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탑'에 해당되는 글 18건

  1. "3권분립이 기가막혀"
  2. 첫 단추 잘못 꿴 소방방재청
  3. 우리 시대의 마키아벨리
  4. 가장 숭고한 행정서비스
  5.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6.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7. '리틀 盧'와 '김두관'
  8. 지하철은 안전하다
  9. 삼고초려의 본뜻
  10. 沒역사적 시대구분

"3권분립이 기가막혀"


요즘 중학교 사회책에 나올 만한 3권분립 원칙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노무현 대통령이 국회가 의결한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거대 야당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다. 국회는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발끈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은 3권분립 원칙에 의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맞서고 있다.

아예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이라도 요구하면 명확히 가려지겠지만 지금 행정부와 국회는 '정치적' 대결을 벌이고 있어 쉽게, 또 명확하게 판가름나지 않을 전망이다.

사실 요즘 국회의 권능은 가히 무소불위에 가까울 정도다.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을 갈아치운 데 이어 감사원장도 국회 임명동의안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대통령은 개혁입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각당 정책위의장을 청와대에 모셔 사정하고, 각 부처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은 여의도로 달려가 의원들에게 읍소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국회 모습은 한때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18세기 영국 의회를 연상시킬 정도다.

지금 모습을 보면 바로 1년 전만 해도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이다. 그만큼 '법대로만 하면'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이 크지 않고 나름대로 3권분립 원칙이 잘 반영돼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국무위원 해임건의나 감사원장 임명동의는 헌법에 명시된 국회 고유의 대(對)행정부 견제기능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최근 국회를 보면 행정부의 영역까지 넘보는 법을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몽테스키외가 이것을 봤다면 기가 막혀 말문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전 충남 계룡시가 생겨 시장.시의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계룡시엔 축하할 일이지만 여기에는 사실 3권분립 원칙상 적잖은 문제점이 있다.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인구가 5만명 이상이어야 시를 설치할 수 있는데 특례를 둔 것이다. 군으로 승격한 충북 증평군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주는 데도 의원입법으로 군으로 승격시켰다. 이런 자치단체는 인근 1개 동사무소도 안되는 인구로 자치단체장, 시.군의회를 두고 있다.

문제는 이런 행정구역을 조정하는 것이 입법부의 권한이냐, 행정부의 권한이냐는 것이다. 모든 행정행위는 법에 근거를 두지만 전국적 균형과 일관성이 요구되는 행정행위는 행정부 몫이다. 만약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읍.면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군으로 만들고, 군을 시로 만든다면 행정은 일관성을 잃고 국민은 혼란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지금 국회에는 행정부의 권한인 정부조직이나 공무원 직제까지 늘리는 법안이 의원입법이라는 이름으로 계류중인 것이 많다.

이번에 문제가 된 특검법도 마찬가지다. 특검제라는 것이 오욕의 검찰 역사로 인해 도입된 불가피한 산물이긴 하지만 수사 및 공소제기 권한은 분명 검찰권, 즉 행정부 권한이다. 더구나 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을 미진할 것이라 예단하고 국회가 특검법을 남발한다면 사법제도는 근간이 흔들린다. 특검법에 수사대상과 시기를 최소화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748년 3권분립 이론을 체계화한 몽테스키외는 "법을 만들고, 공적 결정을 집행하고, 개인간 분쟁사태를 판단하는 세가지 권력을 한곳에서 행사한다면 모든 사람은 자유를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식하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에게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다시 일독할 것을 권한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3권분립이 기가막혀"  (0) 2003.11.29
첫 단추 잘못 꿴 소방방재청  (0) 2003.11.01
우리 시대의 마키아벨리  (0) 2003.09.27
가장 숭고한 행정서비스  (0) 2003.08.02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0) 2003.06.14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재난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한 소방방재청이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다. 지난 2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대통령은 재난관리 시스템 정비를 국정운영의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국회도 재난대책을 마련하라고 대정부 결의안까지 냈으며, 언론도 재난관리 시스템의 후진성을 지적하며 부산을 떨었다.그러나 정작 만들어 놓은 재난관리 시스템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언론이야 원래 냄비기질이 있다지만 정부가 만든 소방방재청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 실망스럽다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 정도 역량을 가진 행정자치부가 앞으로 이어질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지에 회의까지 든다.

그 이유는 소방방재청을 만들면서 왜 재난관리 시스템을 일원화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 문제는 사라지고 조직 이기주의와 행정편의주의만 난무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작은 왜 우리나라는 지하철 화재로 200여명이 숨지고 태풍이 한 번 지나가면 100여명이 물에 휩쓸려가는 재해 후진국인가에서 찾아야 한다. 얼마전 태풍 매미가 지나가면서 경남 마산의 한 노래방에 해일이 덮쳐 8명이 숨졌다. 그런데 지하 3층까지 찬 물을 소방차가 빼내는 데 무려 23시간이나 걸렸다. 침수된 건물주변에서 가족들이 "우리나라는 고성능 양수기 한 대 없는 후진국이냐"고 절규하는 데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재난대응 수준이고 현실이다. 왜 고성능 양수기는 도청 창고에 놔두고, 원래 기능과 무관한 소방차가 물을 빼야 했는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 재난관리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진정한 취지였다.

자연재해를 다루는 자연재해대책법과 인위적 재난을 규정한 재난관리법을 통합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모든 재난이나 재해는 예방-대비-대응-복구 단계를 거친다. 그중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대응단계는 자연재해나 인위적 재난이 같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24시간 대응체계를 갖춘 조직을 중심으로 재난관리를 일원화하도록 요구했다. 한마디로 위기시 즉각 가동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구할 날쌘 표범을 만들라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관료들은 재난관리 체계를 날쌘 표범은커녕, 코끼리도 아니고 하마도 아닌 이상한 조직으로 만들어놨다. 자연재해와 인위적 재난의 예방과 복구 시스템은 전혀 다른 차원인 데도 이를 모두 맡겠다며 업무만 불려놨다. 게다가 신설청은 원자력은 물론 금융대란 같은 새로운 위기까지 망라하고 있다. 지금 행자부에, 신설청에 이런 위기를 다룰 능력이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재난관리 체계는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서류만 양산하는 모양을 만들어놨다. 나중에는 장관까지 가세해 신설청의 명칭을 놓고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날쌘 표범이 아닌 코끼리 비슷한 하마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코끼리냐, 하마냐 하는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논란을 벌인 것이다.

지금 소방방재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보니 본질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 일원화하라는 현장 지휘체계는 장관-청장으로 오히려 이원화되게 개악했다. 담당자들도 지금의 재난관리 체계는 문제가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간이 없으니 그대로 가자고 하고 있다. 이 기획단에 참여했다가 공무원에게 휘둘리던 한 민간 전문가는 "대구 지하철 화재로 숨진 수백명의 영혼에 더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며 중도에 사퇴했다.

허성관 행자부장관은 재임중 재난관리 체계를 확실히 한 장관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매우 바람직한 이야기다. 표시도 나지 않으면서 골치만 아픈 일을 챙기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장관이 진정으로 그러고 싶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사고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고 산 사람은 계속 살리는 길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3권분립이 기가막혀"  (0) 2003.11.29
첫 단추 잘못 꿴 소방방재청  (0) 2003.11.01
우리 시대의 마키아벨리  (0) 2003.09.27
가장 숭고한 행정서비스  (0) 2003.08.02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0) 2003.06.14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흔히 '마키아벨리' 혹은 '마키아벨리즘' 하면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정치를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마키아벨리처럼 철저하게 '악의 화신'으로 전락한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그는 수백년간 모든 악의 근원이며 음흉한 정치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로마교황청은 마키아벨리의 모든 저서를 금서로 지정했을 정도다.요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일부계층의 행태도 이와 유사한 느낌이다. 야당과 일부 언론, 극우단체는 노대통령을 모든 국가위기의 원인 제공자이며 혼란의 화신으로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노정권이 보여주는 국정운영 행태는 과거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라는 권력의 핵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통제력에 익숙한 사람에게 지금은 국정난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동안 학맥과 인맥으로 엮어 알짜 보직을 나눠 챙기던 관료에게 지금의 파격 인사는 졸속 인사로 보일 뿐이다. 뒤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특혜를 얻는 데 익숙한 기업은 현 정부가 '미숙아'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충격에 위기감까지 느낄 것이다. 검찰이 여당 대표를 잡아 넣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는 정치인에게는 심각한 충격일 것이다. 부정확한 사실로 시대적 공론을 모으기보다 특정 이익을 추구하던 일부 언론의 입장에선 도전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재발하건 말건 남북긴장으로 이득을 보던 사람들에게 주변은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보일 뿐이다.

이런 사람의 눈에 노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모든 국가위기의 원인 제공자이며 혼란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중세교회가 마키아벨리를 모든 악의 화신으로 규정한 것과 일면 비슷하다.

중세교회가 마키아벨리를 그토록 철저하게 짓밟은 이유는 간단했다. 마키아벨리는 중세 암흑기에서 고대 로마의 찬란한 영광을 르네상스라는 시대조류를 통해 이탈리아에 재건하려는 원대한 이상을 가졌다. 그 방법으로 권력은 곧 교회라는 당시의 '진리 아닌 진리'에 도전한 것이다.

지금 노정권은 수십년간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진리 아닌 진리'에 도전하고 있다. 그 진리 아닌 진리는 무소불위의 청와대, 살인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킨 국가정보기관, 정치권력의 시녀 소리를 들었던 검찰, 남북 대결국면으로 이득을 보는 특정세력, 기업의 경쟁력 확대보다 정치자금을 통한 특혜에 관심이 많은 기업, 실력보다 학벌이면 출세가 보장되는 사회 등등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은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이런 고질적인 구질서를 혁파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구질서를 혁파하겠다고 달려든 정치인은 많지 않았다. 중세 교회에 도전했다가 수백년간 악인으로 낙인찍힌 마키아벨리처럼 구질서의 집요한 저항과 역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도 "아직까지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던 길을 택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의 이 고백은 불행히 적중했지만 그의 시대정신은 궁극적으로 옳았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지금 '현대 정치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행스러운 일은 노정권은 마키아벨리보다 쉬운 싸움을 한다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힘을 키우는 방법으로 구질서와 싸웠다면 노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방법으로 구질서와 맞서기 때문이다. 내것을 버리겠다는 데에는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노대통령은 이미 '버리는 승부'에 달관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래서 노대통령을 가리켜 '바보 노무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이 시대를 건 대결에서 바보가 아닌 철저히 마키아벨리적이어야 한다. 상대는 여전히 강하고 또 집요하다. 게다가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권력자를 앞으로 다시 만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3권분립이 기가막혀"  (0) 2003.11.29
첫 단추 잘못 꿴 소방방재청  (0) 2003.11.01
우리 시대의 마키아벨리  (0) 2003.09.27
가장 숭고한 행정서비스  (0) 2003.08.02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0) 2003.06.14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그 숭고한 일이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면 그것은 숭고함을 넘어 진한 감동까지 준다.한 철도원이 위험에 처한 어린아이를 구하고 두 다리를 잃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고 하지만 그는 영원히 불구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국민은 공무원인 그의 희생에 감동을 느끼며 그동안 낸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그를 위로하고 각계의 성원이 몰려들고 있다.

또 한편의 철도원들이 있다. 58명은 파면됐고, 21명이 해임되는 등 133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8,648명은 징계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농성중인 이들의 징계사유는 불법파업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격려를 받은 철도원과 징계를 받은 철도원. 같은 시기에 같은 철도원에 대한 두 장면은 180도 다른 차원의 얘기인가. 두 장면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했을 때 언론을 비롯한 국민 대부분은 공무원이 국민의 발, 산업의 동맥을 막았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파업에 돌입하면서 '열차 안전운행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우리 자신의 안전에 대한 호소였지만 그 누구도 이를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또 어린아이를 구한 철도원의 경우 어린아이가 어떻게 위험한 철길에서 혼자 놀 수 있었는지, 사고 역에 안전장치가 왜 없었는지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두 장면은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지만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정작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는 공무원은 대접을 못 받는다는 사실이다. 징계를 받은 한 역무원은 자신의 근무환경에 대해 이렇게 절규했다.

"내게 죄가 있다면 1년에 30여명의 동료들, 그 서러운 살점을 철길에 묻은 죄, 밤을 낮으로 삼아 철길에서 밤을 새운 죄, 명절날 청장 하사품으로 받은 라면 한개를 생으로 깨물어 먹은 죄입니다. 그것이 죄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어린아이를 구한 철도원이나 징계를 받은 철도원이나 공무원으로서 근무환경은 비슷했다. 어린아이를 구한 철도원도 한때 노조원이었다. 사실 공무원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넥타이를 맨 사람이 대우받고, 작업복을 입은 공무원은 멸시당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공무원은 가장 유능한 대국민 서비스맨이 돼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하지만 넥타이를 맨 지체높은 공무원들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2만5천V의 전차선(電車線)에 오르는 철도원이나, 폭우를 맞으며 제방 순회로 꼬박 밤을 지새는 재해담당 공무원, 불길이 치솟는 지하 호프집에 몸을 던지는 소방관을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들은 매년 수십명씩 철길에서, 불속에서 죽거나 다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험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뛰는 것만큼 숭고한 행정서비스는 없다. 그 숭고한 행정서비스에 대한 댓가는 평소에도 그들을 진정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 역무원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이다. 다음은 지체높은 공무원이 한번 읽어야 할 글이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아무리 강렬한 화염속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너무 늦기전에/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당신의 귀를 주시어/가냘픈 구조의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그들의 고통까지도/나의 품안에 안을 수 있게 하소서/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신의 은총으로/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소방관의 기도) 


원희복
/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단추 잘못 꿴 소방방재청  (0) 2003.11.01
우리 시대의 마키아벨리  (0) 2003.09.27
가장 숭고한 행정서비스  (0) 2003.08.02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0) 2003.06.14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리틀 盧'와 '김두관'  (0) 2003.04.03

사회변동기에는 각종 단체의 집단적 요구가 크게 늘어난다. 특히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로 옮아갈 때에는 참여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억눌렸던 욕구와 주장이 일시에 분출되기 때문이다.이들의 참여요구를 수용할 정당이나 국회, 행정같은 제도화된 시스템이 불충분하면 위기 증후군이 나타난다. 이를 가리켜 정치학에서는 '참여의 위기'라고 부른다.

지금 참여정부는 각종 시민.사회.이익단체의 폭발적인 참여요구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파업,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싼 환경.사회단체의 요구,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전교조의 반발이 계속되지만 이를 수용할 관료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정당은 지리멸렬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바로 참여의 위기를 맞는 상황이다.

더구나 참여를 요구하는 측이 바로 참여정부를 태생시킨 저변세력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곤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참여의 위기가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한번은 거쳐야 할 홍역이라면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정권 담당자의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참여정부는 청와대에 국민참여수석이라는 직제까지 만들었지만 분출하는 참여의 욕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참여정부는 참여의 욕구를 조정할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욕구가 제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아직 정교하지 못하다. 아직 정책결정과정도 불투명하고 정보공개법, 행정절차법도 미흡하다.

어느정도 참여욕구의 자제도 필요하다.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는 정책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새만금방조제나 경부고속철도 등이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시민.사회단체가 완공단계에 이른 사업의 중단을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참여의 욕구가 과도하면 엉뚱한 빌미를 줘 진짜 위기를 제공한다. 바로 공무원노조가 좋은 사례다. 공무원노조는 국제적 기준이나 권고로 볼 때 허용이 불가피했다. 정부가 일부의 반대에도 국제 수준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공무원노조를 허용키로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공무원노조는 명실상부한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까지 요구하며 파업찬반투표를 강행했다. 공무원의 임금은 곧 예산이고 이것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에서 공무원노조의 임금협상은 세계 어디나 상징적 의미에 그치는 것이다.

결국 공무원노조의 과다한 참여욕구는 파업 찬반투표 부결로 나타났다. 이것은 공무원노조 내부 문제만 드러낸 것이 아니다. 당초 공무원노조에 대해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은 온건론자였다. 그러나 '과거 코드'에 익숙한 측은 강경대응을 주장했고 투표를 힘으로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공무원노조의 과도한 참여욕구는 정부내에서 토론보다 힘을 숭배하는 강경파의 득세를 도와준 꼴이 됐다.

지금처럼 참여욕구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판단도 중요하다. 지금 참여의 위기는 토론에 협상에 양보에 익숙치 않은 우리의 문화 수준도 한몫하고 있다. 특히 대중은 겉으로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속으로 "정부는 일사분란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심성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한 단체가 대통령과 총리에게 엄격하게 국정을 운영하라고 지휘봉과 회초리를 보냈다고 한다.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민은 지휘봉 끝이 가르키는 곳으로 끌려가지도 회초리로 윽박한다고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내에서는 "밀리지 않겠다, 강경 대응하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려스런 대목이다. 이것은 분출하는 요구를 과거방식대로 해결하겠다는 뜻이고 토론과 참여의 국정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참여정부의 초심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100여일만에 초심을 포기하기엔 너무 빠르다. wonhb@kyunghyang.com
원희복 / 지방차지부 차장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시대의 마키아벨리  (0) 2003.09.27
가장 숭고한 행정서비스  (0) 2003.08.02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0) 2003.06.14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리틀 盧'와 '김두관'  (0) 2003.04.03
지하철은 안전하다  (0) 2003.02.27

새 밀레니엄으로 한창 희망이 부풀어 있을 때인 2000년 한국행정학회가 주최한 동계세미나 주제는 의외로 '행정학의 위기'였다. 그때 한 교수는 "행정학은 정부와 기업 모두에서 외면받고 있다"고 토로했다.2001년 7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행정학회(IIAS) 제25차 총회에 참가한 공무원과 행정학자들은 "전세계적으로 공무원제도는 중요한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며 "일방적인 행정비용 절감이 행정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지금까지 정부를 지탱했던 행정학과 공무원제도는 이제 근본적인 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무원 스스로 초래한 요인이 많다. 특히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행정시스템, 변화를 거부하고 경쟁을 회피하려는 공무원, 전문성을 키우지 않고 몸집만 불리려는 조직 생리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행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직을 민간에 개방하거나, 아예 민간인을 기관장으로 위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개방된 공직에 임명된 인사의 80% 이상이 역시 공무원 출신으로 외형만 민간에 개방됐을 뿐 실제는 과거와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다.

또 공직에 전문가가 없다며 거액의 연봉을 주며 민간 전문가를 모셔오는 것도 사실은 문제다. 현재 공무원 중에는 국민의 세금과 시간을 들여 전문적인 능력을 키운 사람이 많다. 문제는 이 전문직 공무원이 승진할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2급 이상 고위직 263개중 전문기술직 공무원이 갈 수 있는 직위는 19개에 불과하다. 가장 전문성이 요구되는 건설교통.과학기술부 등 24개 과학기술 및 경제관련 부처 공무원 정원의 75%가 일반행정직이고, 전문기술직은 25%밖에 안된다. 심지어 전문기술직을 임명하도록 돼 있는 복수직렬도 대부분 일반행정직이 차고 앉아 있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 전문가로 키워만 놓고 자리는 만들지 않으니 전문직은 공직을 포기하고 민간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중에 인재가 없다며 더 많은 예산을 들여 민간전문가를 모셔오는 바보같은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예산낭비는 물론, 바로 행정 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다.

정부는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계기로 재난총괄부서를 만들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체계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요청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반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전문직은 소외시키고 차관급인 청장 자리를 통해 일반직 공무원의 인사숨통을 트느냐에 쏠려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나자 내무부(지금의 행정자치부)에 재난관리국을 만들어 일반행정 공무원이 서류상으로 재난을 '관리'만 하다 없앤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것이다.

화재가 나든 홍수가 나든 불시에 닥치는 재난과 재해에 대한 대처는 숙련된 전문가의 신속하고 정확한 초기판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른 행정부서와 달리 서류상으로 오고갈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다른 행정조직은 몰라도 재난총괄부서는 철저히 현장 전문가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옳다. 실제 불이 나면 소방이 응급구조에서 원인분석과 개선책까지 일관되게 처리하고, 태풍이 오면 역시 재해 전문가가 수습에서 재발방지책까지 마련하면 된다. 그런 전문적 능력을 가진 인적자원은 지금 행자부 소방국이나 방재국에 상당히 많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4월21일 과학기술의 날을 맞아 공직에 기술직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다. 과거 그 어느 대통령도 기술입국이니, 전문직 우대를 외치지 않은 적이 없다. 문제는 실행이다. 재난총괄부서 초대 청장 인사는 노대통령이 과거와 얼마나 다른 대통령인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장 숭고한 행정서비스  (0) 2003.08.02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0) 2003.06.14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리틀 盧'와 '김두관'  (0) 2003.04.03
지하철은 안전하다  (0) 2003.02.27
삼고초려의 본뜻  (0) 2003.01.23

'리틀 盧'와 '김두관'

리틀 노(盧). 스타일이나 생각, 요즘 즐겨쓰는 표현으로 코드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같다고 해서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에 붙여진 별명이다. 김장관은 44세에 행정의 책임장관으로 발탁돼 언론의 화려한 주목을 받았다. 김장관의 행보는 노대통령 국정운영의 작은 척도라 할 정도로 상징성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실제 김장관과 노대통령을 비교적 가까이 지켜본 기자가 볼 때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2000년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청와대 업무보고를 앞두고 보고내용을 기자에게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당시 노장관은 TV카메라용으로 30초간만 별도 멘트를 해달라는 방송기자의 요구에 응하면서 '다시'를 연발했다. 웬만하면 넘어가도 될 것을 "발음이 꼬였다" "시선이 밑으로 갔다"며 무려 8번이나 재촬영을 했다. 당시 기자는 "참 집요한 장관"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점에서 김장관도 비슷하다. 김장관은 얼마전 공무원노조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카메라 기자가 보이자 비좁은 자리를 비키며 "사진기자가 먼저 들어가 사진을 찍으라"고 '친절하게' 안내까지 했다. 그리고 사진기자의 요구에 몇번씩 한 악수를 또 연출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김장관은 지난 1일 노대통령과 비슷한 장면을 연출했다. 김장관은 이날 단행한 1급 인사의 배경 설명을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통보했다. 노대통령이 조각(組閣)때 국무위원을 배석시키고 인사 배경을 설명한 바로 그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행자부는 정부부처 중 처음으로 1급 공무원 11명의 일괄사표를 받은 부처였고, 공무원 인사제도 주무부처라는 점에서, 또 장관이 인사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전례없는 일이어서 당연히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김장관의 이날 '이벤트'는 겉으로 보기에 노대통령의 그것과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전혀 딴판이었다. 김장관은 부서내 인기투표 정도의 설문조사서를 다면평가 자료라며 "개혁.전문.청렴성을 바탕으로 인사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여론조사식 인사의 문제점에 대해 김장관은 별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 인사문제를 총괄하는 국무위원이라는 진지함도 없고 기자들이 꼬치꼬치 따지자 "예외가 없는 원칙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본질을 비켜나갔다.

더 큰 문제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다. 행자부 1급 공무원 전원이 사표를 낸 것은 중요한 뉴스거리였다. 사표를 낸 사람 모두 "검사라면 나가 변호사라도 하겠지만 아무 것도 없는 우리가 왜 스스로 사표를 내겠나, 위에서 내라고 해서 냈다"고 말했다. 일부 인사는 "왜 내가 사표를 내야 하냐"고 거칠게 항의까지 했다.

그런데도 김장관은 1급 공무원 일괄사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끝까지 "후진을 위해 용퇴한 것일 뿐 일괄사표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정부가 홍보할 필요가 있는 것만 알리고 그렇지 않은 사실은 확인조차 해주지 않는 태도는 브리핑제도로 전환을 앞둔 언론과의 관계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더구나 김장관은 지금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미는 사람과 행자부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인사 라인도 아닌 청와대 누군가가 '압력'을 넣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김장관은 인사를 마무리짓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노대통령은 해양부 장관 시절 "후임장관은 내가 지명하고 나가겠다"고 인사권자에게 누가 될 법한 '호기'까지 보였지만 젊은 김장관은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44세의 패기있는 장관. 국민은 김장관을 통해 이것을 기대했다. 김장관은 자신의 행보가 참여정부 전체 평가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야말로 김장관 개인의 입장에서 '리틀 노'를 넘어 진정한 '김두관' 자신이 되는 길일 것이다. wonhb@kyunghyang.com
원희복 / 지방자치부 차장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여정부 '참여의 위기'  (0) 2003.06.14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리틀 盧'와 '김두관'  (0) 2003.04.03
지하철은 안전하다  (0) 2003.02.27
삼고초려의 본뜻  (0) 2003.01.23
沒역사적 시대구분  (0) 2002.12.19

지하철은 안전하다

지난주 기자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대구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지하철공사, 앞뒤 못가리는 사고대책본부, 한 건 하려는 조급한 경찰, 슬픔을 속으로 감내하지 못하는 유족, 그리고 수백명의 기자가 뒤엉켜 있었다.이들은 마치 토머스 홉스가 말한 그 자연상태속에서 '만인(萬人)의 죄와 만인의 결백'을 서로 입증하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처절하게 투쟁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지하철은 천하에 몹쓸 ×'이라는 결론과 관련자 10여명을 사법처리하는 '전리품'에 만족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또 일상을 맞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지금까지 해 온 일은 한풀이식 마녀사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번 사고의 대가는 냉정하고도 정교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진정 우리 지하철은 천하에 몹쓸 ×이고 책임은 사법처리된 10여명에게만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지만 기자의 판단은 '절대 아니다'이다. 인간이 발명한 대중교통수단 중 철도나 지하철만큼 안전한 것은 아직 없다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사실 내장재 문제를 제외한 우리 지하철의 안전 시스템 수준은 외국과 비교해 높으면 높았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설치된 지 비교적 오래된 서울지하철 1, 2호선을 제외하고 우리 지하철은 컴퓨터에 의한 완전 자동방식(ATC 방식)으로 제어되는 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관사가 없어도 운행이 가능한 이 시스템은 유사시를 대비해 중앙사령실과 역, 전동차간 유.무선 비상연락장치가 거의 수준급으로 갖춰져 있다.

만약 문제의 1080호 기관사가 없었다면 오히려 피해는 더 줄었을지 모른다. 대구지하철은 기관사가 없어도 전동차가 자동으로 제어되고, 운전사령실에서 직접 승객에게 무선방송을 통해 대피를 지시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지하철 역사가 짧기 때문에 첨단시설이 설치된 덕분이다.

문제는 이런 첨단장치가 막상 위기에 닥쳤을 경우 얼마나 활용됐는가 하는 소프트웨어,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사전 경고나, 긴급 통신 등 보안시스템이 훌륭해도 최종 판단과 대응은 사람이 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에서 1차적 책임은 화재가 난 것을 알면서도 중앙로역 진입을 허용하고 긴급지시를 태만히 한 중앙사령실, 현장에서 신속한 판단을 하지 못한 사고 기관사에게 있는 것은 물론이다. 또 첨단시설을 과신하고 경영 합리화 등을 이유로 인력을 줄인 지하철공사의 결정이 옳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여기까지만 아니다. 지하철은 특성상 한 전동차가 서면 줄줄이 다음 전동차 운행도 지장을 받는다. 당연히 전체 시스템 운영에 문제가 생긴다. 만약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불이 사소한 것이었고, 기관사와 사령실은 안전을 고려해 전동차 운행을 중단했으면 '사소한 불장난에 멈춰버린 시민의 발'이라는 질책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지하철 노조가 준법투쟁에 돌입해 지하철이 늦어지면 승객은 물론 언론까지 나서 '시민의 발을 묶는다'고 비난하는 그런 문화다. 아니 비난을 넘어 관계당국은 사법처리까지 거론하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인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 준법운행한다는 것을 처벌하는 정신나간 나라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이번 사고의 진정한 범인은 안전 조치로 인해 늦어지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하는 조급성과, 이런 조치를 규제나 불편으로만 생각하는 우리 모두의 사고방식과 생활문화에 있다. 우리 지하철 시스템은 안전하다. 이번 사고를 통해 얻어야 할 진정한 교훈은 하드웨어적 시스템 개선이 아니라 지하철 종사자는 물론 안전을 최우선으로 꼽는 국민 전체의 의식개혁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난총괄부서의 '적재적소'  (0) 2003.05.24
'리틀 盧'와 '김두관'  (0) 2003.04.03
지하철은 안전하다  (0) 2003.02.27
삼고초려의 본뜻  (0) 2003.01.23
沒역사적 시대구분  (0) 2002.12.19
남북은 하나가 아니다?  (0) 2002.11.14

삼고초려의 본뜻

요즘 공무원 사회에서 화제 1순위는 고건(高建) 총리 내정자다.고 총리내정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전남지사와 청와대 정무2비서관(지금의 행정비서관)을 지냈고, 최규하 대통령때는 정무수석비서관, 전두환 대통령 밑에서는 교통.농수산.내무부장관을 지냈다. 또 노태우 대통령 아래서 관선 서울시장, 김영삼 대통령 당시에는 국무총리로 국정을 운영했다. 여기에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공천장을 받아 민선 서울시장,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또 총리내정자로 지명됐다.

한 사람이 무려 7명의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국정을 논한다는 것은 거의 '환상적' 경력이다. 그것도 헌정중단과 과거 정권과 차별화가 극심했던 난세의 우리 정치사에서 말이다. 흔히 그를 '달인'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달인 수준을 넘어 거의 '신(神)'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비서실장이나 수석 내정이야 임명장을 준 것도 아니지만 총리내정을 국회에 통보하는 것은 헌법 절차를 밟는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노당선자의 첫 공식인사인 셈이다.

노당선자는 고건씨를 지명한 이유로 '안정'을 꼽았다. 그런데 화려한 경력이 안정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기자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요직에 있을 때 10.26 군사변란,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 환란(換亂) 등 국가적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가 당시 책임있는 위치에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별개 문제로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화려한 경력이 곧 뛰어난 능력을 입증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노당선자도 기존 존안자료를 믿을 수 없다며 중앙인사위원회를 방문해 인사에서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을 강조하지 않았나. 과거에 인재가 없다는 이유로 화려한 경력자를 영입해 썼지만 대부분 정치적 철새로 변신했다.

사실 명문대학을 나왔다는 학력, 고시에 합격했다는 이력, 중요 업무를 맡았다는 경력서는 그 사람의 앞길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처럼 통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매사가 다 그렇다면 명문 대학을 나오지 못한, 고시에 합격하지 못한, 좋은 경력이 없는 나머지 99%의 젊은이에게 무슨 희망을 얘기할 것인가. 양지를 좇아 경력관리를 잘하는 것이 출세의 길이라면 누가 고생을 하더라도 신념을 지킬 것인가.

바로 노당선자가 처절한 당사자 아닌가. 노당선자가 상고를 나와 취직한 해운회사에 계속 근무했다면 혹시 전무나 사장이 됐을까. 노당선자가 계속 판사를 했다면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법원에서 대법관까지 될 수 있었을까.

후보의 경력이 180도 달랐던 지난 대통령 선거는 이력서만으로 사람을 뽑아선 안된다는 국민의 심판도 들어 있다고 본다. 사실 지난 대선은 미래학의 거장 엘빈 토플러가 말한 바로 그 '권력이동'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지금의 권력이동은 단순한 권력의 추(錘)가 옮아가는 것이 아닌, 권력 자체를 변형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정치적 코드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화려한 과거 경력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혹자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애들이 감히…"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총리가 될 때 나이는 마흔넷에 불과했다. 그가 총리가 되기 전까지 경력이라고는 예비 내각에 잠시 거론된 것이 전부였다. 미국의 카터는 땅콩농장 경영 경력으로도 대통령이 됐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군사(軍師)로 맞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 할 때 유비 나이 마흔일곱, 제갈공명은 불과 스물일곱이었다. 당시 제갈공명은 초야에 묻힌 무명의 새파란 젊은이에 불과했을 뿐이다. 삼고초려의 본뜻은 인재를 '모셔온 것'이 아니라 인재감을 '발굴한 것'이다. 인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따지는 것은 숨은 인재를 발굴할 안목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틀 盧'와 '김두관'  (0) 2003.04.03
지하철은 안전하다  (0) 2003.02.27
삼고초려의 본뜻  (0) 2003.01.23
沒역사적 시대구분  (0) 2002.12.19
남북은 하나가 아니다?  (0) 2002.11.14
'DJ 名臣言行錄'  (0) 2002.10.17

沒역사적 시대구분



역사학에서 "모든 역사연구의 노력은 시대구분에 귀착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대구분은 각 시대의 성격과 특징,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규명한다는 점에서 역사학에선 매우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 위정자들은 시대구분에 매우 민감했다. 현대사만 해도 얼마전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5공화국, 6공화국 등으로 시대구분을 했다. 모두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공화제 시행이 200년이 넘는 프랑스도 아직 5공화국인데 50년도 안된 우리가 6공화국인 것은 사실 문제였다. 이는 역사학자는 물론 최소한 헌법학자의 자문도 없이 마구잡이로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려 했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은 '문민정부' 혹은 '국민의 정부'라는 다소 애매한 방법으로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시대구분을 하려 했다. 19일 탄생하는 새 대통령은 과연 무슨 의미를 부여해 과거 정권과 다르다는 시대구분을 할지 궁금하다. 문제는 자신의 시대구분에 그렇게 민감한 위정자들이 정작 중요한 역사의 시대구분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모두 왜곡된 역사를 규명해 원상태로 돌리고 시대적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 기관이다.

특히 명예회복위원회는 내부적으로 치열한 시대구분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당초 법을 만들 때 1969년 8월7일 이후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활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것이다. 결국 69년 8월7일 이후를 권위주의 통치기간으로 시대구분한 것이다.

69년 8월7일은 역사적으로 무슨 기점인가. 군인이 5.16쿠데타를 감행, 3공화국의 기틀을 다진 61년도, 10월유신이라는 헌법 유린으로 4공화국을 시작한 72년도 아니다. 이 날은 현대사 연표에도 나와있지 않아 현대사 전공자도 69년 8월7일이 역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꼭 집어 말하면 박정희 정권이 권력연장을 위해 3선개헌을 발의한 날이다. 엉뚱하게 이 시점을 권위주의 통치기간의 시작으로 구분한 것은 특정인의 정치적 의도는 충족했을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몰상식 그 자체였다.

69년 8월7일 이전은 권위주의 통치기간이 아닌가. 얼핏 꼽을 수 있는 것만 해도 학생들이 남북교류와 평화통일 주장을 하다 단죄된 61년 민족통일연맹사건, 64년 인민혁명당 사건도 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과 최근 의문사한 것으로 규정된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관련된 67년 동베를린간첩단 사건, 68년 통일혁명당 사건, 68년 6.8부정선거투쟁 등도 조작 혹은 민주화 과정의 중요한 치적임에도 명예회복 대상에 끼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선구적으로 3선개헌에 반대한 사람은 명예회복 기회가 원천봉쇄되고 개헌안 발의 후 뒤늦게 반대한 사람은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얼마전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조치가 50년 만에 이뤄졌다. 51년 거창양민학살사건도 명예회복 조치중이다. 하지만 유독 61년 5.16쿠데타 이후 69년 8월6일까지는 역사의 명예회복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다. 새 대통령은 반드시 이 역사의 블랙홀을 밝히고 잘못된 시대구분을 바로잡아야 한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정동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하철은 안전하다  (0) 2003.02.27
삼고초려의 본뜻  (0) 2003.01.23
沒역사적 시대구분  (0) 2002.12.19
남북은 하나가 아니다?  (0) 2002.11.14
'DJ 名臣言行錄'  (0) 2002.10.17
복구도 땜질, 보상도 땜질  (0) 200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