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37년만에 다시 치러진 장준하 선생 겨레장에 많은 참배객이 몰렸다. 그리고 장 선생은 경기도 파주에 다시 안장됐다. 이번 장례식을 통해 장 선생의 사망 원인이 ‘머리 가격에 의한 사망 후 추락’으로 드러났다.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법의학적 금언에 비추어 타살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장 선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정치권은 지난 대선전 진상규명을 하기로 합의까지 했다. 여야 정치권은 그 약속만 지키면 되는 것이다. 관건은 여야가 특별법을 만드는 것에 박근혜 대통령이 용인하느냐 여부다.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국민통합을 한다며 장 선생의 유족을 찾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당선 후 장 선생 유족을 찾거나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 장 선생과 박정희 대통령과 ‘맞장’은 서로의 삶을 놓고 벌인 하나의 전쟁이었다. 장 선생은 67년 5월 6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를 비난하다 구속됐다. 당시 같이 구속된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 그때 여당의 선거 총책임자가 바로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다. 하지만 장 선생은 그해 6월 치러진 총선에서 서울 동대문을구에서 옥중 출마, 당당히 당선됐다. 그리고 국회에 들어와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사진은 1967년 바로 국방위원으로 활동할 때 모습이다. 동료 의원과 얘기도중 단상 아래를 노려보는 모습이 매섭다. 장 의원이 국방위원으로 활동할 때 중부전선을 방어하던 2군단장이 바로 김재규이다. 당시 김 군단장은 장 선생에게 큰 감명을 받았고, 중앙정보부장을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장 선생의 유족을 도왔다고 한다. 장준하와 김재규, 그리고 박정희 3인의 이런 연결고리도 ‘운명적’이다.
장 선생 의문사에 대한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이 이뤄진 것은 2000년 12월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이다. 의문사 유가족들의 수백일 국회앞 천막농성 결과 권위주의 시대 저질러진 의문의 죽음을 규명하고, 보상하기 위한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드디어 장 선생 죽음의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초대 양승규 위원장도 대단했다. 교수 출신인 그는 마지막 목격자 김씨를 처음으로 공식 소환하고, 당시 68세의 나이에 직접 포천 약사봉을 오르며 현장 조사까지 했다. 그리고 모형을 통한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당시 기자에게 “장준하는 명백한 타살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 내용은 경향신문 2001년 6월 4일자 1면에 보도됐다)
하지만 당시 국무총리가 김종필(JP)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JP와 연대, 이른바 DJP연대로 정권을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JP는 초대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여러 의문사 사건에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총리인 JP의 ‘방해공작’은 치밀했지만 양 위원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양 위원장은 기자에게 “현직 총리 김종필을 소환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기개가 높았다. 양 위원장은 6월 12일 직접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장준하 선생은 타살혐의가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구두로 보고하기도 했다.(경향신문 2001년 6월 13일자 보도)
하지만 ‘현실’은 달라져 있었다. DJ는 과거 장준하 선생과 같이 구속될 당시의 그가 아니었다. DJ는 대통령이 되자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꼽기도 했다. 양 위원장은 JP를 소환하지도, 또 조사결과서에 ‘타살’이라고 명시하지도 못했다. 결국 양 위원장은 임기를 남겨두고 중도에 사퇴했다.
기자는 만약 그때 JP가 총리만 아니었어도, DJ가 양 위원장에게 조금만 더 힘을 실어줬어도 ‘장준하 타살’의 진실을 밝히고, 이를 정부 공식 문서에 남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다면 역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을지 모른다. 최소한 장 선생에 대한 겨레장도, 유골의 재검안도, 재재차 진상규명 요구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매서운 눈으로 의석을 노려보는 장준하 선생. 그가 노려보는 사람은 바로 ‘사사건건 방해하는’ 당시 공화당 의장(JP), 그리고 또 다른 누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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