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럿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정치적 민주화라고 할 수 있지요. 정치제도가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치고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나라는 없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정치적 민주화를 가늠하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는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느냐라고 합니다. 그다음은 바로 인권, 국민의 기본권이 지켜지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민주화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더라고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사회를 선진국으로 분류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기본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도 여럿입니다. 행복추구권, 노동권, 환경권 등등.
기자는 우리나라가 국민의 이런 기본권은 어느 정도 국제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그런 생각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안전권이라고 할까요. 헌법 제34조 6항을 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태풍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화재나 사고와 같은 인위적 재난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바로 이 안전에 대한 권리·의무가 매우 엄격합니다. 물건을 하나 만들 때, 건물을 하나 지을 때 철저하게 안전을 따집니다. 유럽에 가면 고풍스러운 건물에 매달려 있는 흉물스러운 철제 비상구를 자주 보게 됩니다. 관광 수입으로 먹고살면서 이런 흉물이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지만 미관보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비상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운전 중 소방차나 구급차의 진행을 방해했다가는 평생 운전면허가 취소됩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안전의식은 초보 수준입니다. 이른바 고시원이라는 쪽방에 불이 나 여러 명이 죽는 일이 늘상 일어나지만 최소한의 비상구도 확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을 만들어도 상인이 집단으로 반발해 법 적용을 유예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 국민은 안전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떨다가 사태가 지나면 그뿐입니다. 소방차를 사라고 중앙정부가 돈을 주면 그 돈으로 쓸데없는 축제를 하는 것이 자치단체장입니다. 안전에 대한 정부 예산도 쥐꼬리만 합니다. 솔직이 우리는 안전에 대해선 한참 후진국입니다.
그 속에서 애꿎은 우리 소방관만 죽거나 다쳐 나가고 있습니다.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58.8세에 불과합니다. 이번 주 Weekly경향에서는 후진적 안전문화와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그나마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의 얘기를 했습니다. 11월 첫주에는 소방의 날이 있기도 합니다. 특히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도 …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라는 소방관의 기도는 언제 다시 읽어도 감동스럽습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11/11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