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편지'에 해당되는 글 63건

  1. 황복회 한 접시 올립니다
  2. 오세훈 서울시장과 커뮤니케이션
  3. ‘뗑깡’ 국회의장 임채정
  4. 여의도에 울리는 ‘박비어천가’
  5. 고건 전 총리가 믿는 구석
  6.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십시오
  7. 경제 저격수가 아니길…
  8. 이승엽 한방으로
  9.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고집
  10. 김근태의 변신은 무죄?

경기도 파주 임진강가엔 요즘 황복이 제철입니다. 연어처럼 회귀성 어종인 황복은 서해바다에서 2~3년 살면서 살이 올라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에 돌아오는 황복은 강화도에서도 잡고 김포에서도 잡지만 끈질기게 자신의 고향까지 온 파주 임진강 황복을 최고로 칩니다. 사실 황복철은 아카시아꽃이 피는 4월 중순부터 시작해 6월 초 정도면 끝물이지만 임진강 상류까지 올라온 최고의 황복을 맞보려면 지금이 최적입니다.


황복은 최고의 요리입니다. 요즘 양식황복도 있어 다소 싸졌다고 합니다만 회 한 접시에 십수만 원이 훨씬 넘는 요리입니다. 황복회는 매우 얇게 썹니다. 회를 접시 그림이 비칠 정도로 얇게 써는 것은 황복의 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육질이 단단해서입니다. 살이 무른 참치를 두껍게 써는 것과 대비되는 것이지요.


이번호는 그 비싼 황복회 한 상을 차렸습니다. 월드컵이라는 ‘황복’을 무려 40쪽에 이르게 가늘게 회를 쳐 쫄깃쫄깃하고 맛난 부위만 골라 내놨습니다.


월드컵은 우리의 6월 한 달을 열광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로 만들 소재입니다. 월드컵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분석, 알려지지 않은 사람 이야기, 게다가 독자의 건강까지 꼼꼼하게 책임졌습니다. 한 달 동안 두고두고 들춰봐도 좋을 것입니다.
물론 이번호가 창간 14주년 기념호라는 것도 한몫 했습니다. 그래서 휴가철을 앞두고 자동차와 관련한 모든 것을 담은 별책부록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번호는 뉴스메이커의 생일상인지라 더욱 정성을 다했습니다.



(경향DB)


앞으로 뉴스메이커는 황복회처럼 최상의 재료만 엄선해 최상의 요리사를 동원, 가장 맞난 부위만 골라 매주 최상의 접시에 담아 올릴 것입니다. 푸른 안료로 그린 청화백자 큰접시에 흰 황복회가 구름처럼 놓인 그런 최고급 요리를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물론 일본말로 ‘스끼다시’라고 하는, 곁들여 나오는 음식과 밑반찬도 입에 착착 달라붙게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뉴스메이커를 집는 순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6/07 (수)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코드’(Code)라는 말이 꽤 유행했습니다. 코드의 사전적 정의는 ‘기호를 다른 기호 계열로 표현할 때의 약속, 또는 그 기호 계열을 말한다’라고 다소 복잡하지만 쉽게 풀어보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서로의 약속’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한때 참여정부의 코드를 전기 코드(Cord)에 빗대어 “나는 아무 곳에나 다 맞는 멀티코드다”라고 말하는 공무원도 봤는데 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전기코드 역시 ‘송전된 전기를 가전제품을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연결’이라는 측면에서 ‘코드’(Code)의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코드를 맞춘다’는 것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사실 코드를 맞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요즘 시대를 지배하는 디지털이 단순한 0과 1의 조합이지만 정확히 코드를 맞추지 않으면 수백억 원짜리 슈퍼컴퓨터도 반도체 덩어리일 뿐입니다.

일을 같이 할 때 서로 커뮤니케이션 수단, 즉 코드가 다르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더구나 각자 맡은 일이 긴박하고 중요한데 각자의 코드가 다르면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회전문 인사라며 코드 인사를 비난합니다만 솔직이 어느 정권, 어느 기관장, 어느 부서장치고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과 일하고 싶겠습니까.

결국 사회는 서로 코드를 맞추며 사는 겁니다. 좀더 냉혹하게 말하면 힘 세고 높은 사람 코드에 약하고 아랫사람이 코드를 맞추는 식이지요. 하지만 그 윗사람의 코드를 안다는 것,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람의 코드는 그 사람의 삶과 의식, 세계·역사·종교관과 인맥 등 복잡한 3차 방정식을 풀어야 겨우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다빈치 코드’도 천재예술가 다빈치의 그 복잡한 속내를 얼마나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결국 한 사람의 코드를 읽는 것은 ‘다빈치의 코드’처럼 하나의 작은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경향DB)



지금 서울시 공무원과 산하단체, 서울시와 거래하는 관련기업이 오세훈 코드를 알아내고 이에 맞추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1000만 서울시민도 오세훈 코드를 알고 싶어합니다. 자, 여기 오세훈 코드가 있습니다. 치열했던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공개되지 않던 오세훈의 의식과 철학, 인맥 등 오세훈 코드의 베일을 완전히 벗겼습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45세 신임 서울시장 오세훈과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 보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6/12 (월)  

오래 전 얘기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얘기 하나 할까 합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 ‘양김씨’의 후보단일화 실패로 노태우씨에게 대통령을 넘겨준 야권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총선을 앞둔 YS의 민주당과 DJ의 평민당은 야권통합이라는 국민적 ‘강요’에 통합논의를 시작했습니다. 1988년 2월 12일 서울 남산 외교구락부에서입니다.

김재광 의원:): 통합원칙과 소선거구제에 합의하고 재야와 통합문제를 다룰 소위를 구성합시다.

이중재 의원(평민): 좋습니다. 정치는 기술이니 기술적으로 해결을 모색합시다.

신기하 의원(평민): 김 선배님, 재야를 빼고 통합하자는 말씀입니까.

김재광 의원: 빼자는 것이 아니라 이중재 의원 말대로 기술적으로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임채정 위원(평민): 기술적이라도 원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황명수 의원(민주): 별 뗑깡 다 부리는 군.

이상은 초년 기자시절 문틈으로 엿들은 통합협상 내용입니다. 임채정 통합위원은 민주당 김수한 의원과 또 싸우는 등 통합협상 내내 ‘싸움닭’으로 활약합니다. 보충 설명을 하면 당시 DJ의 평민당은 재야와 3자 통합 등 갖가지 조건을 내세우며 통합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신문사 편집국장 출신으로 평민당 대변인이던 조세형 의원은 말문이 막히자 “XX(기자들에게 한 욕이 아니라 국민에게 합당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니네들(기자) 맘대로 써라”며 자리를 뜰 정도였습니다. 결국 통합은 안됐습니다.

저는 당시 야권 분열은 우리나라 민주세력을 토막내고 민주정신을 왜곡시킨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봅니다. 그후 YS나 DJ는 차례로 ‘정치적 야합’을 통해 대통령이 됐습니다. 두 사람은 소원을 성취했는지 모르지만 야권분열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김문수 후보가 ‘보수’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지사에 당선되고 삼성전자 CEO 출신으로 수백 억 원대 자산가가 ‘진보’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는 ‘정신적 혼돈’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됐든 그때 ‘뗑깡’ 소리를 들으며 ‘통합불가’ 총대를 멘 임채정 위원은 그후 국회의원이 됐고 4선을 거쳐 이번에 국회의장이 됐습니다. 대화와 협상의 장인 국회에 그가 의장을 잘할지 기대해 봅니다.

12일 임채정 국회의장이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회의 진행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다. (경향DB)



이번 호 ‘뉴스메이커’에선 뗑깡 국회의장의 진면목을 소개합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6/20 (화)

7월 1일 임기를 시작하는 광역자치단체장 중 몇몇 분은 제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국회의원 출신인 어떤 사람은 강직하고 별다른 취미도 없이 원칙에만 충실한 반면, 고위공무원 출신인 어떤 사람은 유들유들하고 고스톱 같은 잡기에 두루 능합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경력이나 능력 면에서 지방정부를 운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국회의원으로서 지역민에게 보인 신념과 고위공무원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했던 열정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한마디로 ‘사나이’ 그 자체였습니다. 유권자도 이러한 점을 헤아려 표를 몰아줬을 것이고 결국 이들 모두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박근혜 전 대표 앞에서 하는 발언을 보니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인 것입니다. “박근혜 대표에게 신명을 바쳐 정권을 찾겠다”는 표현은 기본이고 “(박 대표는)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잔다르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원이 당대표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예의입니다만 우리 동양적 관습으로 면전에서 윗사람을 극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 면전에서 윗사람을 극찬하면 “입에 침이나 바르고 하라”고 오히려 면박당하기가 십상인 것이 우리네 칭찬 문화입니다. 칭찬과 아부는 깻잎 한 장 차이니까 어슬픈 칭찬은 아부로 오해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입담이 세기로 이름난 어떤 이는 “~대표님은 당이 위기에 처해서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때 당을 맡으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 선한 웃음을 잃지 않은 채 항상 승리로 당을 우뚝 세웠습니다~”라고 거의 용비어천가 수준의 노래를, 그것도 공개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도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전당대회가 코앞에 닥쳤고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절실하다 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 또한 당연하다는 표정입니다. 가만히 보면 내년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는 물론이고, 본선인 12월 선거도 하나마나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자유입니다만.

이번호 뉴스메이커에서 바로 그 ‘박비어천가’를 들어보십시오. 독창이 아닌 합창으로 여의도에 울려퍼지는 ‘박비어천가’는 거의 환상적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6/26 (월)    

공무원 사회에서 신화적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고건 전 총리입니다. 고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전남지사와 청와대 정무2비서관, 최규하 대통령 옆에서 정무수석비서관, 전두환 대통령 밑에서 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으로 국정운영에 참가했습니다.

 

또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서울시장 임명장을 받아 관선시장을 지냈고 김영삼 대통령 때는 2인자인 총리에 올랐습니다. 정권 교체가 이뤄졌어도 고 전 총리의 출세가도는 여전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다시 민선시장 공천장을 받아 당선됐고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다시 총리로 지명됐습니다.

학생혁명과 군사쿠데타, 대통령이 피습되고, 전직 대통령이 줄줄이 감옥으로 끌려간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에서 무려 7명의 대통령을 모시며 온전히 국정을 운영한 사람은 아마 고 전 총리가 유일할 겁니다. 앞으로 고 전 총리와 같은 인물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공무원 사회에서 그는 ‘행정의 달인’ 경지를 넘어 ‘입신’의 경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의 업무스타일 혹은 처세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아 아예 ‘고건학’이라고 부르는 단편이 공무원 사회에서 구전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고 전 총리가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려고 합니다. 만년 참모, 혹은 2인자에서 1인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정치적 기반이 거의 없는 그가 대권레이스에 참가하려고 결심한 것을 보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입니다. 무려 7명의 대통령이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고 지금껏 살아왔던 그 명석한 두뇌에 비추어 본다면 누구처럼 무모한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자분도 잘 아시다시피 정치판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곳입니다. 일시적인 여론조사를 믿고 나섰다가 신세 망친 정치인도 있고 학벌과 경력으로 나섰다가 큰코 다친 분도 있는 것이 정치판이고 대통령 선거입니다.

더구나 고 전 총리는 정치의 기반이자 ‘전위대’라고 할 수 있는 정당기반이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그를 후보로 만들어줄 리 만무고 열린우리당이 그를 후보로 추대해줄지도 의문입니다. 조그만 정당을 엮고 적당히 정개개편에 편승해 후보가 된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요즘 고 전 총리의 걸음걸이가 달라졌습니다. 숟가락만 폼나게 들고 있으면 진수성찬이 올 것이라 믿던 과거와 달라진 느낌입니다. 적수공권으로 대권을 잡겠다고 나선 고 전 총리가 믿는 구석은 무엇일까요. 이번호 ‘뉴스메이커’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7/05 (수)  

“일제 치하 35년간 일제의 주구(走狗)가 되어 동족을 좀먹기에 광분한 친일매족도배를 광복의 조국 하늘 아래서 민족의 이름으로써 이들을 단죄함에 이르게 된 것은 실로 감개무량하고 또한 통결(痛決)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개인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자손만대의 산 교육이 되게 하고 정신의 거울이 되게 하자는 데서 반민자 처단의 참된 의의가 있는 것이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가 생기고 특위 활동을 기록한 책 ‘반민자죄상기(反民自罪狀記)’에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이 쓴 서문의 일부입니다. 58년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이루지 못한 친일청산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 정치·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국민통합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 치열한 논란 끝에 법이 통과됐고 반민특위 와해 57년 만에 다시 국가 차원에서 친일청산작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위원회는 1년여 동안 연구와 조사끝에 1차 조사대상자 120명의 명단을 확정했습니다. 광복 후 정부 차원에서 친일파를 확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이들은 친일 확정자가 아닌 조사대상자입니다. 그리고 후손의 소명절차 등을 밟아 최종 친일파로 확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기관이라는 공신력을 가지고 100여 명이 넘는 인력이 1년여 동안 조사했기 때문에 대상이 변경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위원회 설명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반민족행위를 통해 치부한 재산을 몰수한다는 것입니다. 친일파의 후손이 재판을 통해 땅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번엔 반대로 친일파 후손의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입니다. 물론 재산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벌어질 것은 뻔합니다.

이는 광복 후 60년 만에 벌어지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친일행적을 공식 확인할 뿐만 아니라 재산문제까지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은 친일문제라는 우리 현대사의 고질적인 논란을 매듭짓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일청산 문제는 우리의 과거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고 또 소모적인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미래를 향한 행보입니다. 이번 주 ‘뉴스메이커’에서 60년 전 과거사 논란이 아닌 60년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희망을 보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7/10 (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반대의 목소리는 농민에서 지식인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일하던 청와대 출신까지 가세했습니다. 노 정권의 지지기반인 재야·시민단체, 진보적 지식단체 대부분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물러서기커녕 여전히 ‘고’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교수는 “박정희의 돌진적 개방을 흉내내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노무현의 개혁욕구와 김현종의 야망이 만났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김현종이라는 사람은 바로 한·미 FTA를 주도하는 외교통상교섭본부장입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책 하나가 있습니다. 원제는 ‘Confession of an Economic Hit Man’으로 국내에선 ‘경제 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됐습니다. 이 책은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존 퍼킨스라는 사람이‘경제저격수’로 활동한 고백서입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경제저격수란 겉으로 다국적 기업의 컨설팅 회사 직원이지만 사실은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활동 공간은 컨설팅회사뿐 아니라 평화봉사단, 국제기구, 세계은행, 정부기관 등에서 `자선’ 혹은 ‘시혜’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그 활동수법은 대충 이렇습니다.

그럴 듯한 이유로 개도국에 차관을 제공하고 파산을 유도한다, 결국 국민 모두가 빚을 떠안고 이 과정에 부자는 돈을 더 많이 벌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진다, 결국 파산한 나라는 영원히 미국에 채무관계를 지고 미국에 충성하게 된다, 그 대가로 미국이 상대국의 군사기지나 유엔 내 투표권을 확보하고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지하자원을 마음대로 이용한다.
너무나 섬뜩한 얘기입니다. 더구나 최근 한·미 FTA 체결 논란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대로 될 리 없겠지요. 애국심에 불타는 김현종 본부장이 경제저격수일 리 없고 특히 영민한 노 대통령이 경제저격수에 저격을 당했을 리 만무합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이 걸어온 길과 스타일이 존 퍼킨스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또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 모두가 무너지는 이 와중에도 FTA를 추진하지 않으면 안될 말 못할 내막은 있을 겁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그 점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그 말 못할 미스터리를 이번 주 ‘뉴스메이커’에서 같이 추적해 봅시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7/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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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한방으로

정말 짜증나는 한 주였습니다. 물난리가 나고 고시원에 불이 나고. 게다가 북한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취소해 버린 한 주였습니다. 저는 거의 일주일 내내 재난보도·방송을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언론은 “예고된 인재라느니, 3년 전에도 침수됐는데 또 당했다느니, 댐을 늘려야 하니 마니,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니 마니 등등” 매번 수해마다 반복되는 정말 짜증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재난보도는 재난현장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겁니다. 재발방지책, 실패에서 얻는 교훈, 이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온통 재난현장 중계이고 지엽적인 관점에서 얘기를 하니 짜증이 나는 겁니다.

매년 반복되는 수해를 항구적으로 예방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매우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복구를 않는 것입니다. 상습침수 지역은 애당초 마을 입지가 잘못된 것입니다. 비는 자연 그대로, 또 스스로 물길을 내면서 흐른 것입니다. 그 물길을 막고 콘크리트를 바르고 집을 지은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따라서 100년 앞을 내다보고 침수대책을 세운다면 지금 침수된 곳은 복구하지 않고 집과 마을을 옮기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다르지만 20여 가구 사는 강원 산골마을에 수백억 원, 수천억 원을 들여 배수펌프장과 제방을 쌓느니 조금 지대가 높은 곳에 아담한 공동주택을 지어 이주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입니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싼 강원도 상습수해지역은 국가가 매입하면 됩니다. 더구나 산골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 숨진 지 일주일 만에 시신이 발견되는 요즘 이런 방법은 농촌 노인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 위험한 강가나 계곡에 건축허가를 해줍니까. 그리고 매번 침수되는 것을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해 줍니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우리의 이런 재난 보상시스템을 개혁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옵니다.

이런 짜증나는 일을 한방에 날려보낸 사람이 바로 야구선수 이승엽입니다. 이승엽은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다 ‘대망신’을 당한 후 멋지게 재기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도 지금 우리처럼 처절하게 망가진 자신을 극복했습니다.

그의 성공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는 되풀이 않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짜증나는 요즘 ‘뉴스메이커’를 통해 시원한 한방과 그 속에서 인생 재기의 교훈까지 얻으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7/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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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입니다. 당시 노 장관이 임기를 거의 마칠 즈음 출입기자와 회식하던 자리로 기억합니다. 노 장관은 자신있는 표정으로 “후임 장관 인선은 내가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에 회식자리에 같이 있던 차관을 비롯한 실·국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장관 인사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 전임 장관이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실 권위주의 시절엔 이런 비슷한 말을 했다가 불경죄로 혼난 정치인도 여럿입니다. 어찌됐든 당시 노 장관이 후임 장관을 인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참 인사에 자신감 넘치는 장관’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즘 참여정부의 인사에 대해 코드인사니, 낙하산인사니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코드인사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서로 뜻이 통하는 사람과 일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회사도 사시 혹은 사장의 뜻에 맞는 사람을 뽑는 것이고 언론사도 국장과 팀워크가 잘 맞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또 그게 정당정치, 책임정치 구현에도 맞는 겁니다.

하지만 낙하산인사는 그게 아닙니다. 아마 노 대통령도 야당 의원 시절 당시 군인이 정부와 국·공기업체에 줄줄이 임용되는 것을 두고 ‘낙하산인사’라 비판했을 겁니다. 노 대통령도 1980년대 육사와 서울대 법대 공안검사 출신이 온 나라를 말아먹는 ‘육법당 시대’를 저주했을 겁니다.

사실 ‘낙하산인사’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해당분야 전문성이 없어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고 수십 년간 공직생활을 한 관료가 산하기관에 가는 것을 낙하산이라고 몰아붙이기도 뭐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에도 낙하산인사로 분류됐습니다. 특히 문제는 정당가입서를 쓴 정치인입니다. 당적을 가지고 선거에 기여한 사람이 국·공기업에 임용되는 것은 낙하산인사의 전형입니다.

기획예산처가 관리하는 공공기관이 318개라고 합니다. 우리가 파악한 것에 의하면 낙하산인사는 300명이 넘습니다. 물론 장관, 정책보좌관 등 정부기관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임용된 경우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이번호 ‘뉴스메이커’에 참여정부 낙하산인사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실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참여정부의 참담한 인사정책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시스템에 의한 균형인사라고 강변합니다. 정말 대단한 인사고집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7/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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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들어 공무원을 매우 많이, 그것도 고위직 위주로 늘렸습니다. 정부는 ‘공무원이 늘어도 행정서비스가 좋으면 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맞습니다. 공무원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얼마나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지난해 1월쯤입니다. 정부는 고위직을 많이 늘린 데 이어 복수차관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 방학중 아이들 급식으로 무 몇 조각과 건빵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제공해 사회적 충격을 줬습니다. 또 대구에서는 어린이가 장롱 속에서 굶어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아이에게 최소한의 식사를 제공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개판’임이 드러난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사회복지 최일선에서 소외된 이들을 돕는 것이 바로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입니다. 가장 말단인 지방직 9급 공무원입니다. 그런데 참여정부 들어 이 지방직 9급 공무원을 단 한 명도 늘리지 않았습니다. 원래 계획에 매년 1200명씩 늘리기로 돼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겁니다. 엄격히 말하면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던 것입니다.

그때 책임부서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바로 지금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입니다. 그때 총리는 이해찬 의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해찬 총리,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시기에 공무원 충원 정책을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국민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사람은 낮은 곳, 소외된 곳을 보듬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더구나 이 시대 가장 고민하고 풀어야 할 화두는 극단적인 양극화 해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 문제 극복이 최우선이라고 말한 터였습니다. 극단적인 양극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IMF 이후 효율과 CEO만능 시류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해찬 총리는 끊임없이 골프로 물의를 빚었고, 김 장관은 건빵도시락 파문을 초래했습니다.

요즘 김근태 의장의 행보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그의 사회적 대타협론을 놓고 ‘경제활성화’니 ‘재벌에 대한 항복선언’이니 논란도 많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은 김근태가 변해도 확 변했다는 겁니다. 그 흉악한 고문을 감내한 김근태가 이렇게 맥없이 변신하는 것을 보는 사람은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니까 그의 변신은 변신이 아닙니다. 이번호 ‘뉴스메이커’에서 정치인 김근태의 진면목을 보여드립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8/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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