이 없고, 오히려 동북공정에 부응하는 주장을 재단 홈페이지에 지속적으로 게시했다”면서 “재단의 지속적인 배임·직무유기·예산낭비·법령위반·반국가 반민족 행태에 대해 감사원이 그 실태와 책임소재를 명백하게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국민운동본부는 아예 친일식민사관, 거슬러 올라가면 노론사관에 찌든 우리 역사학계를 대체할 새로운 학회 창립을 준비 중이다.

이 박사는 “완벽하진 않지만 전공별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나름 갖춰진 학회가 8월 중 발족할 것”이라며 “식민사학자들은 친일사관을 가진 교수로부터 도제적으로 양성됐지만, 우리 학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차 사료를 가지고 각자 공부하다 만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원고를 거의 탈고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넘어가는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남북 통합적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이덕일 박사는 한번도 대학교수직에 원서를 제출한 적이 없다고 했다. | 김영민 기자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사태는 우리 사회에 식민사관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 아닌가.

“한 번도 다른 프레임을 접해보거나 사고하지 않고 산 사람이다. ”

문창극은 어릴 때부터 극우·기독교·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고 하는데, 이덕일 박사도 명문대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면 그런 역사관점을 가지지 않았을까.

“(허~허~허) 안 나와 봤으니…. 역사학은 1차 사료를 가지고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학문인데, 그런 것을 알고도 식민사학을 할 수 있을까. 문창극이 찬양하는 윤치호는 백인이 되고 싶어했으나 외모가 안 돼 일본인이 되려 한 인물이다. 철저히 노예 관점을 가진 인물이다. 문창극은 바로 그 노예의 역사관을 가진 선생에게 엘리트 교육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식민사학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노예 관점의 식민사관을 가진 사람이 해방 후 주요 대학, 국사편찬위원회 등을 장악했다. 공부 안 하고 적당히 선생의 뿌리나 찾으면 모르겠지만,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제대로 공부했다면 식민사관을 가질 수 없다는 얘기다.”

100년 전 식민사관의 뿌리는 300년 전 노론사관이라는 학설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논쟁이 많았다.

“나라를 집단적으로 팔아먹은 노론 당수가 바로 이완용이다. 일제시대 발행된 <조선귀족열전>에 보면 출신을 노론이라고 다 명시했다. 일진회 송병준은 자칭 노론이라고 썼다.(그는 이 책을 찾아 해당 페이지를 펴 보였다) 노론 중에서 우당 이회영, 이상설 계열이 소론으로 갈라져 독립운동을 한 세력이다. 이상룡을 비롯한 남인계열도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한다. 일제는 상놈만 독립운동을 하고 양반은 안 했다고 했는데, 이게 바로 노론적 관점이다. 노론의 친명 사대주의가 친일 사대주의로 이어진 것이다.”

이 박사를 비판할 때 독립운동사 전공한 사람이 조선사에 대해 뭘 아느냐는 지적이 있다.

“친일식민사학 논쟁에서 고대사가 중요 쟁점이다. 그게 바로 현대사다. 고대사도 곧 현대사이다. 역사는 종합적이라는 것이다. 일본 역사학은 대단히 미개한 수준으로 독일에서 실증주의 역사학을 도입했다. 그러나 중국과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실증주의 역사학을 가지고 있었다.(사마천의 사기를 펴들고 한 페이지에 작은 글씨로 빽빽히 써 있는 주석을 설명해줬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도 그렇게 돼 있다.”

최근 일본에 대항해 한국과 중국이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관련해 우리가 중국과 역사전쟁을 벌였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역사적 관점을 가져야 하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역사주권과 영토주권 얘기를 하던데, 거기에 답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중국이 만주를 넘어 북한 지역까지 찾으려 한다면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 중국도 식민지적 관점과 제국주의적 관점이 혼재돼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일본은 역사청산 안 한 군국주의 후예에 불과하다. 일본이 실제 전쟁을 한다면 대상은 한국(한반도)이다.”

남한인가, 북한인가.
“그게 의미가 없다. 일본에서 볼 때는 한반도 전체로 본다. 일본과 중국 등 동북아 정세에 대응하는 우리의 역사적 자세는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남북 통합적 자세여야 한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