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습니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이 수십만 명에 이르고 많은 언론은 그의 삶과 교훈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는 종교인이지만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 기도가 본격화하면서 언론탄압이 극심하자 김 추기경은 과감하게 언론인으로 변신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창조>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발행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잡지를 유지했습니다. 김 발행인은 창간 1년이 지난 1972년 9월호 권두언에 ‘우리는 이 겨레와 함께 있다’는 제목으로 발행인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이 사회와 나라의 구석구석까지 만연해 가는 비인간적 사회악이 존재하는 한, 그 때문에 우는 사람이 있고 굶주리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한, 한 사람이라도 구제할 수 있다면, 또한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 이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시작한 이 일을 더욱 힘차게 이끌어 나가 보자는 것이 우리의 소신이다.”
어떻습니까. 경영의 어려움에도 끝까지 언론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는 김수환 발행인의 굳은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까. 비록 한 세대가 훌쩍 넘는 37년 전의 글이지만 지금 읽어도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빈부(貧富), 매판(賣販), 민주부재(民主不在) 문제다’라는 창간 특집과 천관우 선생의 ‘민족통일을 위한 나의 제언’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천 선생은 이 글에서 “통일은 기필코 이뤄져야 한다. 민족이 사멸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편집장인 저는 지금 이 잡지를 보면서 시대를 읽는 김수환 발행인의 놀라운 통찰력과 기획력, 그리고 용기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추기경 김수환이 아니라 언론계 대선배로 김수환 발행인을 기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큰 사람은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입니다. 37년 전 쓴 글이나 행동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거나 공감을 주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요즘에는 몇 년 전 아니 바로 며칠 전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번복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도자인 양 행세하고 다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번 호 Weekly경향은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다뤘습니다. 최근 자신의 연구소를 열고,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독대하고, 평소와 다른 발언을 하는 등 그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큰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을 보듯이 그 사람들이 보통사람입니까. 시골 군의원도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하는데 대통령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이번 호 Weekly경향에서 정치인 정몽준이라는 사람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깜냥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물론 아무리 해도 언론인 김수환 발행인에 비하면 족탈불급이겠지만요.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9/03/03 (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