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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지난 여름 우리가 한 일

올 여름 대부분 국민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다이야기’에 빠져 허우적거렸습니다. 마치 쓰나미처럼 모든 사회와 권력을 단번에 삼켜버릴 기세였던 바다이야기는 지금 너무 조용합니다. 지금 감사원 감사와 검찰이 수사 중이긴 하지만 언론도, 검찰도, 문제를 제기한 정치권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정말 피서철 반짝 바다처럼 찬바람 한번에 완전히 철 지난 바다 분위기입니다.

바로 그 바다이야기 중심에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바다이야기의 배후이며 게임산업의 황제이며, 현 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 주인공으로 지목됐습니다. 모든 언론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했습니다. 그에 관한 기사가 난무했습니다. 확인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럴 듯한 개연성만 보이면 썼습니다. 일부 정치인은 그의 실명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마치 권력형 게이트의 주범이며 국민을 도박병에 빠뜨린 일종의 ‘악의 축’으로까지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바다이야기의 핵심이며 게임산업의 황제로 알려진 사람은 변변치 않은 사람으로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수천억 원의 대선자금은커녕 영화를 찍는답시고 빚만 잔뜩 진 정말 칠칠치 못한 사람임이 밝혀졌습니다. 정치를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자리욕심이 없는 것을 보면 정치인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다이야기 쓰나미가 물러난 지금 휑하니 쓸고간 폐허에 혼자 않아 줄담배만 뻑뻑 피웠습니다. 바다이야기 쓰나미가 몰려올 때 수십 명의 기자가 쇄도했지만 지금은 아는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 변변치 못한 사람이 독이 올랐습니다. 그가 줄담배를 피워대며 우리의 언론과 우리 사회, 우리 정치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의 말에는 도를 넘는 대목도 있지만 공감이 가는 대목도 적지 않습니다. 그의 독설을 통해 지난 여름 우리가 한 일을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멋쩍어도 좋습니다. 그게 불과 한 달 전 우리 기자들이, 우리 사회가 죽자사자 매달린 일이니까요.

그의 원래 직업은 배우지만 생긴 것은 영 아닙니다. 모르긴 해도 옛날 그가 한창 날릴 때에도 그를 표지모델로 쓰려고 생각했던 편집장은 아마 없을 겁니다. 못생긴 배우이며 칠칠치 못한 영화제작자, 정치 아닌 정치를 하는 사람을 이번주 커버 인물로 올려봅니다. 그의 이름은 명계남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09/19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