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이니까 아마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일 겁니다. 그때 기자는 이명박 의원을 단독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의원은 젊은 시절, 용산 이태원 시장에서 쓰레기 리어커를 끌며 공부했던 학창시절 얘기를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야채 노점상을 했는데 남의 가게 앞에서 노점을 하다 쫓겨난 적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기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하던 이 의원의 눈가에 맺힌 눈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생담을 얘기하면서 그 시절이 한스러운 듯 눈가에 살짝 눈물을 보였습니다. 기자는 그때 ‘천하의 이명박도 눈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40년이 지난 2009년 청년 이명박이 리어커를 끌던 바로 그 자리 용산에서 재개발에 반대하는 세입자와 철거민 단체회원 5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경찰도 희생됐습니다.
쓰레기 리어커를 끌던 청년 이명박이 가장 미워한 사람은 자신의 가게 앞에서 노점을 한다고 어머니를 내쫓던 가게 주인이었다고 합니다. 40년이 지났지만 세상의 기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때처럼 노점상도 있고, 세입자도 있고, 상가 주인도 있습니다. 이번에 재개발로 쫓겨나는 세입자와 40년 전 남의 가게 앞에서 노점상을 하다 쫓겨난 이 대통령의 어머니는 같은 처지가 아닐까요. 이번에 불에 타 죽은 가장의 아들은 이 대통령이 그랬듯이 누구를 가장 미워할까요.
하지만 40년이 지나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때 쓰레기 리어커를 끌며 어머니를 쫓아내는 가게 주인을 미워하던 그 청년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입니다. 기자는 이번 용산 참사를 보면서 10여 년 전 봤던 이명박 의원의 눈물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이럴 때 누구보다 그 문제를 잘 이해하고 해결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수습 과정을 보면 실망 그 자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민심 수습도 안 되고, 위기만 커져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위기 경보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정치·경제는 물론 외교, 통일, 사회 전반에 경보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대한민국 전체가 위기입니다. 대통령실장이 스스로 3월 위기를 공공연히 언급합니다. 2월 국회는 다시 한 번 날치기로 소용돌이 칠 것이고, 3월 경제위기, 실업 문제가 더해지며 최악의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겁니다.
사태는 예견되는데 문제는 정부의 대응방식입니다. 정부는 이 위기를 국민과 소통하기보다 일방적 홍보, 돌격대식 친위 인사, 반대자는 격리하는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국정 운영 방식이 성공한 전례는 없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파국으로 몰아갈 뿐입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의 위기는 바로 10여 년 전 기자에게 보여줬던 눈가에 맺힌 눈물로 풀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진솔한 눈물이 그래서 기다려집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9/02/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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