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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할 말 하는 관료인가 저항하는 관피아인가

박근혜 정부 정무직 인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현직 장관이 후임자 없이 ‘면직’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유진룡 전 장관이 그 당사자이다. 그는 7월 17일 짐을 싸들고 이임식도 없이 장관실을 비웠다. 선임 차관인 1차관도 없는 상태에서 장관을 면직한 것이다. 공무원이 업무에서 배제되는 면직에는 본인이 사표를 내는 의원면직과 임명권자의 판단에 의한 직권면직, 그리고 징계를 받아 면직되는 징계면직이 있다.

국무회의서 쓴소리, 낙하산인사 반대
유진룡 전 장관에 대해 ‘국무회의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 대통령이 후임자도 없이 장관을 직권면직시켰다’는 보도가 무성하다. 하지만 사실은 알려진 것과 약간 다르다. 안전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 장관의 경우 대통령이 직권면직 처리한 것이 아니라, 후임 정성근 내정자가 발표되자 사표를 준비했다가 이것이 처리된 것으로 의원면직”이라며 “얼마 전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사표 없이 직권면직된 경우”라고 설명했다. 직권면직은 나중에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고, 의원면직은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장·차관 정무직을 지낸 사람에게는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이석우 기자


정무직은 말 그대로 임명권자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임명되고, 면직된다. 따라서 정무직 임명과 면직은 절차보다 그 배경이 더 중요하다. 그가 퇴임식도 없이 면직된 이유에 대해 다양한 설(說)이 있지만 두 가지가 일치한다. 대통령 앞에서 쓴소리를 했다는 것과 청와대의 부당인사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문체부의 한 인사는 “국무회의에서 두 차례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했는데, 세 번째 또 하다가 대통령으로부터 ‘그만 하세요’라고 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여기서 쓴소리란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 정부의 한 차관급 공직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장관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 할 때 유 장관이 내각 총사퇴를 주장했다, 그러나 총리가 ‘내가 사임을 표시했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런데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또 같은 주장을 했다. 결국 대통령이 ‘그만 하세요’라고 제지하면서 대통령 특유의 차가운 눈초리를 보냈다”고 전했다. 유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고 직후 문체부 산하 사행산업인 경정과 경륜을 중단시키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경마도 중단시키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에서 모두 면직
두 번째 ‘미운 털’은 인사문제였다. 문체부 내부에서도 “장관은 청와대 등쌀에 산하기관장은 물론, 국·실장 인사도 못했다”고 말했다. 구체적 사례도 있다. 문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청와대 실세가 연예인 출신 모씨를 산하기관장에 임명하라고 요청했을 때 유 전 장관은 “(그런 사람을 임명하면) 코미디입니다”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유진룡 전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바른 말을 하고, 청와대 낙하산 인사에 반대해 면직됐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진룡! 제가 문화관광부 장관 때 공보관 임명”이라고 자신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제가 DJ 공보업무를 지시하자, (유진룡 공보관이) ‘그건 문화부 할 일이 아니다’라고 거절해 ‘그래 내가 틀렸어’라고 장관이 수용했다”고 유진룡의 올곧음을 치켜세웠다. 진보적 성향의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자신의 트위터에 “유 장관이 나름 바른소리를 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콱 찍혔다는 얘기가 정·관계에 파다하다”고 그를 칭송했다. 이후 많은 언론이 그를 바른소리를 하는 소신 장관으로 평가했다. 그가 근무했던 문체부 내부에서 그는 거의 ‘영웅’ 수준이다.

하지만 유진룡 전 장관을 면직시킨 청와대에서는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8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정무적 감각 부족”이라는 말만 간간이 흘러나올 뿐이다. 사실 유진룡은 2006년 차관 시절에도 면직된 전력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차관·장관 모두 면직된 매우 드문 케이스의 공직자이다. 게다가 그는 진보적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 박근혜 정부에서 똑같이 면직됐다. 정무직 공무원의 경우 ‘정치적 성향’이 많이 좌우되는데 그는 진보와 보수정권 모두에서 면직된 것이다. 하지만 8년 전 이른바 “배 째 드리지요” 사건의 진실은 다르다.(상자기사 참조)

유 전 장관과 관련해 보혁을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나오는 지적이 ‘정무적 감각 부족’이다. 정무적 감각은 사실 정무직 공무원에게 기본 요건이다. 장관의 지침서인 <장관 직무 가이드>도 ‘장관은 수시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와 복잡한 이해갈등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적인 직위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정치력은 성공하는 장관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자질 중에서 기본적인 자질에 속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관 업무의 75%가 정치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유 전 장관의 ‘정무적 감각 부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유 전 장관에게서 발견되는 특이점 중의 하나는 강한 엘리트 의식이다. 유 전 장관은 서울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과장 시절부터 ‘문광부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인정 받았다. 박지원 의원도 장관 시절 그를 ‘문화부의 엘리트 공무원’으로 기억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무기력하게 대처하던 공무원을 바라보며 자존심 강한 유 전 장관은 매우 상심하고 분노했을 것이다. 내각 총사퇴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유진룡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유 전 장관의 엘리트 의식은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 전 장관은 2006년 차관에서 면직됐을 때 직원들에게 보낸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e메일에서 시국을 무협지 ‘소호강호’(笑傲江湖)에 비유했다. 자신에 대한 청와대의 감사와 정치권 논란을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를 좇는 강호에 빗대 호탕한 마음으로 웃어넘기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강한 ‘엘리트 의식’과 부족한 정무감각
유 전 장관과 비슷한 시기 차관을 지낸 한 인사는 “유진룡이 차관 퇴임 후 모 대학 부총장으로 갔는데 이사장 면전에서 ‘이런 교수들과 이런 시설로 학생들에게 수업료 받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나요?’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퇴임 공직자들에게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 말은 한편 ‘바른말’로 들리지만 교수들이 실력 없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유 전 장관의 ‘엘리트 공무원’ 의식은 장관 취임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보다 적극적으로 소신과 책임감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자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무턱대고 열심히 일하는 방식은 버릴 것.’ 특히 취임사 마지막 대목 ‘맡은 일들을 소신 있게 추진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당당한 공무원이 되라’는 대목에 유 전 장관의 공직관이 응축돼 있다.

물론 엘리트 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무적 영역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 전직 장관은 “사전 조율 없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대통령 인사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돌출행동에 불과하다”면서 “정무적 감각은커녕 상식적 판단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혹평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함정이 있다. 바로 관피아 문제이다. 유 전 장관이 차관 시절 그를 겪었던 한 인사는 “그는 자신의 영역이 외부로부터 간섭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엘리트주의자적 면모를 보였다”면서 “낙하산 인사에 대한 반발도 공무원 몫을 넘보는 것에 대한 반발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사실 정부 산하기관 자리는 정치권 출신과 공무원 출신이 적당히 나눠갖는 게 관례다. 그러나 최근 관피아 문제가 불거지면서 산하기관에 공무원 출신 임명이 거의 막힌 상황이다. 유 전 장관의 인사 반발을 개혁이 아닌 일종의 ‘관피아의 저항’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의 행동이 올곧은 관료의 표상인지, 아니면 관피아의 저항에 불과한지 결론을 내리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배 째 드리죠”는 사실인가?

2006년 8월 17일 세종로 문화부 청사를 방문한 한나라당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 보복경질 진상조사단’ 의원들과 김명곤 문화부 장관이 얘기를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유진룡 전 장관에게는 부당한 인사 청탁을 거부한 공무원의 표상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2006년 참여정부 시절 문화부 차관에서 면직된 사건이 발단이었다. 당시 유진룡 차관은 아리랑TV 부사장 인사와 관련해 이백만 홍보수석,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과 논의를 했다. 청와대가 추천한 인사에 대해 유진룡은 ‘자격미달’이라고 거부했다. 이 때 청와대 양 비서관이 유 차관에게 “배를 째 달라는 말씀이지요? 예, 배 째 드리죠”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당시 정계의 최고 이슈로 떠올랐다.

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신)은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 보복경질 진상조사단’을 만들어 공세를 벌였다.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인사청탁은 대통령 지시사항일 가능성이 높고, ‘배 째 드리지요’ 발언도 대통령 입에서 나온 것으로 이 말을 한 사람은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 ‘배 째 드리죠’라는 험악한 표현은 참여정부 청와대의 무례함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번졌다. 이에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감찰을 실시하고, 2006년 8월 16일 그 결과를 공개했다. 청와대는 면직 사유에 대해 ‘정무직의 기본 덕목인 조정·설득 능력이 부족하고, 특히 신문유통원 운영 부진과 관련한 정무적 책임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신문유통원이란 이른바 ‘자전거 신문’ 등 어지러운 신문유통질서를 바로잡고, 여론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신문 공동배달 체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당시 전해철 민정수석(현 새정치연합 국회의원)은 “신문유통원 예산 교부가 수개월간 지연돼 업무가 마비 단계에 이르렀고, 신문유통원장이 개인 사채를 차입해 운영 경비를 마련할 정도로 파행에 이르렀다”며 “(유 차관은) 신문유통원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예산처 등 관련부처를 설득, 조정하는 능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신문유통원 관계자는 “유 차관을 비롯한 문체부 공무원들은 ‘왜 사기업인 신문사를 국가가 지원해 주느냐’는 부정적 생각이 강했다”면서 “당시 조·중·동 생각도 그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인사문제에서도 마찰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유 차관이 공무원 몫을 챙기는 과정에서의 마찰”이라고 설명했다.

유 전 장관도 “배 째 드리죠”라는 얘기를 양 비서관으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없다고 실토했다. 유 전 장관은 차관에서 면직된 후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내게 직접 한 게 아니라 전해 들었다, 청와대 행정관이 ‘배를 째 드리겠다고 전하라’는 양 비서관의 말을 문화부 직원에게 전했고, 그 직원이 내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전언자에 대한 감사에도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룡 차관의 부적절한 언행이 면직 사유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가 감사에 들어가자 유 차관은 “나를 조사하는 것은 청와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당시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의 경질은 부적절한 언행이 주된 사유”라며 “부적절한 언행이 없었다면 경질이 안 됐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배 째 드리죠”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양정철 비서관은 “80년대 ‘운동권이 성을 혁명 도구화한다’는 루머 이래 최악의 악성 유언비어”라고 말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