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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깔끔한 양복 YS 옆 허름한 군복은?

소인배 정치인과 큰 정치인의 차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정치가 실종됐다는 말이 많다. 정치가 실종된 이유는 야당도 문제이지만 여당이 더 문제다. 새누리당에서는 ‘정치는 없고 통치만 남았다’ ‘상명하복 정당’ ‘식물·투명정당’ 등의 자조적인 말이 넘쳐난다.


정치가 실종된 이유는 무엇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납짝 엎드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박 후보에게 싫은 소리를 했던 인사들이 새정부 인사에서 줄줄이 물을 먹는 것을 본 정치인들로선 일면 이해가 간다. 


최근에는 기류가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박 정부의 고위층 인사에 계속 문제점이 드러나자 청와대 사과론, 비서실장 사퇴론, 새누리당 연대책임론 등이 나오고 있다. 또 오는 5월 원내지도부 경선에서 청와대에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물론 원론적인 말을 하기는 쉽다. 더구나 바깥을 향해 욕하기는 쉬워도 내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용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당신이 그 역할을 하라면 더욱 망설여진다. 하지만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할 말’을 해야 한다. 소인배 정치인과 큰 정치인의 차이가 그것이다.





사진은 1974년 12월 9일 서울구치소에서 출감하는 정치인 세명을 환영하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모습이다. 사진 왼쪽부터 허름한 점버를 입은 조연하 의원, 군인이 입는 야전점버를 입고 마치 굴뚝청소부 차림의 김상현 의원, 그리고 깔끔한 양복을 입은 YS 옆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조윤형 의원이다.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1972년 11월 21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투옥, 이날 형집행정지로 풀려나는 순간이다. 아무리 그래도 현직 국회의원인데, 출감하는 세 사람의 남루한 차림을 보면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김상현 의원의 다음과 같은 법정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미국 존슨 대통령은 애완용 강아지 귀를 잡아 올렸다가 동물학대라는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김상현이가 귀여워 발가벗겨 거꾸로 매달았는지 모르지만 그래,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백악관 강아지만도 못하단 말입니까?


물론 당시에도 국회의원에게는 면책특권, 불체포 특권이 있었다. 하지만 보안사 군인이 현직 국회의원을 잡아 발가벗겨 팰 정도로 당시 정치는 없었다.


공교롭게 사진속의 세 사람은 할말 하는 정치인이었다. 특히 세 정치인은 상대(정부·여당) 뿐 아니라 내부(야당)를 향해서도 입바른 소리를 했다. 당시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는 야권에서 절대 권력이었다. 그 양김씨의 의중을 거스리면 금배지는 커녕, 정치판에 얼씬도 못했다. 


그러나 세 정치인은 달랐다. 맨 왼쪽 조연하 의원은 1985년 국회부의장 선거에서 양김씨가 부의장을 내정한 것에 반기를 들고, 부의장에 독자 출마해 당선되는 이른바 ‘조연하 부의장 파동’의 주인공이다. 양김씨에게 미움을 산 그는 결국 당에서 제명됐다. 맨 오른쪽 조윤형 의원은 ‘미스터 쓴소리’로 유명한 조순형 의원의 친형이다. 물론 부친은 야당의 거목 조병옥 박사이다. 그도 1985년 민한당 총재까지 올랐으나, 당을 해산하려는 양김씨에게 끝까지 대항하다 결국 무릎을 꿇었다. ‘잔인한’ DJ는 그를 자신의 비서실장에 임명, 총재에서 총재비서실장이 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김상현 의원은 1997년 국민회의 대통령 경선에서 DJ와 맞붙었다. 그는 1980년대초 YS와 대등한 입장에서 민추협 결정을 주도하는 등 ‘준 DJ 수준’에 올랐다. 사실 그는 마지막까지 DJ와 맞섰던 몇 안되는 정치인이었다.


국회부의장, 야당 총재, 6선의 중진. 사진속의 세 야당 정치인은 독재권력을 향해 바른 소리를 했지만, 내부를 행해서도 당당히 쓴 소리를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당당하게 야당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정치가 실종됐다는 요즘, 상대를 향한 비난보다 내부를 향한 쓴소리가 더 절실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