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각 언론은 한 해를 정리하는 기획을 합니다. 보통 10대 뉴스나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2008년을 관통하며 대표성도 있는 한 사람을 선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통하는 방법도 쓰지만 그것도 응답자의 최근 기억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불과 5개월 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선의가 아닌 악의로 유명한 사람을 꼽는다는 것도 신경질나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은 권력이나 금력을 가지고 우리 정치·경제·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준 사람이지요. 그래서 한 포털에서 올해의 무슨무슨 인물을 선정하다 대통령이 많이 나오니까 황급히 중간에 “정치인은 제외”라고 했다지요. 그래서 어떤 언론매체는 올해의 인물로 ‘허무하게’ 노바디(아무도 없다)를 선정하기도 했더군요.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아무리 비탄과 허무가 팽배했던 한 해라도 희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올해의 인물로 ‘아고리언’을 선정했습니다.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서 활동했던 바로 그 누리꾼입니다. 물론 누리꾼은 과거에도 활동했습니다.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시절에도 누리꾼이 활동했지만 2008년의 누리꾼은 분명 달랐습니다. 그들은 웹 1.0 혹은 웹 2.0 시대처럼 텍스트나 댓글로만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를 실시간 동영상으로 중계했을 뿐 아니라 단순한 인터넷 이용자 혹은 소비자가 아닌 명실상부한 생산자이며, 동영상의 편성권자, 소비자 주권 혁명자로 당당히, 사실상 권력자로 등극한 것입니다.
이들 아고리언은 올해 내내 무서운 기세로 기존, 아니 구시대적 권력에 저항했습니다. 한 아고리언은 대통령 탄핵 청원을 주창, 청와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불과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또 다른 아고리언들은 촛불집회 등을 통해 대통령의 사과를 두 번이나 받아냈습니다. 그들은 연약한 여중생이기도 했으며 주부였습니다. 또 어느 아고리언은 무능한 강만수 경제팀을 능가해 막강한 경제 대통령으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아고리언은 앞으로 펼쳐질 웹 2.0 이상의 시대에서 사실상 권력이 어떤 것인지 암시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권력은 장관의 생사 여탈권을 쥔 국무위원 임면권도, 돈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예산편성권 혹은 심사권도 아닙니다. 산하단체 기관장을 숙청할 인사권도 아닙니다.
미래의 권력은 참여하는 광장이자, 소통하는 언로이자, 행동하는 시민입니다. 2008년은 바로 그 사실을 확인시킨 한 해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일시적인 고통을 받더라고 결국 미래의 승리자는 그들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호 에서 올 한 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지금 잠시 고통을 받고 있지만 미래의 권력자인 아고리언을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12/30 (화) |