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재보궐선거 선거전이 본격화됐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서울 노원병 지역에 출마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이다. 지난해 유력한 대선주자였지만 후보를 양보했던 그였다. 전국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했던 그에게 노원병은 정말 좁은 지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노원병에서 안 후보의 선거운동 모습을 보면, 허름한 점버에 일회용 비닐 우의를 입고 시장통, 아파트 상가를 돌아다니는 전형적인 ‘전통선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게다가 안 후보의 측근들은 노원병 지역에 사는 지인을 찾아 일일히 지지를 부탁하는 ‘원시적’ 선거방법을 택하고 있다.
명문 의대 출신에 수천억 벤처기업을 일군 신화의 주인공, 게다가 지난 대선에서 유력 대권주자로 ‘새정치’를 설파했던 그의 이미지로 보아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안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나름 ‘선진적’ 선거 유세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새로운 선거기법을 도입하는 등 과학적·논리적·미디어 선거를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안 후보가 지난 대선을 통해 진정한 민심을 얻는 방법을 깨우친 것일까?
사실 지난 대통령선거도 그랬지만 요즘 선거양상이 복고적으로 바뀌었다. 과학적·미디어선거에서 후보가 지역을 일일히 방문하고, 사람을 모아 연설하는 전통적인 지역유세로 바뀐 것이다. 이는 ‘공부하기 싫은’ 후보들이 TV토론을 기피한 것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세를 과시하듯한 유세방식에서 고개를 90도 숙여 절하는 겸손유세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사진은 김대중 대통령(DJ)이 아직 금배지를 달지 못했던 1960년 4월6일 민주당 3·15부정선거 규탄 가두시위 모습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53년전 서울 시청앞 현장인 것이다. 당시 DJ는 민주당 선전부 차장으로 지금으로 치면 대변인실 부대변인 정도였다.
대변인 조재천 의원이 마이크를 들고 성명서를 낭독할 때 DJ는 옆에서 낑낑거리며 무거운 휴대용 확성기를 메고 따라 다녀야 했다. 조 대변인은 당시 “학생이 공명선거를 외친 것도 민주당 선동에 의한 것으로 뒤집어 씌우는 것은 자유당의 상투수단”이라고 외치고 있다. 당시 이승만의 자유당은 마산 3·15의거를 야당 민주당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 역시 부정선거 반대 시위를 벌였고, 이날 반박 성명을 낭독하는 것이다.
어찌됐든 무거운 진공관 앰프를 어깨에 가로질러 메고 있는 DJ 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부대변인은 말 그대로 ‘몸으로 때우는’ 고달픈 당직자이다. 하지만 짧게 머리를 깎고, 앞을 주시하는 DJ의 표정이 매우 진지하다.
사진속 DJ의 노력 덕분인지 몰라도 며칠후 4·19 학생혁명이 일어나고 결국 자유당 정권은 몰락했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서 고생하던 DJ는 선전부장, 즉 민주당 대변인이 된다. 무거운 진공관 엠프를 메고 다니던 위치에서 가벼운 마이크만 쥐고 다니는 신분으로 격상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보궐선거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와 DJ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고향(부산과 목포)을 떠나 연고가 없는 지역구(안 후보는 노원구, DJ는 강원 인제)에서 금배지에 도전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보궐선거를 통해 본격 정치에 입문한 공통점이 있다. DJ도 1961년 5월14일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첫금배지를 달았다.(비록 4수 끝에 당선된 것이긴 하지만)
또 정치 입문전 안 후보도 벤처 사장을 했지만 DJ도 해운회사 사장을 지냈다. 아마 1950년대 해운회사는 지금의 IT에 견줄 수 있는 벤처기업 아니었을까?
요즘 안 후보가 허름한 점버에 일회용 우의를 쓰고 시장통을 다니는 모습과 53년전 DJ가 무거운 진공관 엠프를 메고 고생하는 사진속 모습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흐른다. 그 공통점은 ‘정치는 바닥에서 민심을 얻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5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정치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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