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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탑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사회변동기에는 각종 단체의 집단적 요구가 크게 늘어난다. 특히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로 옮아갈 때에는 참여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억눌렸던 욕구와 주장이 일시에 분출되기 때문이다.이들의 참여요구를 수용할 정당이나 국회, 행정같은 제도화된 시스템이 불충분하면 위기 증후군이 나타난다. 이를 가리켜 정치학에서는 '참여의 위기'라고 부른다.

지금 참여정부는 각종 시민.사회.이익단체의 폭발적인 참여요구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파업,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싼 환경.사회단체의 요구,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전교조의 반발이 계속되지만 이를 수용할 관료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정당은 지리멸렬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바로 참여의 위기를 맞는 상황이다.

더구나 참여를 요구하는 측이 바로 참여정부를 태생시킨 저변세력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곤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참여의 위기가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한번은 거쳐야 할 홍역이라면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정권 담당자의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참여정부는 청와대에 국민참여수석이라는 직제까지 만들었지만 분출하는 참여의 욕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참여정부는 참여의 욕구를 조정할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욕구가 제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아직 정교하지 못하다. 아직 정책결정과정도 불투명하고 정보공개법, 행정절차법도 미흡하다.

어느정도 참여욕구의 자제도 필요하다.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는 정책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새만금방조제나 경부고속철도 등이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시민.사회단체가 완공단계에 이른 사업의 중단을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참여의 욕구가 과도하면 엉뚱한 빌미를 줘 진짜 위기를 제공한다. 바로 공무원노조가 좋은 사례다. 공무원노조는 국제적 기준이나 권고로 볼 때 허용이 불가피했다. 정부가 일부의 반대에도 국제 수준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공무원노조를 허용키로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공무원노조는 명실상부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까지 요구하며 파업찬반투표를 강행했다. 공무원의 임금은 곧 예산이고 이것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에서 공무원노조의 임금협상은 세계 어디나 상징적 의미에 그치는 것이다.

결국 공무원노조의 과다한 참여욕구는 파업 찬반투표 부결로 나타났다. 이것은 공무원노조 내부 문제만 드러낸 것이 아니다. 당초 공무원노조에 대해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은 온건론자였다. 그러나 '과거 코드'에 익숙한 측은 강경대응을 주장했고 투표를 힘으로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공무원노조의 과도한 참여욕구는 정부내에서 토론보다 힘을 숭배하는 강경파의 득세를 도와준 꼴이 됐다.

지금처럼 참여욕구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판단도 중요하다. 지금 참여의 위기는 토론에 협상에 양보에 익숙치 않은 우리의 문화 수준도 한몫하고 있다. 특히 대중은 겉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으로 "정부는 일사분란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심성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한 단체가 대통령과 총리에게 엄격하게 국정을 운영하라고 지휘봉과 회초리를 보냈다고 한다.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민은 지휘봉 끝이 가르키는 곳으로 끌려가지도 회초리로 윽박한다고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내에서는 "밀리지 않겠다, 강경 대응하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려스런 대목이다. 이것은 분출하는 요구를 과거방식대로 해결하겠다는 뜻이고 토론과 참여의 국정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참여정부의 초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100여일만에 초심을 포기하기엔 너무 빠르다. wonhb@kyunghyang.com
원희복 / 지방차지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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