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니까 2003년 1월쯤일 겁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뜨는 해’지만 ‘지는 해’인 현직 대통령 입장을 고려, 관공서를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방문한 관공서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중앙인사위원회입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공무원 인사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입니다.
당시 노 당선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워낙 공무원 인사가 중요한 일이라 당선자 신분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왔다”며 업무보고도 받고 ‘적재적소’라는 글도 남겼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공무원 인사정책’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실제 참여정부 들어 공무원 인사정책은 무지하게 변했습니다. ‘경국대전’ 이래 계속됐을 법한 정1품, 종1품 등 1~9급식의 공무원 계급체계가 무너졌습니다. 이젠 외형적으로나마 1~3급은 없습니다. 실제 지금 공직사회에선 과거 1급이던 사람이 과거기준 2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충원방식도 대폭 바뀌었습니다. 9·7·5급 공무원 시험을 통해 일괄 충원되던 방식에서 다양한 민간 경력으로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미 특별채용 비율이 공개채용 비율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사회의 철밥통을 깨기 위한 여러 제도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노 대통령 코앞의 청와대 내부인사입니다. 최근 청와대가 또 조직개편을 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 청와대 조직개편은 벌써 대여섯번째로 생각됩니다. 역대 정부 중 청와대 조직을 이렇게 자주 바꾸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청와대 조직이 불안정함을 입증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쪽에서 근무하던 사람을 저쪽으로 쓰는 ‘돌려막기’ 혹은 ‘회전문’ 인사를 했습니다. 한사람이 만능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홍보를 하던 사람을 정무 쪽으로 돌리고 정무를 하던 사람에게 기획을 맡기고, 기획을 하던 사람에게 총무일을 맡기는 식의 돌려막기 인사를 자주 했습니다. 무려 5번이나 돌려 쓴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러다 정 안 맞으면 조직을 개편하고.
‘적재적소’란 필요한 업무에 필요한 사람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야도 적임이고 저쪽 업무도 적임자라는 것은 ‘아무 곳에도 적임자가 아니다’라는 겁니다.
이번 호 ‘뉴스메이커’가 검증한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청와대 돌려막기 인사의 진수를 보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9/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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