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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탑

'리틀 盧'와 '김두관'

리틀 노(盧). 스타일이나 생각, 요즘 즐겨쓰는 표현으로 코드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같다고 해서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에 붙여진 별명이다. 김장관은 44세에 행정의 책임장관으로 발탁돼 언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았다. 김장관의 행보는 노대통령 국정운영의 작은 척도라 할 정도로 상징성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실제 김장관과 노대통령을 비교적 가까이 지켜본 기자가 볼 때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2000년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청와대 업무보고를 앞두고 보고내용을 기자에게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당시 노장관은 TV카메라용으로 30초간만 별도 멘트를 해달라는 방송기자의 요구에 응하면서 '다시'를 연발했다. 웬만하면 넘어가도 될 것을 "발음이 꼬였다" "시선이 밑으로 갔다"며 무려 8번이나 재촬영을 했다. 당시 기자는 "참 집요한 장관"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점에서 김장관도 비슷하다. 김장관은 얼마전 공무원노조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카메라 기자가 보이자 비좁은 자리를 비키며 "사진기자가 먼저 들어가 사진을 찍으라"고 '친절하게' 안내까지 했다. 그리고 사진기자의 요구에 몇번씩 한 악수를 또 연출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김장관은 지난 1일 노대통령과 비슷한 장면을 연출했다. 김장관은 이날 단행한 1급 인사의 배경 설명을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통보했다. 노대통령이 조각(組閣)때 국무위원을 배석시키고 인사 배경을 설명한 바로 그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행자부는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1급 공무원 11명의 일괄사표를 받은 부처였고, 공무원 인사제도 주무부처라는 점에서, 또 장관이 인사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전례없는 일이어서 당연히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김장관의 이날 '이벤트'는 겉으로 보기에 노대통령의 그것과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전혀 딴판이었다. 김장관은 부서내 인기투표 정도의 설문조사서를 다면평가 자료라며 "개혁.전문.청렴성을 바탕으로 인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여론조사식 인사의 문제점에 대해 김장관은 별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 인사문제를 총괄하는 국무위원이라는 진지함도 없고 기자들이 꼬치꼬치 따지자 "예외가 없는 원칙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본질을 비켜나갔다.

더 큰 문제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다. 행자부 1급 공무원 전원이 사표를 낸 것은 중요한 뉴스거리였다. 사표를 낸 사람 모두 "검사라면 나가 변호사라도 하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우리가 왜 스스로 사표를 내겠나, 위에서 내라고 해서 냈다"고 말했다. 일부 인사는 "왜 내가 사표를 내야 하냐"고 거칠게 항의까지 했다.

그런데도 김장관은 1급 공무원 일괄사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끝까지 "후진을 위해 용퇴한 것일 뿐 일괄사표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정부가 홍보할 필요가 있는 것만 알리고 그렇지 않은 사실은 확인조차 해주지 않는 태도는 브리핑제도로 전환을 앞둔 언론과의 관계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더구나 김장관은 지금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미는 사람과 행자부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인사 라인도 아닌 청와대 누군가가 '압력'을 넣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김장관은 인사를 마무리짓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노대통령은 해양부 장관 시절 "후임장관은 내가 지명하고 나가겠다"고 인사권자에게 누가 될 법한 '호기'까지 보였지만 젊은 김장관은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44세의 패기있는 장관. 국민은 김장관을 통해 이것을 기대했다. 김장관은 자신의 행보가 참여정부 전체 평가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야말로 김장관 개인의 입장에서 '리틀 노'를 넘어 진정한 '김두관' 자신이 되는 길일 것이다. wonhb@kyunghyang.com
원희복 / 지방자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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